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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영웅 시리즈 〈42〉닉 우드먼 고프로 창업주 겸 최고경영자

액션캠’이라고도 불리는 액션카메라를 개발한 닉 우드먼. 자신의 취미에서 착안해 성공 신화를 일궜다.


디지털 카메라의 수난시대다. 수백만 화소의 고화질 스마트폰 카메라에 밀려 디카 촬영은 촌스러운 모습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2009년 이후 지금까지 1000만 대 가까이 팔린 인기 디카가 있다. 바로 미국 디카 업체 고프로(GoPro)의 제품들이다. 고프로는 익스트림 스포츠에 많이 사용되는 고화질 개인용 액션카메라를 개발·제조·판매한다.

서핑하다 만든 액션카메라 1시간 1000대 팔린 레저 필수품으로



액션카메라는 인간의 팔목이나 모자 또는 자동차나 자전거, 행글라이더 등 각종 탈것에 부착해 생생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장비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이마에 고프로 카메라를 부착하고 놀이기구나 각종 탈것에 오르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렇게 촬영한 장면은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장점이 있다. 남이 나를 찍어주는 여느 카메라의 시각과 달리 내 눈앞의 모습을 내가 찍은 것이라 1인칭 시점으로 게임 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도 준다. 리모트 컨트롤로 촬영할 수도 있다.





팔목·모자에 붙여 생생한 장면 찍는 액션카메라



‘히어로’라는 시리즈 브랜드로 유명한 고프로의 액션카메라는 와이드 어안 렌즈(물고기 눈처럼 시야각이 넓은 렌즈)를 통해 170도 각도의 넓은 장면을 고화질(최근 선보인 히어로4 실버 에디션은 풀HD 1080p 60프레임 지원)로 촬영할 수 있다.



담뱃값 크기로 작고 가벼우면서도 튼튼하다. 극한스포츠를 중심으로 다양한 스포츠와 레저 생활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리는 영상을 촬영하는 데 많이 이용되기도 한다. 대당 200~400달러로 가격도 합리적이다. 올림픽을 비롯한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면 고프로의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최근 선보인 고프로 히어로4.


고프로의 창업자인 닉 우드먼(39)은 액션카메라의 개발자·생산자이자 가장 열렬한 소비자이기도 하다. 프로슈머(생산에 참여하는 새로운 유형의 소비자)인 셈이다.



실리콘밸리에서 두 차례에 걸쳐 닷컴기업을 창업했다가 실패한 그는 2002년 재충전을 하기 위해 세계 일주 서핑 여행을 떠났다. 호주 여행에서 활기차게 서핑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중일전쟁(1937~45),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포함한 제2차 세계대전(1939~45) 등을 취재한 전설적인 전쟁사진기자인 로버트 카파가 남긴 이런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신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드먼은 아마추어 사진가가 쓰는 일반적인 카메라 장비로는 자신의 모습을 충분히 가깝게 찍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전문 사진가가 쓰는 장비가 있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일반인은 구입할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우드먼은 무릎을 쳤다. 전문 사진가가 스포츠나 액션 장면을 찍을 때 활용할 수 있는 전문적인 사진 앵글을 제공해주는 카메라 시스템을 개발하면 수요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계 서핑 여행하며 얻은 창업 아이디어



액션카메라 창업 아이디어는 지극히 단순한 곳에서 나왔다. 그는 기존의 카메라를 자신의 손목에 끈으로 묶은 뒤 직접 서핑을 하면서 자신이나 친구들의 모습을 찍었다. 그는 호주와 인도네시아에서 다섯 달 동안 자신의 아이디어를 시험한 뒤 귀국해 서핑용 카메라 개발에 나섰다. 결과는 놀라웠다. 고프로의 액션카메라 제품은 2004년 시장에 첫 출시된 이후 매년 2배 이상 판매가 증가해왔다. 2013년엔 9억850만 달러의 매출과 6060만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최근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10~12월) 순이익만 1억2230만 달러에 달했다. 1시간에 1000대씩 팔아치운 셈이다.



창업주인 우드먼은 2013년 미국에서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1426명의 억만장자 가운데 가장 어린 자수성가형 창업기업인의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6월에는 나스닥에 상장을 했다. 그러면서 우드먼의 재산은 단박에 2배로 불어 39억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미국의 젊은 창업자 중 재산이 가장 많이 증가한 사람이 됐다.



