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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자의 나라, 벨기에의 그림책 문화

[여성중앙] 강대국 사이에 끼어 존재감을 지키느라 고군분투하면서 내적으로는 양극화 문제에 시달리는, 우리와 꼭 닮은 고민을 이미 해보았던 나라 벨기에. 이들이 우리에게 전할 수 있는 메시지는 책을 성공의 도구로 좁게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희망을 길어 올리는 샘으로 여기는 문화, 이것 하나다.







가장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그림책을 진열해둔 벨기에 시내의 한 서점 풍경. 벨기에의 정부, 부모, 교육가들은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성에 희망을 건다.




흔히 외신에서 한국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부르듯 유럽 내에서 벨기에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하나 있다. 바로 ‘un pays surrealiste 초현실주의자의 나라’라는 말이다.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땐 르네 마그리트와 폴 델보라는 걸출한 20세기 초현실주의 미술가를 배출한 나라여서 그리 부르나 보다 했다.



하지만 벨기에 거주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 복잡한 뉘앙스를 차차 깨달을 수 있었다. 담배 파이프를 그려놓고 그 밑에 ‘Ceci n’est pas une pipe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을 적어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그래서 이게 파이프라는 거야, 파이프가 아니라는 거야’ 보는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그 작품처럼 벨기에라는 나라는 이방인을 혼돈에 빠뜨린다. ‘이게 한 나라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상황 참 난해하네.’ 벨기에는 우리나라 경상도 정도 크기의 영토에 인구 약 1000만 명이 사는 작은 나라다. 강대국 사이에 끼어 끊임없이 침략 당하고 분열을 거듭한 역사를 가졌다. 그 흔적으로 언어권별로 나라가 분리되어 있다.



공용어는 3개(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독일어)이고, 3개의 언어 공동체와 3개의 지방 정부(왈로니, 플래미쉬, 브뤼셀), 또 이를 모두 아우르는 연방 정부가 존재한다. 지방 정부의 힘이 막강해 언어권별로 교육, 교통, 방송 통신 등 사회 기반 시스템을 제각각 운영한다.



언어권별 지역감정과 반목이 심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거기에 여타 유럽 선진국처럼 가난한 이민자 계층 문제까지 더해져 네덜란드어 지역, 프랑스어 지역, 백인 중산층이 사는 지역과 이민자들이 사는 지역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학교 역시 그렇다. 사회 계층 간 빈부 격차에 따른 불평등, 그중에서도 부모 소득에 따른 아이들의 교육 불평등 문제로 한국만큼이나 고민하는 나라가 바로 벨기에이다. 실제로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PISA)에서 벨기에는 부모의 소득?학력 수준이 아이의 학업 성취도와 밀접하게 연관된 나라, 잘하는 학생과 못 하는 학생 사이의 차이가 가장 큰 나라 중 한 곳으로 손꼽힌다.



쉽게 말해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말이다. 한 공교육 재건 토론회에서 진단한 벨기에 교육 시스템의 문제는 이러했다. ‘소득 계층 간 교류 부족, 과도한 경쟁, 엘리트주의.’ 서두에 벨기에의 아픈 구석을 드러낸 이유는 이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이 보여서다.



벨기에 정부, 부모, 교육가들은 이 지점에서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성에 희망을 건다. ‘생각의 판’을 바꿔 낡은 시스템까지 뒤흔드는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야만 문제가 해결되리라 보는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성공하기 위해 창의성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정신성이 살아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창의성을 말한다.



이들에게 책은 대체 불가능한 희망의 도구다. 벨기에의 대표적인 아동 문학 연구자인 미셸 드푸르니(Michel Defourny)가『Le livre et l’enfant 책과 아이』에서 쓴 것처럼 ‘아이에게 뿌리와 날개를 주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이 사명을 이루는 데 독서보다 좋은 수단은 없다.



