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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되돌린 시간 … 고통조차 예술이네

빌 비올라
여섯 살 때 강에 놀러 갔다가 익사할 뻔했다. 바닥까지 가라앉으며 푸른 세상을 봤다. 빌 비올라(64)는 “아름다웠다. 그때부터였을 거다. 인생엔 보이는 것 이외의 무언가가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돌아봤다.

 5일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만난 비올라는 또 1999년 로스앤젤레스 폴 게티 미술관 앞에서 한 노인의 죽음을 목격하며 적은 메모를 읽어줬다. “많은 사람이 바로 옆에서 벌어진 이 상황을 모른 채 지나쳤다. 구급 요원들을 뒤로 하고 미술관에 들어가 ‘수태고지’를 보고 나왔다. 망자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그가 죽어간 돌벤치에는 더 나이 든 노인들이 앉아 쉬고 있었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내 작업은 여기서 시작됐다.” 그는 90년대에 부모를 차례로 잃었다.

영국 런던 세인트폴 성당에서 지난해 공개되며 ‘현대판 성화’로 화제를 모았던 ‘순교자’ 시리즈 중 ‘물의 순교자’. 고통 속에 의연한 인간의 모습을 그린 7분10초짜리 영상이다. [사진 국제갤러리]
 삶과 죽음, 인생의 이면을 비디오로 그려내는 현대 영상 시인, 빌 비올라가 5월 3일까지 국제갤러리 2·3관에서 전시를 연다. 어머니와 아들이 모래바람 부는 뜨거운 사막을 걸어서 건너는 여정을 담은 ‘조상(Ancestors, 2012)’, 젊은 여인과 나이 든 여인이 만나 유대를 나누는 ‘조우(The Encounter, 2012)’ 등 지난 3년간의 신작 7점이 출품됐다. 검고 붉고 희고 투명한 액체를 차례로 뒤집어 쓰며 고통과 두려움 속에 변모하고 재생되는 인간을 보여주는 ‘도치된 탄생(Inverted Birth, 2014)’은 5m 높이 화면으로 상영된다.

 비올라는 74년 백남준이 뉴욕주 시러큐스의 에버슨 미술관 전관에서 ‘TV부처’ ‘TV정원’을 선보일 때 조수로 일했다. 백남준이 비디오라는 새로운 매체가 우리를 즐겁게 해 주고 예술적 영감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줬다면, 비올라는 시간을 기반으로 한 예술의 진화를 도모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시간은 무한하되 가질 수 없다. 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우리는 비디오나 기술을 활용해 때로 그 방향을 되돌린다. 시간은 내가 평생 탐구하는 주제”라고 말한다. 지난해 파리 그랑팔레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졌다. 일본 모리미술관(2006), 미국 로스앤젤레스 폴 게티 미술관(2003), 뉴욕 휘트니미술관(1997) 등 유수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1인극처럼 단순화 된 영상에서 관객은 인생의 드러나지 않는 이면을 생각하고, 먼저 간 가까운 이들을 떠올린다. 화면을 통해 자기를 돌아보는 경험은 종교적 성찰과도 맞닿는다. 전시엔 특히 지난해 런던 세인트폴 성당에 설치된 ‘순교자(Martyr)’ 시리즈 중 하나인 ‘물의 순교자’도 나왔다. 발목이 밧줄로 묶인 남자가 공중에서 쏟아져내리는 물을 맞으며 거꾸로 들려 올라가는 영상이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는 사람의 아들, 성 베드로를 연상케 한다. ‘순교자’ 시리즈는 불·물·공기·흙 4원소가 주는 고통을 소리없이 감내하는 인간상을 그린 영상이다. 작가는 “순교자라는 말의 뿌리는 ‘증인’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다. 오늘날 대중매체로 인해 우리는 종종 타인의 고통을 보는 증인이 되는데, 정작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며 “죽음을 무릅쓰고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순교자들을 통해, 인간은 신념을 위해 고통을 견딜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조우’는 사막을 각각 홀로 걷던 젊은 여인과 나이든 여인이 짧은 순간 마주하는 영상이다. 19분19초.
 고통을 삶의 필수 요인으로 긍정하고, 인내에서 희망을 찾는 이 ‘영상 시인’의 인생관·예술관은 이랬다.

 “인생은 강과도 같다. 작은 개울에서 시작해 여러 물줄기와 이어지고, 때로는 폭포도 된다. 우리 인류는 이 물줄기에 들어왔다가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러니 크든 작든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 예술도 기술도 그래서 필요하다.”

권근영 기자


◆빌 비올라(Bill Viola)=1951년 미국 뉴욕 태생의 비디오 아티스트. 뉴욕주 시러큐스대 졸업. 선(禪)불교에 심취해 80년 일본에서 18개월간 지내며 선수행. 9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미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하면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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