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한국 프로젝트' 최종 프레젠테이션은 암 투병 아내 앞에서 …





[세계 속으로] '건축 노벨상' 받은 춤토어 사무실 방문기













세계 주요 도시가 스타 건축가와 손잡고 랜드마크를 세워 도시 매력도 높이기 경쟁에 나서고 있다. 오늘날 건축의 흔한 풍경이다. 저명한 건축가들은 대도시에 사무실을 두고 세계 각지에 초고층 건물을 남긴다. 그러나 페터 춤토어(Peter Zumthor·72)는 이와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스위스의 외딴 산골 마을 할덴슈타인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건물을 짓고 있다. 그의 삶과 건축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뭘까. 춤토어의 한국 프로젝트인 경기도 화성 남양성모성지 내 경당 작업에 예술 자문으로 참여 중인 선승혜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이 춤토어 아틀리에를 다녀왔다.





 서울에서 스위스 취리히까지 비행기로, 취리히에서 쿠어까지 기차로 이동한 뒤 다시 할덴슈타인으로 들어갔다. 이 길고 복잡한 여행은 오로지 춤토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스위스의 국민 건축가라 할 춤토어는 2009년 ‘건축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그는 지난해 8월 남양성모성지의 작은 건물 설계를 위해 방한했다. 남양성모성지는 병인박해(1866년) 때 순교한 이들을 기리는 곳으로 1991년 마리아 축일에 성모께 봉헌되면서 한국 천주교회 사상 첫 성모순례지가 된 곳이다. 춤토어는 첫 한국 프로젝트를 위한 3박4일의 짧은 일정 대부분을 한국 문화를 체험하며 보냈다. 나는 그에게 창덕궁 후원(비원)을, 국립중앙박물관의 ‘산수화, 이상향을 찾아서’전을 안내했다. 그는 또 진관사에서 하루 묵으며 템플스테이 체험도 했다. 건물을 세울 곳에 대한 관심은 이어졌다. 춤토어는 “디자인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미감을 이해하고 싶다”며 이번엔 나를 아틀리에로 초대했다.



 스위스 쿠어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 택시를 탔다. 시내를 빠져 나와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있는 마을로 들어갔다. 쾌청한 하늘에 숭고한 산맥을 배경으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마을 한가운데는 1918년이라고 새겨진 우물이 있고, 버스 정류장 뒤에 외양간이 있었다. 동네 아낙이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게 가끔 보일 정도였다. 택시 운전사는 주소만 보고도 춤토어의 사무실이라고 했다. 명패도 작았고, 동네 다른 집에 비해 두드러지는 모습도 아니었다. 세계적 건축가의 아틀리에 겸 거주공간치고는 소박했다.



 춤토어의 아틀리에는 몇 개의 작은 건물로 나뉘어 있었다. 회의는 주거공간과 연결된 건물에서 이틀간 진행됐다. 빛이 잘 들고 바깥의 산과 나무가 보이는 유리 창문이 인상적이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의 리노베이션 설계도 눈에 띄었다. 인근 동네 포도밭의 와인 저장고 설계 모형을 보며 훈훈한 마음이 됐다. “왜 이렇게 외진 곳에 사시나요?”라고 묻자 춤토어는 “동네가 더 집중하기에 좋다”며 웃었다. 위대한 예술은 물리적 중심에 있지 않아도 된다. 중심은 세상에 있지 않고 내 마음에 있다.



 회의를 위해 넓은 테이블에 앉았다. 서울에서 출발하면서 준비할 사항을 확인하자 “오면 물어볼 것이 많다”는 회신이 왔었다. 그는 질문과 대답으로 회의를 이어갔다. 그는 “건축 교육이란 스스로 질문하고 교수의 도움으로 해답을 찾으며 질문을 줄여나가고 다시 해답을 찾는 과정의 무한 반복”(96년 스위스 멘드리시오 건축대학 강연에서)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질문은 대개 “직관적으로 어떤가?”였다. 그가 내게 원하는 대답은 한국적 미감, 그 땅에서 자라서 생긴 자연스러운 미적 직관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춤토어는 대화 중에 트레이싱지를 펼치고 파스텔을 들었다. 쓱싹쓱싹 자신의 생각을 그려나갔다. 오후엔 스태프도 바닥에 둘러앉았다. 마치 한국 대학생들의 MT처럼. 8명 정도가 신발을 벗고 동그랗게 앉은 채 자유롭게 말하는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춤토어는 설계할 경당이 “한국 문화의 맥락에서도 자연스러웠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당의 방이 몇 개일지 정할 때도 한국 미학의 기본 개념에 대한 나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준비해 간 한국의 고건축·공예·회화의 이미지를 함께 봤다. 병산서원 사진에는 “아, 이 빛이 건물에 내려오는 모습을 보라”며 한참 들여다봤다. 자신의 건축을 타국에 전달하는 게 아니라 그 장소의 미감에 자신을 녹이려는 모습이었다. 회의 후 저녁식사를 마치며 춤토어는 “새벽에 일어나 생각을 정리할 것”이라고 했다.



