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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린데만의 비정상의 눈]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다니엘 린데만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한국의 3월은 3·1절로 시작한다. 조선인들은 나라를 잃은 지 9년 만인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당시 전체 인구의 10%에 가까운 약 200만 명이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3·1운동은 조선인들이 목숨을 걸고 ‘민간 용기(Civil Courage)’를 보여준 역사적인 비폭력 저항운동이다.

 독일 역사에도 민간 용기를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 맞선 ‘백장미(Weiβe Rose) 운동’이다. 뮌헨에 살던 한스 숄과 소피 숄 남매가 중심이 된 5명의 대학생이 목숨을 걸고 벌였던 비폭력 반(反)나치 운동이다.

 숄 남매는 학살 등 나치의 잔혹함을 보고 42년 반대운동을 시작했다. 한스는 낮에는 의대생으로 대학에 다니면서 밤에는 동생인 소피와 다른 학생들과 함께 전단을 만들었다. 이들은 정치적인 힘이 없는 일반 시민들이 나치에 저항하는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여섯 차례에 걸쳐 전단을 만들어 사회 지도층에 보냈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러분의 양심이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 “독일의 명예를 위해 지금이라도 나서야 한다”며 행동을 촉구했다. 42년 8월부터 43년 2월까지 소련에서 벌어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나치 군대가 대패하면서 독일인들은 전쟁의 진상을 알게 됐다. 하지만 나치에 대한 공포를 떨치진 못했다.

 결국 숄 남매는 뮌헨대에서 전단을 뿌리다 게슈타포(나치 비밀경찰)에 체포됐다. 이들은 재판정에서 “누구든 결국 시작해야 할 일이었다. 우리가 말하고 행동한 것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고 싶어한 것을 대신한 것일 뿐이다”고 했다. 이들은 “자유여, 영원하라”고 외치곤 사형을 당했다.

 숄 남매는 독일 사회에서 아직도 많은 존경을 받으며 민간 용기의 상징이 되고 있다. 숄 남매의 이름을 붙인 학교가 전국적으로 설립됐다. 이들을 다룬 영화도 3편이나 제작됐다.(※한국에선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란 책으로 소개됐다.)

 3·1운동도, 숄 남매의 저항운동도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두려움이 없어 용감한 것이 아니라 아무리 무서워도 공포를 극복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는 사실이다. 역사를 살펴보며 더욱 나은 미래를 위해 자신을 바친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은 젊은 세대의 의무다. 그래야 우리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용기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해마다 봄이 3·1절로 시작하듯 독일에선 꽃피는 철이 돌아오면 백장미를 떠올린다.

다니엘 린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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