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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 칼럼] 내년 총선, 세금을 논하자

박근혜 정부의 경제·복지 정책의 최고 아킬레스건은 ‘증세 없는 복지’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부터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하지 않는 책임 있는 정부가 되겠다고 했다. 그 청사진이 2013년 5월 발표한 ‘공약 가계부’다. 5년 임기 동안 증세없이 총 134조8000억원의 복지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비과세 감면, 지하경제 양성화 등으로 50조7000억원의 세입을 확충하고, 세출절감으로 84조1000억원을 충당한다는 목표다.

공약 가계부가 발표된 지 1년 9개월이 지난 지금, 장밋빛 가계부는 잿빛으로 바래고 있다. 이미 발표된 이런저런 수치들은 공수표로 판명났다. 공약 가계부는 조만간 폐기 수순으로 가거나 수정될 처지다. ‘증세 없는 복지’는 모든 것을 뚫는 창과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는 방패처럼 앞뒤가 안 맞는 모순된 구호로 그칠 공산이 크다.

정부가 복지 재원을 만들려면 넓게 봐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세금을 걷거나 빚을 내거나다. 지금 빚을 내는 건 기성세대가 복지 혜택을 ‘먹고 튀는’ 꼴이 된다. 이렇게 쌓인 빚은 미래세대가 떠안아야 한다. 후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건 박근혜 정부는 물론이고 다른 어떤 정부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결국 선택은 세금 문제로 귀결된다. 세금을 더 걷어 복지를 확대할 것인가, 세금을 줄여 복지를 축소할 것인가.

사람이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게 죽음과 세금이다. 세금은 인간이 만든 정치 체제의 부산물이기 때문에 속성상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세금을 많이 걷자는 주장은 평등과 분배를 중시하자는 뜻이다. 반면에 경쟁과 성장을 우선시하면 세금을 덜 걷어야 한다고 반박한다. 세금 정책은 이렇게 유권자들의 이념과 철학을 구분하는 핵심 의제인 셈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선거의 승패가 사실상 세금 정책으로 결판난다. 어떤 정책을 쓰느냐에 따라 현 세대는 물론 미래 세대의 삶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당장 표를 얻기 위해서는 세금을 깎아주는 선심성 정책이 유리할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미국 공화당의 기본 입장은 감세다. 세금을 낮춰 경쟁을 촉진하는 작은 정부를 바탕으로 한 레이거노믹스는 1980년대 레이건 시대를 열었다. 1988년 조지 H.W.부시는 초반에 민주당 후보인 마이클 듀커키스에게 뒤졌으나 ‘새 세금은 절대로 없다(Read my lips: No new taxes)’는 구호로 판세를 뒤집었다.

증세를 주장한 민주당도 패배의 쓰라림만 맛본 건 아니다. 부자 증세와 큰 정부를 앞세운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후보는 두 번 연속 대통령에 당선됐다. 결국 세금 이슈는 단지 세금을 얼마나 걷느냐의 논쟁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진보와 보수, 분배와 성장이라는 커다란 담론으로 발전해 정치권력의 향방을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선거를 뜯어보면 세금 논쟁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지난 대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후보에 비해 61조원이나 더 많은 192조원 규모의 복지 공약을 내걸었다. 재원은 세출 구조조정과 부자증세 등을 통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의 ‘증세 있는 복지’와 박 후보의 ‘증세 없는 복지’ 사이의 대결이었다. 그런데 세금 이슈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이념·계층·지역간 대립의 난장(亂場) 속에 묻혀버렸다.

유권자들은 선거의 열기가 가라앉고 한참 지난 지금에서야 세금의 중요성에 눈을 뜨고 있다. 뒤늦게 “속았다” “공염불이다” 하며 비판해봤자 세금 문제를 꼼꼼히 따지지 않고 한 표를 행사한 유권자들의 책임이 크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세금을 따지고 들어야 한다. 복지국가와 경제성장의 미래를 그리는 출발선이 세금 정책이다. 2016년 4월 총선은 세금 총선이 돼야 한다.


김종윤 경제산업 에디터 yoo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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