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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대로 보는 법

나는 TV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이다. 특히 써야 할 원고가 많아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을 때, 쓰라는 원고는 쓰지 않고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을 죽인다. 마음 속으로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하면서 말이다. 그 중에는 잘 된 드라마도 있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드라마도 있다. 그런 드라마는 욕하면서 본다. 막장 드라마가 시청률이 높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막장이든 아니든 한국 드라마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대부분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점이다. 드라마에는 가난한 집 처녀가 오로지 진실한 사랑 한 가지만을 무기로 재벌 아들과 결혼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일 뿐 실제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극중 인물에 완전히 동화되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더 나아가 자기도 언젠가 그런 행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가난한 처녀와 재벌 아들 사이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계급 장벽이라는 현실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드라마 속 주인공은 반드시 성공한다. 물론 처음부터 잘 나가는 것은 아니다. 정직하게 돈을 벌려고 하다가 손해를 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믿었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 특유의 뚝심과 정직, 성실함으로 이 모든 난관을 헤쳐나간다. 그러면 운명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를 도와준다.

정직과 성실을 무기로 어느덧 자금난이 해결되고, 물건이 날개 돋힌 듯이 팔린다. 모든 일이 정해진 수순에 따라 술술 쉽게 풀려나간다. 그리하여 누구나 정직하고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나는 이런 드라마를 볼 때마다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의 ‘소외효과’라는 연극이론이 생각나곤 한다. 브레히트는 훌륭한 예술이란 대중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이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전통적인 서양 연극에서 무대는 또 다른 현실이 펼쳐지는 공간이다. 따라서 무대는 최대한 그럴듯하게 현실을 재현해야 한다. 무대장치나 소도구, 의상, 배우들의 연기 모두 극중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배우들은 극중 인물로 완벽하게 변신하고, 관객들은 여기에 완전히 몰입해 배우들이 슬퍼하면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면 함께 기뻐한다. 이런 감정이입을 통해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하지만 브레히트는 이런 식의 감정이입이 관객의 비판의식을 말살한다고 생각했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이 허구 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현실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브레히트는 이런 환상을 경계했다.

그는 관객이 극 속에 몰입해서는 안 되며, 연극을 보는 중에도 끊임없이 자기가 연극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무대 위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비로소 그 현상을 올바르게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 눈이 생긴다는 것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극을 바라보게 만드는 ‘소외효과’를 위해 브레히트는 다양한 기법을 개발했다. 무대에서 연기하던 배우가 관객에게 느닷없이 말을 걸기도 하고, 극의 줄거리를 미리 알려주기도 한다. 무대는 물론 객석에도 환하게 조명을 켜놓고, 막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무대장치를 바꾸기도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관객이 극에 몰입하는 것을 최대한 막는 것이다.

오늘날 브레히트의 연극이론은 이미 낡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환상을 막는다는 점에서 그의 이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드라마는 개인의 삶을 결정하는 사회 시스템은 외면한 채 모든 것을 개인의 운명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현실에서 가난한 아가씨가 아무리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어도 ‘백마 탄 왕자’가 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젊은이가 아무리 정직하고, 아무리 성실해도 좋은 직장에 취직하거나 사업에 성공하기는 하늘에 별따기이다. 드라마에서와 달리 현실은 냉엄하기만 하다.



진회숙 서울시향 월간지 SPO의 편집장을 지냈다.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공부하기 등에서 클래식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클래식 오딧세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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