독서는 아이의 단단한 언어적 문화적 뿌리가 될 것이고, 관습을 뛰어넘어 먼 곳을 보고 새로운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날개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남을 밟고 올라서야 내가 산다. 성공하기 위해 책을 봐야 한다’는 섬뜩한 논리에 사로잡힌 한국에 비슷한 고민을 이미 했던 벨기에가 전할 수 있는 메시지는 책을 성공의 도구로 좁게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희망을 길어 올리는 샘으로 여기는 문화, 이것 하나일지도 모른다.











벨기에 정부는 작가 연보를 통해 자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경력 및 저서들을 기록해 알리고 있으며, 그들의 주요 작품을 어린이들의 수집 욕구를 자극하는 미니 사이즈로 제작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STORY 1 그림책은 관계 맺기다



벨기에는 ‘스머프’ ‘땅땅(Tintin)의 대모험’ 같은 우주 대스타를 배출해낸 전통의 만화 강국이다. 취재 중 만난 한 부모는 이런 말로 벨기에만의 독특성을 설명했다. “아이가 ‘나 만화가가 되겠어’라고 선언하면 아마 다른 나라 부모들은 덜컥 걱정부터 할 거예요.



하지만 벨기에 부모들은 매우 기쁘게 생각하죠. 벨기에에서 만화가는 무척 존경받는 직업이랍니다.” 이러한 유산은 그래픽, 일러스트, 디자인 분야로 이어졌다. 앤트워프의 왕립 예술학교, 브뤼셀의 라 캉브르(La Cambre), 생뤽(Saint Luc) 같은 명성 높은 예술 대학과 가브리엘 뱅상(Gabrielle Vincent), 자크 베누아(Jacques Benoit), 안느 에르보(Anne Herbauts), 라스칼(Rascal), 키티 크라우더(Kitty Crowther) 같은 뛰어난 그림책 작가들을 보유한 나라.



일러스트와 그림책 분야에서만큼은 영토를 맞댄 강대국 프랑스, 독일에 뒤지지 않아 ‘작지만 창조적 에너지로 가득 찬 나라’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이 모든 것의 바탕엔 당연하게도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있었다. 도서관과 그림책을 통해 교육 양극화 완화를 꿈꾸는 정책가, 프랑스어권 지방 정부의 문화부 장관 마르틴 가르수(Martine Garsou)를 만났다.



Q 브뤼셀 시내에 있는 어린이 그림책 전문 서점 Le Wolf에서 정부가 직접 발간하고 무료 배포하는 벨기에 그림책 작가의 핸드북을 보았습니다. 서점 자체도 정부 후원을 받고 있었고요. 그 작은 서점에까지 정부의 손길이 미친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2002년부터 왈로니-브뤼셀 정부의 이름으로 그림책 상을 만들어서 작가들을 후원하고 도서관 사서들도 교육시키며 본격적인 지원책을 펼쳤죠. 특히 저희는 공공 도서관과 학교 내 도서관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부모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 이민자 등 소외 계층 아동들이 책을 쉽게 접하고 책과 친해져야만 교육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Q 교육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책을 활용하나요

도서관이 지역 놀이방들의 요구를 분석하고 이들과 연계한 독서 놀이 활동을 운영하고, 출산영아관리소라는 정부 조직과 협력해 벨기에의 모든 산모가 신생아와 함께 찾을 수 있는 독서방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벨기에의 모든 아동이 어린 나이 때부터 전문가들이 엄선한 좋은 그림책에 공평하게 노출될 수 있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해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단순히 돈을 후원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교, 놀이방, 유치원, 도서관 등 여러 섹터가 서로 만나 시너지를 낼 수 있게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정부의 여러 지원 활동 중 특히 아이들의 반응이 좋았던 프로그램이 있나요

