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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사우디가 겪은‘고난의 행군’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4일 찾은 사우디 아라비아는 엄격한 이슬람 신정국가다. 알사우드 왕조 자체가 이슬람 정통파·초보수파·엄격파·근본주의자·이슬람 청교도로 불리는 살리피즘과 정치의 결합체다. 18세기에 시작된 살리피즘은 초기 이슬람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운동이다. 무함마드 이븐 암드 알와하브(1703~1787)가 주창해 와하비즘으로도 불린다. 당시 리야드를 지배하던 알사우드 가문의 부족장 무함마드 빈 사우드는 살라피즘을 지원하기로 하고 아들 압둘아지즈 빈 무함마드(1765~1803 재위)를 와하브의 딸과 결혼시켰다. 종교와 정치의 마리아주다. 그는 살리피즘 전파 지하드(성전)에 나서 아라비아 반도 동부를 정복하고 1744년 에미르(이슬람 군주)가 됐다. 이를 1차 사우디 국가(1744~1818)라 한다. 사우디가 종교적 잣대로 사회를 운용하는 역사적 배경이다.

압둘아지즈는 1801년 이라크 남부의 시아파 성지 카르발라를 점령해 이슬람 창시자 마호메트의 외손자인 시아파 성인 후세인의 무덤과 유적을 파괴했다. 성인 묘소를 화려하게 꾸미고 순례하는 시아파를 살리피즘에선 유일신 사상에 어긋나는 이단이라고 비난한다. 사우디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 앙숙인 종교적 배경이다. 지난 1월 세상을 떠난 압둘라 국왕의 안식처를 포함한 사우디의 묘지가 소박한 이유이기도 하다.

압둘아지즈는 1517년 이래 오스만 튀르크의 영향권이던 이슬람 성지 메카와 메디나도 손에 넣었다. 뒤를 이은 사우드 빈 압둘아지즈 빈 무하마드 빈 사우드(1803~1814 재위) 시절에 사단이 났다. 오스만 제국이 산하의 반독립국이던 이집트의 영주 알리 파샤를 시켜 사우디를 토벌하게 했다. 1811~1818년의 이집트·사우디 전쟁은 사우디의 패배로 끝났고 사우드의 아들 압둘라 빈 사우드(1814~1818 재위)는 포로가 돼 이스탄불에서 참수형으로 처형됐다. 사우디와 이집트·터키의 악연이다.

사막으로 피신한 알사우드 가문은 와신상담 끝에 무하마드 빈 사우드의 손자인 투르키 이븐 압둘라 이븐 무하마드가 1824년 이집트군을 몰아내고 리야드를 탈환했다. 2차 사우디 국가(1824~1891)의 시작이다. 하지만 압둘라만 빈 파이잘(1850~1928)이 통치하던 1891년 경쟁자인 알라시드 가문과 벌인 물라이다 전투에서 패배해 고향에서 밀려났다. 알사우드 가문은 사막을 떠돌다 베두인인 알무라 부족에 몸을 의탁했다. 그 뒤 알타니 가문이 지배하는 카타르와 알할리파 가문의 바레인에 잠시 머문 뒤 알사바 가문이 지배하는 쿠웨이트에 망명해 재기를 노렸다. 알사우드 가문의 ‘고난의 행군’이다. 사우디가 1990년 8월 사담 후세인의 공격을 받은 쿠웨이트를 도와 걸프전을 주도하고, 2011년 시아파 시위가 한창이던 바레인에 파병한 역사적 배경이다.

압둘라만의 아들 압둘아지즈 빈 압둘라만 알사우드(1876~1953)는 친족과 살리피즘 지지자 63명을 규합해 리야드를 기습, 1902년 1월 15일 탈환했다. 이때 되찾은 가문의 근거지가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한 마스막 요새다. 알사우드 왕가는 이때를 제3차 사우디 국가, 즉 현대 사우디의 시작으로 친다. 성지 메카·메디나를 지배하던 마호메트의 후손인 하심 가문(현재는 요르단 왕조)과 싸워 1925년 이 지역을 차지했다. 1932년 나라 이름을 ‘알사우드의 아라비아’라는 뜻의 사우디 아라비아로 바꿨다. 사우디는 피와 땀의 결실이다. 후손들은 이를 잊지 않는다.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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