우드먼의 어린 시절은 다른 미국 소년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의 삶이 바뀐 것은 고교 시절 서핑에 열광적으로 빠져 들면서다. 고교 마지막 해 그는 모든 팀스포츠를 그만두고 오로지 서핑에만 몰두했다. 심지어 학과목도 등한시했다. 성적은 B+정도를 유지했다. 다만 서핑에만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은 병적이라고 생각해 무선 조종 글라이더를 가끔 즐겼다.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에 가기로 결정한 것도 학교 근처에 서핑을 즐길 수 있는 바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학에서 비주얼 아트를 전공하면서 창의적인 글쓰기를 부전공으로 공부한 그는 수업을 마차자마자 바로 바다로 달려가 서핑을 즐겼다. 이 취미는 그에게 고프로 창업의 길을 열어줬다. 우드먼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당시 서핑에서 열정을 바칠 대상과 인생의 목표를 발견한 것 같았으며 열정은 내 인생 최대의 가이드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열정이 머무는 곳이 곧 몸 바칠 곳”이라며 “열정은 인생의 진로를 일러준다”고 강조했다. 또 “고교 시절 미식축구와 야구 같은 팀스포츠를 그만두고 서핑과 무선조종 비행기와 관련 기계에 빠졌는데 이 모든 것이 지금 고프로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라고 말했다.





두 번의 창업 실패가 준 교훈



고프로를 창업하기 전에 그는 두 차례의 스타트업(창업) 실패를 경험했다. 첫 창업은 엠파워올닷컴(EmpowerAll.com)이라는 업체였다. 2달러 이하 짜리 전자제품을 파는, 일종의 전자제품 1000원샵이었는데 제대로 시작도 해보기 전에 문을 닫았다. 그 다음은 닷컴 열풍이 최고조에 달했던 1999년 창업한 펀버그(Funbug)였다. 현금 경품을 주면서 이용자를 모으는 게임과 마케팅 플랫폼이었다. 이 사이트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우드먼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제공했다.



창업에 두 차례 실패한 그는 재충전을 위해 서핑 세계 일주를 떠났다가 고프로 창업의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실패가 너무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더 이상 자신을 믿고 돈을 모아준 투자가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디어가 과연 비즈니스 세계에서 먹힐지를 두고두고 확인했다.



액션캠으로 찍은 이미지들. 카메라를 몸에 부착한 사람이 본 장면을 그대로 찍어 실감 난다.


우드먼은 “나는 고프로가 펀버그처럼 공중분해될까봐 너무도 두려웠다”며 “그래서 1인 기업으로 시작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트럭 운전부터 영업, 제품 디자인, 고객지원담당 업무를 전부 자신이 직접 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하루 종일 직접 공구를 이용해 시제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이를 “건설적인 공포”라고 표현하며 “내가 경험한 닷컴붐과 참담한 추락의 부산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또 다시 실패하면 세상을 등질 생각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실패의 공포가 그를 완벽주의자로 만든 셈이다.



고프로 창업 당시 그는 경비를 아끼기 위해 부모의 집으로 이사를 했으며 하루 20시간씩 주 7일을 일했다. 개인 생활은 모두 포기한 셈이다. 그는 이렇게 극단적인 생활에 4년간 몰두했다. 몇 시간씩 일어나지도 않고 자리에 앉아 플라스틱을 녹이고 붙였으며 재봉틀로 여기에 쓸 끈을 만들었다. 기계 부품 제작이 불가능했던 그는 필요한 부분은 아웃소싱을 했다. 기존의 카메라에 있는 부품의 사용 허가를 받아 자신의 의도에 맞게 개량한 것이다. 우드먼은 중국에 있는 호탁스라는 제조사를 활용했다.



이 회사의 3달러 5센트짜리 카메라를 개량해달라고 주문했는데 보내온 물건이 자신의 의중과 일치하지 않는다며 반품하고 다시 받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CAD(Computer Aided Design)를 다룰 줄 몰라 드릴로 구멍을 뚫어 연결한 플라스틱 모델을 중국에 보내 그대로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고프로가 된 것이다.



“우드먼은 엄청나게 열정적이며 존재감이 크다. 일단 목표를 잡으면 무조건 앞을 보고 달린다. 그가 ‘이렇게 하겠다’라고 말하면 그건 조만간 실현된다고 믿어도 된다. 그는 자신이 말한 것을 그대로 실현해 낸다.” 리버우드 캐피털이라는 벤처펀드에서 고프로의 창업자금을 지원한 엔젤투자가인 마이클 마크스의 말이다. 누구나 자신의 취미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일과 취미는 엄연히 다르다. 성공적인 창업을 위해서는 열정과 집념을 한데 버무려 피를 말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우드먼은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에게 우드먼이 두고두고 큰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닉 우드먼이 걸어온 길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 클라라 카운티에서 출생.



1997년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비주얼 아트 전공, 창작 글쓰기 부전공. 졸업 뒤 마케팅 회사를 창업했으나 실패.



2002년 26세의 나이에 두 번째 사업에 실패한 뒤 서핑 여행을 떠남. 자신의 서핑모습을 담기 위해 35㎜ 카메라를 몸에 부착하는 벨트를 고안. 고프로(GoPro) 창업.



2004년 35㎜ 필름을 사용한 액션카메라 첫 출시.



2015년 1월 재산 순 가치 2억 5000만 달러. 현재 배우자 질 스컬리, 두 명의 자녀와 함께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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