2008년부터 매해 열리는 ‘La Petite Fureur(작은 열광)’ 콩쿠르가 예가 되겠네요. 3세에서 13세까지 나이대별로 3권 정도의 그림책을 과제작으로 선정하면, 아이들이 그중 한 권을 골라 자유로운 형태로 창작물을 만들어 응모하는 콩쿠르입니다. 이때 벨기에 작가의 작품으로 한정해 자국 그림책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죠. 전국의 학교, 공공 도서관과 협력해 대규모 홍보를 하고요. 지난해엔 약 500명의 어린이가 이 콩쿠르에서 상을 탔습니다. 평소 그림책 작가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없던 소외 계층 어린이들에겐 이 행사가 정말 각별했을 겁니다. 자신이 책을 읽고 만든 창작물로 정부로부터 상을 탔다는 것, 대단한 작가들을 직접 만난다는 것이 아이에겐 큰 자긍심이 되며 그 뿌듯함은 독서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지죠.



Q 어린이 독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흔히 독서를 혼자 하는 개인적인 행위라고 생각합니다만 저희의 슬로건은 ‘독서가 사회적 연결 고리를 만든다’입니다. 책을 매개로 아이는 작가와 연결되고, 사회 현실과 연결되고, 부모님?선생님과 연결됩니다. 책 속 주인공에 감정이입했던 경험, 좋아하는 책에 대해 타인과 이야기 나누는 게 얼마나 즐거웠는지 생각해보세요. 책은 관계를 만듭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 읽는 것이 중요해요. 책과 아이 둘만 덜렁 남겨놓는다고 모든 게 해결되리라 기대해선 안 되는 것이죠.







정부의 세심한 지원이 빛나는 어린이 책 공간



1 Bibliotheque Herge

브뤼셀에는 코뮨(Commune)이라는 행정 구역이 있다. 서울로 치면 ‘구’에 해당하는데, 대부분의 코뮨에서 어린이 전용 도서관을 운영한다. ‘땅땅의 대모험’을 쓴 만화가 에르제(Herge)의 이름을 딴 이 도서관은 에테르비크(Etterbeek) 구청에서 운영하는 동네 도서관. 매주 저자와의 만남, 책 놀이 아틀리에, 서평 클럽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벨기에에서 도서관은 비상업 공간 중 시민들이 가장 자주 찾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www.biblioherge.be



2 Le Wolf

들어서는 순간 환상적인 이야기 숲에 발을 들인 듯한 느낌을 주는 어린이 전용 서점. 벨기에 출신 작가의 그림책을 전면에 배치하고 주말마다 작가와 함께하는 박물관 견학, 책 만들기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독자와 벨기에 출신 작가, 미술관?박물관 등 공공 기관을 연결시키는 중개자 역할을 해 정부로부터 적극적인 후원을 받고 있는 공간이다. www.lewolf.be











개인화 그림책을 보고 있는 아이.




STORY 2 벨기에 엄마들이 책과 아이를 이어주는 법



유럽 중고등학교는 한국과 달리 유급 제도가 보편화되어 있다. 프랑스에서 15세 미만 아이들의 유급 경험 비율이 30%인 데 반해 벨기에는 50%에 이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성적에 대한 압박감, 낙오에 대한 불안감을 심어주는 교육 제도를 가졌다는 면에서 한국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벨기에 엄마들도 한국 엄마들처럼 교육열에 불타오를까?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두 명의 주부 마린(Marine de Waziers), 마리(Marie Thibaut de Maisieres)를 만났다.



각각 세 명의 자녀를 둔 엄마들이자 ‘마이 지브라북(My ZebraBook)’이라는 개인화 그림책 크리에이터. 아이의 이름을 책에 넣어 세상에서 하나뿐인 그림책을 만들어주는 이 서비스는 현재 벨기에를 대표하는 스타트업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Q ‘아이의 이름을 넣은 개인화 그림책’이라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게 되었나요

엄마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깨달았죠.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보다 좋은 선물은 없을 것 같다고 말이에요. 저희의 성장 과정을 돌이켜보면 외로울 때, 마음이 복잡할 때, 심심할 때 등 책이 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느꼈던 순간이 많았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그러했듯 저도 자녀에게 책이라는 좋은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책을 친밀하게 느끼도록 하기 위해 이름을 넣은 개인화 그림책 아이디어를 내게 됐고요. 표지에 자기 이름이 찍힌 그림책이 있다면 당장 펼쳐 보고 싶지 않겠어요?



