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에서] 부임 첫 행사에 만삭 부인과 참석
앞줄 배려받고도 맨 뒤 서서 입장
사람들 악수 받아주느라 밥도 걸러
트위터에 댓글 쓸 땐 '선생님' 표현

지난해 10월 30일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한 리퍼트 대사는 어눌한 한국말로 “한·미는 특별한 동반자”라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41세 동맹국 대사의 행동은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역대 최연소라는 타이틀은 오히려 ‘어리다’는 선입견을 떨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리퍼트 대사는 조금씩, 천천히 한국 속으로 들어왔다. 애견 ‘그릭스비’를 데리고 광화문광장을 산책했고, 트위터에 소소한 일상들을 올렸다. 트위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팔로어들의 메시지에 답을 달아 주면서 그는 ‘선생님’이란 한글을 사용했다. 한국에서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에게 어떤 호칭을 쓰는지 알아본 뒤 선택한 표현이었다.
이런 노력들로 트위터엔 사람들이 몰렸고, 리퍼트 대사는 점점 한국 속에 동화됐다. 서울에서 낳은 첫아들의 중간 이름을 ‘세준’이라고 지은 건 한국 사랑의 절정이었다.
그런 리퍼트 대사이기에 이번 비극은 더 안타깝다. 지난 5일 수술을 마친 리퍼트 대사가 입원한 병실 밖으로 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미국대사관 관계자는 “저렇게 웃으시다 상처 부위가 덧날지도 모르는데…”라고 중얼거렸다. 의연한 모습으로 주변을 안심시키려 하는 바람에 더 걱정된다는 얘기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턱 부위를 다쳐 사실 말할 때마다 굉장히 아파한다”고 했다. 의료진도 “말하는데 지장은 없겠지만 얼굴 근육을 움직이면 흉터가 더 커질 수 있으니 말하지 말라”고 권했다고 한다. 하지만 리퍼트 대사는 수술받은 지 몇 시간도 안 돼 윤병세 외교부 장관, 박근혜 대통령과 통화했다. 사실 윤 장관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리퍼트 대사가 “괜찮다. 전화로 이야기하자”고 해 통화가 성사됐다. ‘한국식 예절’을 지키기 위해 무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퍼트 대사는 지금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비극의 순간에도 한국을 향해 여전히 따뜻한 손을 뻗고 있다. 주한 미국대사관과 소통하고 있는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평소 리퍼트 대사가 보여 준 남다른 한국 사랑을 생각하면 ‘sorry’라는 단어로는 안타까움이 다 표현되지 않는다”고 했다. 리퍼트 대사의 트위터와 블로그에 응원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 시민들도 같은 마음일 게다.
유지혜 정치국제부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