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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뱌오 “난세의 인간은 태평성세의 개만도 못한데…”

1 문혁 초기. 마오쩌둥, 저우언라이와 함께 군부대를 방문한 린뱌오(앞줄 왼쪽).
린뱌오(林彪·임표)는 사교성이 부족했다. 인정머리도 없었다고 하지만 아무에게나 그러지는 않았다. 신중국 초기 “조용한 시골에 내려가 현장(縣長)이나 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권력욕도 없었다.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의 후계자도 여러 차례 고사했다. 사후에 온갖 죄를 뒤집어 썼지만 직접 정변(政變)을 기도했다는 증거는 없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416>

린뱌오는 소문난 효자였다. 장제스(蔣介石·장개석)와 연락을 취한 것도 마오에게 넌덜머리가 나다 보니 자신과 아버지를 극진히 챙겨줬던 옛 스승을 그리워했을 뿐이다.

아버지 린밍칭(林明卿·임명경)은 마을에서만 알아주는 지식인이었다. 독학으로 신문을 볼 줄 알았고 글씨도 제법이었다. 잡화상 점원과 화물선에서 돈 세는 일을 하다 고향에 돌아와 옷 장사를 했다. 부양 가족이 많았지만 부인 덕에 끼니를 거르는 일은 없었다.

모친 천(陳)씨는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다들 린천(林陳·임진)이라고 불렀다. 린천은 오리 키우는 재주가 유별났다. 아침마다 자녀들에게 콩국 한 사발과 오리 알 1개를 4등분해서 한 쪽씩 먹였다. 틈만 나면 자녀들에게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세상살이 별 게 아니다. 독서(讀書) 열심히 하고 성실(誠實)하면 충(忠)과 효(孝)는 저절로 익히게 된다. 그러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다.” 린뱌오는 어릴 때부터 엄마 말을 잘 들었다.

2 린뱌오와의 일전을 앞두고 총참모장 바이충시(白崇熙)와 함께 부대를 검열하는 장제스(망토 입은 사람). 1947년 가을, 동북(東北).
린밍칭은 군인과 정치가를 싫어했다. 자식들 중에서 제일 허약했던 린뱌오가 세계적인 군인정치가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린천은 린뱌오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반대하지 않았다. 1937년 9월, 린뱌오가 일본군에게 대승을 거뒀을 때 장제스는 축전을 보냈다. 마오쩌둥은 핑싱관(平型關·산시성 동북부의 군사 요충지)에서 일본군을 기습하겠다는 린뱌오의 제의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린뱌오의 승리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장제스는 린밍칭의 60세 생일이 임박했다는 소식도 한 귀로 흘리지 않았다. 정부 요인들에게 축하전문을 보내라고 지시했다. 린칭밍은 국민당 관인이 찍힌 ‘壽’자를 걸어놓고 난생 처음 생일을 즐겼다.

온 중국이 린뱌오 얘기로 떠들썩하자 린칭밍은 일본군의 보복이 두려웠다. 식솔 거느리고 고향을 떠났다. 광시(廣西)성 류저우(柳州)를 지나던 중, 부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남긴 말이 둘째 아들 린뱌오의 안부였다. 피난길에 동행했던 린뱌오의 조카가 훗날 구술을 남겼다. “일행이 많다 보니 하루에 20리도 못 걸었다. 일본군의 공습으로 온전한 집이 없었다. 도처에 부패한 시신이 널려 있었고,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할머니는 노상에서 만난 환자에게 입으로 죽을 먹이다가 감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매장하고 작은 비석을 세웠다. 1943년 겨울이 되자 더 이상 살길이 막막했다. 할아버지가 린뱌오에게 전보를 보내라고 했다.”

소련에서 돌아와 가족소식을 들은 린뱌오는 마음이 조급했다. 시 한 수로 마음을 달랬다. “엄부(嚴父)가 급전을 보냈다. 피난 도중이라며 구원을 호소했다. 자모(慈母)는 황야에서 세상을 떠났다. 다른 사람의 소식을 알 길이 없다. 난세의 인간은 태평성세의 개만도 못하다.”

린뱌오의 시를 읽은 팔로군 총사령관 주더(朱德·주덕)는 무릎을 쳤다. “린뱌오에게도 이런 감상적인 면이 있구나.” 마오쩌둥이 직접 나서고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가 사면팔방으로 린뱌오 일가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국민당 적십자사가 전국의 난민 구호소를 뒤졌다. 린밍칭을 찾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국민당의 배려로 충칭(重慶)에 도착한 린밍칭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린뱌오가 있는 옌안으로 출발하는 날은 중도에 먹으라며 사과와 찐빵, 육포까지 챙겨줬다. 장제스의 지시였다.

16년 만에 아버지를 만난 린뱌오는 눈물을 글썽였다. 모친의 사망을 확인하자 지도를 펴 들고 정확한 지점을 조카에게 물었다. 류저우 방향으로 무릎 꿇고 한차례 곡(哭)을 했다. 린뱌오의 눈물을 본 저우언라이는 어찌나 놀랐던지 한동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오쩌둥이 달려오고 주더 부부도 헐레벌떡 언덕을 내려왔다.

항일전쟁 승리 후, 동북에서 장제스의 국민당군을 전멸시키고 베이징에 입성한 린뱌오는 제4야전군을 이끌고 다시 전선으로 나갔다. 건강 문제로 베이징에 남아 있던 정치위원 뤄룽환(羅榮桓·나영환)은 린밍칭에게 그럴듯한 집을 마련해줬다. 국·공전쟁에서 막내아들이 전사하는 바람에 명분은 충분했다. 열사가족 대우와 생활비 지급도 문제가 없었다.

린민칭은 유난히 먹는 것을 밝혔다고 한다.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린뱌오는 매달 한번씩 아버지를 찾아갔다. 먹을 것 사 들고 베이징 골목을 터덜터덜 걸어가는 중년의 남자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1963년 말, 개국원수(元帥) 뤄룽환이 중병에 걸렸다. 평소, 누가 죽건 말건 관심이 없던 린뱌오는 베이징 식물원에 가서 꽃을 구입했다. 부인 예췬(葉群·엽군)을 병문안 보내고 방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지도 앞에 서서 뤄룽환과 함께 누볐던 전선들을 들여다보며 지난 날을 회상했다.

뤄룽환이 세상을 떠났다. 린뱌오는 평소와 다른 행동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 <계속>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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