Q 두 분 역시 책에 대한 애정을 부모님에게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나요

네. 어릴 때 아버지와 여름휴가를 가면 짐 가방을 늘 두 개 챙기셨어요. 하나는 옷가지를 담은 가방이고 다른 하나는 책만 가득 채운 가방이었죠. 열정적으로 책을 읽는 아버지에게서 그 열정을 물려받았어요. 어머니는 이야기 지어내는 걸 좋아하셨고요. 할머니에게만 프랑스어로 말을 거는 고양이 이야기 등 말도 안 되는 스토리를 지어내 저를 속이곤 하셨어요. 지금 제가 그 취향을 물려받아서 저희 아이들이랑 시답잖은 이야기 짓기를 즐겨 한답니다. 마구잡이 상상을 주고받는 거죠. 예를 들면 ‘세상에서 가장 밥맛 떨어지는 요리 상상하기’ 이런 주제를 던져놓고, 마녀의 날개 깃털과 용 비늘로 치즈를 만들면 어떤 맛일까 상상하는 식이에요.



Q 한국 엄마들은 ‘내 아이가 뒤처질까 봐’ 혹은 ‘나중에 커서 공부 잘하라고’ 책을 읽힙니다. 벨기에도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인데, 이곳 엄마들은 독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아이들이 이미 학교에서 신경 쓸 게 많은데 독서까지 성적과 연결시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벨기에 엄마들에게 독서는 부모와 아이가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함께 즐기는 시간이라는 의미가 더 큽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독서의 기쁨을 아이에게 전해줄까를 고민합니다. 부모가 학습과 교육을 혼동하면 갈등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Q ‘학습과 교육을 혼동한다’는 말이 많이 와 닿네요

학교는 지식을 학습시켜주는 공간이고, 가정은 인격 교육의 공간인 것 같아요. 부모는 긍정적인 책 습관이나 책에 대한 애정을 물려주는 사람인데, 책을 가지고 학습과 성적만을 이야기한다면 아이가 오히려 책과 멀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이자벨 샤브페이예(아동 심리 상담가)

“쓸모없어 보이는 일들에서 창의성이 피어납니다”



1982년 창설된 비영리단체 FRAJE는 0~12세 어린이를 응대해야 하는 공공 시설 근무자들을 위한 평생 교육 기관이다.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등이 아동의 심리 성장 발달 단계를 고려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가족 친화적인 공간이 되도록 독려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30년 넘게 해오고 있다. FRAJE 소속 심리 상담가 이자벨 샤브페이예(Isabelle Chavepeyer)로부터 아이를 성장시키는 독서 경험에 대한 이야길 들었다.



Q 그림책을 어떻게 읽어야 아이의 창의력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먼저 창의력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네요. 창의력은 미래에 어떤 성과를 내겠다는 뚜렷한 목적하에 근육 단련을 하듯 훈련을 해서 길러지는 능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다지 쓸모없어 보이는 일들, 예를 들면 휴식, 실수, 실패, 재도전, 몽상, 바보스러운 질문 등을 스스로에게 허용할 때 발휘되는 능력이죠. 아이의 창의력에 있어 중요한 것은 ‘리듬’입니다. 아이마다 제각각의 발달 속도가 있는데 부모가 그것을 존중하는 게 무척 중요해요. 리듬을 파악하려면 ‘관찰’해야 합니다. 자녀의 독서 습관과 개성 등 독서 리듬을 파악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세요. 남의 집 자녀 리듬을 파악하고 따라가는 데 더 열을 쏟는 엄마이지 않았나 돌아보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교감’입니다. 부모의 눈빛, 쓰다듬음, 따뜻한 목소리보다 더 유아의 창의성을 자극하는 도구는 없습니다.



