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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쿨하기'는 이제 그만했으면 … 다들 조금씩 아프지 않은가

김혜미
JTBC 사회부 기자
“나 진짜 쿨했어.” 친구는 오래 만난 연인과의 이별 소식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헤어지자는 그의 말에 매달리지도, 눈물을 보이지도 않고 “나도 됐어” 하며 보내줬단다. 유난히 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 친구의 가슴이 갑자기 얼어붙기라도 한 걸까. 나는 언뜻 흔들리는 친구의 눈빛에도 그저 잠자코 있었다. 괜한 위로를 건네다가 ‘쿨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는 친구의 자존심을 건드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에 온오프 스위치가 달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깜박깜박’하는 중간 치유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억지로, 쿨하게 혹은 핫하게 만들려다 보면 언젠가 전원이 나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서점에 가보니 ‘쿨한’ 책들이 넘쳐난다. 쿨하게 이별하는 법은 물론이고 쿨하게 화내는 법, 쿨하게 일하는 법까지. 친구도 이 중에 한 권을 읽었을지 모를 일이다. “감정에 빠지지 말고, 눈앞의 목표만 생각하라.” 감정의 낭비는 모든 일의 효율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못난 사람’이라는 꼬리표만 달게 된다는 것이다.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란다.

  과연 이 지침들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되는 걸까. 내가 봤던 사람들 중에 가장 쿨했던 연예인이 있다. 고(故) 최진실씨. 그녀는 한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싫어하셔도 어쩔 수 없어요. 저도 돈 벌어야죠.” 그녀는 최고로 쿨해 보였다. 화려한 결혼과 이혼, 그리고 안방으로의 복귀. 온갖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는 통에 분명 상처가 컸을 텐데도 그녀는 굳이 괜찮다고 했다.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토끼 같은 자식들’ ‘대배우라는 타이틀’들이 그녀를 더욱 쿨하게, 아니 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데려갔을 것이다. 그녀는 죽기 직전 “힘들다”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친구의 답은 “애들을 생각해서라도 독하게 마음 먹어”. 세상은 끝까지 그녀에게 ‘쿨하게’를 요구했다. 나는 우리나라에 자살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 홋카이도에는 ‘베테루의 집’이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참으로 ‘쿨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기는커녕 각자 병명도 만들어 낸다. 만성자아 왕따 증후군, 생글생글 병, 인간알레르기 증후군. 신기한 건 이렇게 서로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큰 치유의 효과가 있다는 거다. 손목에 뚜렷한 흔적을 갖고 있던 청년은 이곳에 온 뒤로는 단 한 번도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프면 아픈 대로, 속상하면 속상한 대로 전부를 드러낼 수 있는 곳. 우리도 이제 ‘쿨하기’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 솔직히 다들 조금씩은 아프지 않은가. 먼저 고백하자면, 난 ‘나만 못난이 증후군’을 앓고 있다.

김혜미 JTBC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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