 둘째 날 아침, 춤토어가 틀어 놓은 첼로 선율이 온 아틀리에에 퍼졌다. “오후에 가장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남아 있다. 이걸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 암으로 몸이 불편한 부인 앞에서 이번 한국 프로젝트 계획을 직접 발표할 거라 했다. 그는 부인에 대해 “암이 뇌를 손상시켜 발음을 제대로 할 수 없고 걸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생각과 마음은 언제나처럼 맑다”고 말했다. 남편은 모형과 스케치를 보이며 정성껏 설명했고, 아내는 귀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좋다고 표현했다. 아내는 “너무 건물이 크지 않은가, 더 아담하면 좋겠다”고 했다. 남편이 “음향시설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하자 아내는 “자연의 소리”라고 답했다. 아픈 아내를 감싸는 거장의 따뜻함이 동석한 이들에게 전달됐다.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가까운 이들에게 소홀하지 않았을까. 아픔을 기쁨으로 바꾸는 준비 과정이 이 건물의 디자인에 녹아들었다. 드디어 부인이 “좋아요”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아 부인에게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부부는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춤토어는 결과만으로 승부하는 건축가가 아니었다. 나는 일을 하러 출장 왔다는 사실을 잊었다. 종교 순례를 온 듯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는 그가 설계한 발스 온천으로 갔다. 스위스 그라우뷘덴 지역 내 발스 온천(1996)은 온천 수맥을 따라 건축 구조물을 감추는 방식으로 설계한 ‘겸손한 건축’으로 유명하다. 건물이 주인공 노릇을 하지 않고, 물을 담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이곳에서 목욕 재계를 하기 위해 연간 4만 명 이상이 찾는다. 쇠락한 오지는 건축 순례지가 됐다.



 춤토어와 보낸 이틀간, 미적 가치는 중앙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고도 충분히 돋보인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건축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건축가’로 꼽히는 이유는 수상 경력 때문만이 아니다. 본질과 원칙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무엇을 배려할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그 배려심의 따뜻함이 의연한 아름다움으로 전달된다.



 페터 춤토어의 건축은 우리 사회가 압축성장을 거치며 잃어버린 건 무엇일까 되돌아보게 한다. 그와의 만남은 일상의 깨달음, 생활 속의 순례와도 같았다. 춤토어는 웅혼한 자연에 대해 겸허하며, 기념비적이고 상업적인 건축보다 주변과 일상에서 깊이를 발견하는 건축을 지향한다. 주변이라고 소홀히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단순하게 보이는 건물에 완성도를 극대화한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배려·절제·성실을 응축시킨 영혼의 힘이다.



사진 설명



사진 1
스위스 할덴슈타인 아틀리에의 페터 춤토어. 거장 건축가는 회의를 하며 주로 묻고 경청했다.



사진 2 춤토어 아틀리에 외관.



사진 3 경기도 화성 남양성모성지에 세울 경당의 나무 모형.



사진 4 바깥 풍경을 끌어들인 회의실에서 스태프는 신발을 벗고 둘러앉아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선지연]



사진 5~7 스위스 숨비츠의 성 베네딕트 교회(1988) 안팎 [사진 건축가 한만원]. 오른쪽 사진은 독일 쾰른의 콜룸바 미술관(2007)으로 폭격의 흔적을 그대로 남겼다. [사진 건축사진가 김용관]



[S BOX] “건축은 삶을 담는 봉투, 수면의 침묵을 담는 예민한 그릇”



“유행에 따르지 않고 건축의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



 미국 하얏트재단의 프리츠커상 심사위원회가 2009년 페터 춤토어를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든 이유다. 당시 건축계에서도 “춤토어가 누구야?”하고 의아해했을 정도로 그는 은둔형 건축가였다. 이전 수상자들이 프랭크 게리, 자하 하디드, 노먼 포스터 등 글로벌 프로젝트를 맡는 유명 건축가들이어서 더욱 그랬다. 춤토어는 상업성 짙은 대형 프로젝트를 거부하는 소신파다. 작품이 많지도 않고 설계한 건물 중 거대한 것도 없다. 그는 1979년부터 36년째 스위스 시골 마을 할덴슈타인에서 사람을 감동시키는 건축에 골몰하고 있다.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난 춤토어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목공소에서 가구공 훈련을 받았다. 바젤 공예학교 졸업 후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건축과정을 수학했다. 대표작은 독일 바겐도르프의 ‘클라우스 경당’(2007). 이 지역에 사는 농부 부부가 의뢰한 개인 예배당이다. 목재 골조를 세운 뒤 콘크리트를 붓고, 골조로 쓰인 나무를 다시 3주간 불태워 건물에 시간의 흔적을 남겼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맞은 19세기 성당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한 독일 쾰른의 콜룸바 미술관(2007) 프로젝트 때도 원래 건물의 상흔을 남겨뒀다. 그의 건축론은 이렇다. “나는 건축을 메시지나 상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건축은 내부와 주변의 삶을 담는 봉투이자 배경이며 바닥에 닿는 발자국의 리듬, 작업의 집중도, 수면의 침묵을 담는 예민한 그릇이다.”(페터 춤토어, 『건축을 생각하다』, 나무생각)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