Q 한국은 극심한 경쟁 사회라 엄마들이 불안감을 떨치기가 힘듭니다. 조언을 해주신다면

학교 시스템을 단박에 바꾸기 어렵다면 개인적인 차원에서라도 일상 속 대안을 자꾸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지능, 감성, 인성 등 모든 역량은 부모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가장 폭발적으로 발달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그림책이나 문학 작품을 읽으며 느낀 것들을 부모와 함께 종알종알 떠드는 시간을 만들어보세요. 엄마가 어린 시절에 했던 상상을 들려줘도 좋고요. 잠자기 전 단 몇 분이라도 아이와 그렇게 교감의 시간을 보낸다면 그 어떤 학원 교육보다 아이의 창의성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벨기에의 창의 교육가 필립 브라쇠르와 그의 작품들. 책도 쓰고 직접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기도 한 그는 아이의 창의성을 키우기 위한 두 가지 선행 조건으로 자존감과 자주성을 이야기했다.




STORY 3 그림책, 창의적으로 읽는다는 것



벨기에의 창의 교육가 필립 브라쇠르(Philippe Brasseur)는 네 명의 자녀를 둔 아빠이자『1001 activites autour du livre 책을 둘러싼 1001가지 활동』『Genie toi-meme 천재는 너야』등의 책을 쓴 작가이자 강연가, 직접 그림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다. 반짝이는 시선과 유머 감각으로 창의성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는 그에게 상상을 자극하는 그림책 읽기 방법에 대해 물었다.



Q 그림책이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 세계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그림책『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작가 모리스 센닥은 좋은 그림책이란 ‘시각적으로 쓰인 한 편의 시’와 같다고 했습니다. 아이의 화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이미지로 표현한『괴물들이 사는 나라』은 아이의 상상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어른들이 강요한 세계에서 자유로운 느낌, 자신이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던 에너지로 충만한 느낌, 공감을 넘어 쾌감까지 선사하는 것이죠. 이렇게 그림책은 아이들의 상상과 꿈에 형태를 부여합니다. 그 이야기를 어른이 자신에게 읽어줄 때 아이는 이런 메시지를 듣습니다. ‘너는 우리와 다르고 개성 있는 존재가 될 권리가 있단다. 꼭 나를 닮을 필요는 없어. 가서 마음껏 상상하고 꿈꾸렴.’



Q 만화 속 영웅이나 공주에만 열광하는 아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아이들은 자신이 작다는 것, 실수한다는 것, 아직도 배울 게 많다는 것을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확인받습니다. 어른들이 대놓고 “넌 어려서 안 돼. 못 해” 하며 알려줄 때도 있죠. 이런 현실 속에서 자존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 상상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우주를 나는 영웅이나 마법을 부리는 공주가 되었다고 상상하며 스스로 크다고, 강하다고, 능력이 많다고 믿는 거예요. 내면적으로 성장하려면 그런 상상이 필요합니다.



Q 그림책을 읽어준 뒤 아이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 게 좋을까요

엄마들이 흔히 오해하는 게 바로 이것입니다. 책을 읽고 꼭 질문을 던지거나 독후 활동을 강요할 필요는 없습니다. 굳이 질문을 하고 싶다면 열린 질문을 해야 합니다. “네가 저 사람이라면 어떨 것 같아?”처럼 주인공의 입장을 느껴보게 하는 질문.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답도 스스로 정하게 하는 것이고요.



