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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귀신고래 … 희귀 동식물 145종 ‘미국의 갈라파고스’














캘리포니아 남쪽 바다에 떠 있는 제도 ‘채널 아일랜드(Channel islands)’는 미국의 갈라파고스로 불린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이 채널 아일랜드 5개 섬과 해양구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이유는 생태적 가치 때문이다.
채널 아일랜드에는 지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동식물 145종이 살고 있다. 한때는 돈벌이에 눈 먼 사람 때문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귀한 생명들이다. 미국 정부가 사유지를 사들이고, 환경보호단체와 오랜 기간 힘을 합쳐 생태계를 복원시켰다.
하여 채널 아일랜드는 ‘보존(保存)과 보전(保全)’이라는 미국 국립공원의 철학을 가장 자명하게 보여주는 국립공원이다.
섬이 품은 풍경도 유명 국립공원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바다에서 번쩍 떠오른 귀신고래

미국의 해상 국립공원은 두 개뿐이다. 플로리다주 남쪽의 비스케인 국립공원과 채널 아일랜드다. 채널 아일랜드 국립공원은 샌타크루즈를 비롯한 섬 5개와 주변 바다를 포함한다.

채널 아일랜드는 로스앤젤레스(LA)에서 가깝다. 자동차를 타고 1시간 북쪽으로 달린 뒤 배를 타고 1시간만 들어가면 된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LA 가까이에 있는데,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니, 미국에서도 찾는 이가 적다. 그래서 더 끌렸다. 어떤 가치가 있길래 태평양에 떠 있는 섬이 국립공원이 됐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섬 5개 중에서 겨울에 들어갈 수 있는 섬은 아나카파와 샌타크루즈뿐이었다. 이 중에서 샌타크루즈를 택했다. 샌타크루즈는 서울 면적의 약 40%로, 5개 섬 중 가장 큰 섬이다.

샌타크루즈로 들어가기 위해 항구 도시 벤투라로 향했다. 오전 8시 선착장은 한산했다. 하늘과 바다는 짙은 쪽빛을 닮아있었다. 150명까지 탈 수 있는 배에 약 50명이 탔다. 가벼운 산책 차림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짐을 잔뜩 챙긴 캠핑족도 많았다. 어쿠스틱 기타를 매고 머리를 딴 히피 같은 청년이 눈에 띄었다.

배는 샌타바버라 해협을 가로질렀다. 출발 10분 뒤, 배가 갑자기 멈춰 섰다. 선장이 토크쇼 진행자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부표 위에서 일광욕을 하는 바다사자를 구경하란다. 다시 10분이 흘렀다. 이번에는 선장이 아주 차분한 목소리를 냈다.





“멀리 귀신고래(gray whale)가 보인다. 겨울을 나기 위해 지금 막 알래스카에서 내려왔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귀신고래는 1960년대까지 우리 동해안에서도 자주 발견됐으나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북태평양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귀하신 몸’이다. 배가 고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체 고래가 어디 있다는 거야?” 갑판으로 몰려나온 승객이 웅성거리던 찰나, 100m 앞 바다에서 물이 솟구쳤다. 그리고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은 고래 등이 물 밖으로 드러났다. 승객은 파도소리 같은 탄성을 질렀고, 선장은 엔진을 껐다. 고래 관찰 규정 때문에 더 다가갈 수 없단다. 고래가 배 쪽으로 다가오면 행운이지만 이날 귀신고래는 남쪽으로 멀리 멀리 헤엄쳐 나갔다. 다시 배는 샌타크루즈 섬을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


사람이 망가뜨리고 되살린 섬

주체할 수 없는 건 고래를 본 감격만은 아니었다. 멀미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날 태평양은 파도가 유독 심했다. 아침에 먹은 음식이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차올랐을 즈음 배가 섬에 닿았다. 벤투라에서 샌타크루즈까지는 35㎞, 1시간이면 왔을 거리인데 고래 꽁무니를 쫓느라 한참을 돌았다. 흙을 밟으니 다행히도 현기증이 사라졌다.

샌타크루즈의 역사는 아주 깊다. 약 1만 년 전부터 추마시(Chumash) 족이 샌타크루즈와 주변 섬에 살았다. 평화롭던 섬에 변화가 찾아온 건 18세기 유럽인이 섬을 발견하면서다. 원주민 상당수가 감염병으로 죽었고, 남은 사람은 쫓기듯이 섬을 떠났다. 유럽인에게 채널 아일랜드는 해달 사냥의 천국이었다. 질 좋은 해달 모피가 대서양을 건너 비싼 값에 팔렸다.



19세기에는 섬 곳곳에 목장이 들어섰다. 목장 주인은 양모를 팔아 떼돈을 벌었다. 대신 섬 생태계는 파괴됐다. 섬을 들락거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외지 식물이 섬을 뒤덮었다. 결국 섬 여우를 비롯해 토종 동식물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 지금은 국립공원인 된 샌미구엘 섬은 20세기 초 미군의 폭격 훈련장이었다.