Q 그림책으로 아이의 창의력을 자극하는 다른 아이디어를 귀띔해주신다면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흥미를 느끼는 방식-책의 크기, 색깔, 작가별, 장르별 등-이 무언지 묻고 함께 책장 정리를 하세요. 매주 요일을 정해놓고 ‘이번 주 최고의 도서’를 선정해 그 책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해두는 방식도 흥미를 자극하죠. 아이가 특별히 좋아하는 책이 있으면 ‘주인공의 신분증 만들어주기’ 놀이도 좋습니다. 주인공의 인적 사항과 가족 관계, 주소, 취향 등등을 카드 형태로 만들어보는 거죠. 만화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만화책 페이지 몇 장을 복사해 말풍선을 지우고 아이에게 상상으로 채워보라고 하는 놀이도 좋아요. 수십 권의 그림책을 동시에 펼쳐놓고 공통점을 찾아보는 놀이도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무가 나오는 페이지만 다 펼쳐놓고 한꺼번에 모아서 보면 나무가 꼭 갈색 기둥에 녹색 가지인 건 아니란 걸 아이 스스로 느끼게 될 겁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흥미를 느끼는 방식-책의 크기, 색깔, 작가별, 장르별 등-이 무언지 묻고 함께 책장 정리를 하세요. 매주 요일을 정해놓고 ‘이번 주 최고의 도서’를 선정해 그 책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해두는 방식도 흥미를 자극하죠.



아이가 특별히 좋아하는 책이 있으면 ‘주인공의 신분증 만들어주기’ 놀이도 좋습니다. 주인공의 인적 사항과 가족 관계, 주소, 취향 등등을 카드 형태로 만들어보는 거죠. 만화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만화책 페이지 몇 장을 복사해 말풍선을 지우고 아이에게 상상으로 채워보라고 하는 놀이도 좋아요.



수십 권의 그림책을 동시에 펼쳐놓고 공통점을 찾아보는 놀이도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무가 나오는 페이지만 다 펼쳐놓고 한꺼번에 모아서 보면 나무가 꼭 갈색 기둥에 녹색 가지인 건 아니란 걸 아이 스스로 느끼게 될 겁니다.



취재를 하며 알게 된 의외의 사실이 있다. 벨기에의 정책가, 교육가, 부모들도 모두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PISA)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은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늘 최상위권 아닌가요?”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60여 개의 참가국 가운데 벨기에가 30위권임에도 “그 정도면 나쁘지 않죠”라고 말하며 쿨하게 넘기기 일쑤였다는 것. 그들이 가장 의미 부여하고 또 언론에서 집중 보도하는 PISA의 항목은 불평등에 대한 것이었다.



언어권별, 소득 계층별, 부모의 학력별로 아이의 학업 성취도가 어떻게 다른지, 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무얼 해야 하는지 토론하기 위해 PISA를 인용했다. 이런 태도는 한국이 톱 클래스에 든다는 뉴스 이면, 우리가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진실을 떠올리게 한다.



학습 태도와 관련된 정서적 지수에서 한국 학생들은 OECD 평균을 밑돈다는 사실 말이다. 내적 동기, 자아 효능감, 수학 불안감 등 정서와 관련된 모든 항목에서 그렇다.



학업 성취도는 높지만 흥미도와 자신감은 최하위권인 아이들. ‘꼴찌도 행복한 나라’를 동경하면서 ‘일등도 불행한 나라’에 사는 아이들. 인터뷰 도중 창의 교육가 필립 브라쇠르가 남긴 이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창의력에는 두 가지 선행 조건이 있습니다. ‘자존감’ 그리고 ‘자주성’이죠. 어른이 배울 내용과 질문을 이미 짜놓고 아이를 그 틀 안으로 집어넣는 방법은 학업 성취도를 올리는 데 좋을지 모르지만 창의력을 죽이는 짓입니다. 그림책에 관심을 갖는 한국 부모들이 이 성과주의의 패러독스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이 글을 쓴 최혜진은

『여성중앙』과『쎄씨』에디터 시절, 누구보다 주도면밀하고 깐깐한 워커홀릭이었다. 천만다행으로 일보다는 연애를 더 좋아했다.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유럽으로 날아가 프리랜서 글쟁이로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책 『그때는 누구나 서툰 여행』을 썼다(blog.naver.com/364eve). 오는 3월부터는 여성중앙을 통해 유럽의 그림책 작가 인터뷰를 연재할 계획이다.











기획=조영재 여성중앙 기자, 사진=최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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