미국 정부가 채널 아일랜드에 눈을 돌린 건 1930년대 들어서였다. 생태계 보호를 위해 채널 아일랜드와 주변 바다를 ‘국가기념지(National Monument)’로 지정했다. 78년 국제자연보호협회가 샌타크루즈의 75%를 사들였고, 국립공원관리청이 1287만 달러(약 130억원)를 주고 샌타크루즈 동부의 목장지대를 샀다. 80년 채널 아일랜드는 국립공원으로 승격됐다. 국가 기념지는 대통령이 지정하면 되지만, 국립공원은 의회 승인을 얻어야 한다.



이후에도 생태계 복원을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목장을 모두 철거했고, 외지 동식물도 제거했다. 섬은 옛 모습을 되찾아갔다. 100마리 밑으로 줄었던 여우가 2000년대 들어 1500마리까지 늘었고, 오래전 섬을 떠났던 대머리독수리가 섬에 내려와 알을 깠다.

배에서 만난 한 미국인 여성은 “본래 그대로(untouched)”라는 한 단어로 채널 아일랜드의 매력을 설명했다. 때 묻지 않은 자연에 반해 그녀는 수시로 섬에 들어온다고 했다. 하나 섬은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었다. 죽을 뻔했다가 회생한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었다.





벼랑 끄트머리 따라 이색 하이킹

자연해설사와 함께하는 하이킹에 합류했다. 약 4㎞를 걸으며 섬의 생태를 배우는 프로그램이었다. 항구가 있는 스콜피온 지역에 여행자 10명이 모였다. 스콜피온 지역은 유칼립투스·사이프러스·측백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깊고 진한 숲의 향이 폐로 스며들어 온몸으로 퍼졌다. 숲 속에 있는 캠핑장을 지났다. 섬에서 하루 이상 묵을 여행자들이 바쁜 손놀림으로 텐트를 치고 있었다. 난민촌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한국의 캠핑장과 달리 한가로운 풍경이었다.

얕은 오르막길을 걸어 오르니 금세 캐이번 포인트에 닿았다. 깎아지른 벼랑을 따라 트레일이 이어졌고, 며칠간 내린 비로 건조했던 땅에 초록 융단이 깔렸다. 전망대에 서니 해협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다 너머 캘리포니아도 보였다. 자연해설사 데이비드 슈라이너(75·사진)가 바다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빙하기, 그러니까 저 해협이 작은 호수였을 때 여우가 헤엄쳐서 넘어왔다. 지금은 수심이 아주 깊어 고래가 좋아하는 환경이 됐다.” 슈라이너는 채널 아일랜드의 생태적 가치를 쉬지 않고 설명했다. 가까이 날아든 벌새가 지저귀며 슈라이너의 말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벼랑을 오른쪽에 끼고 서쪽으로 계속 걸었다. 그늘 한 점 없는 길에는 키 작은 겨자나무만 무성했다. 봄이 오면 이 길은 노란 겨자꽃으로 뒤덮인단다. 2㎞ 즈음을 걸어 포테이토 하버에 닿았다. 이름 그대로 감자 모양을 닮은 작은 만(灣)이었다. 가파른 벼랑 끝에 서서 넋 놓고 ‘감자만’의 극적인 풍광을 감상했다.

출항 시간이 다가왔다. 다시 항구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다시 캠핑장을 지나는데 그냥 눌러앉고 싶었다. 야영을 준비하지 않은 것을 내내 후회했다. 캠핑장에는 말로만 듣던 여우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고양이처럼 작고 귀여운 모습이 섬 최고의 포식자답지 않았다. 배에 올랐다. 해가 기울면서 바다는 검붉게 녹슬어갔다.

벤투라 도착 10분 전 다시 귀신고래가 나타났다. 아침에 봤던 그 녀석일까? ‘잘 살아줘 고맙다. 계속 잘 살아줘라.’ 스쳐가는 여행자 신세였지만, 안부를 전하고 싶었다. 고래에게, 그리고 여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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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채널 아일랜드 국립공원(nps.gov/chis)은 입장료가 없다. 섬으로 가는 뱃삯만 내면 된다. 아일랜드 패커스(islandpackers.com) 여객선 요금은 벤투라~샌타크루즈 왕복 59달러. 섬에는 숙소·매점 등 편의시설이 없다. 식수는 구할 수 있지만 전기는 들어오지 않는다. 섬에서 하루 이상 머물려면 야영하는 수밖에 없다. 채널 아일랜드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캠핑장을 예약할 수 있다. 1박 15달러. 카약·스노클링 등 해양 스포츠는 샌타바버라 어드벤처(kayaksb.com) 와 같은 업체를 이용하면 된다.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고래 관찰 크루즈가 운항한다. 자세한 정보는 미국관광청(discoveramerica.co.kr), 캘리포니아관광청(visitcalifornia.co.kr) 홈페이지 참조.

채널 아일랜드 가까이에 샌타바버라가 있다. 유나이티드항공(united.com) 인천∼샌프란시스코 직항편을 타고 간 뒤, 샌프란시스코~샌타바버라 국내선을 이용하면 편하다. 유나이티드항공 한국사무소 02-751-0300. 섬에 자동차를 가져갈 수 없어 렌터카를 벤투라 항구 주차장에 세워두고 다녀왔다. 렌터카는 알라모(alamo.co.kr)를 이용했다. 스탠더드 SUV 차량에 보험 등이 포함되고 기름을 가득 채워 빌려 반납시 연료를 채우지 않아도 되는 골드패키지 1일 102달러. 알라모 렌터카 한국사무소 02-739-3110.



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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