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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30년 후 세상

이정재
논설위원
3년 전 나는 30년 후 세상, 그러니까 2042년을 이렇게 그렸었다.



 “…나는 20년 전 지어진 친환경 아파트에 산다. 옥상과 벽면 곳곳엔 태양광 패널, 지하 6층 깊이엔 지열 발전소가 냉난방과 전기를 책임진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0이다. (중략) 노인 헬스센터의 모든 시설은 물론 식사까지 공짜다. 이제는 모두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노후에 익숙해 있다. 나라가 곧 망할 것이란 얘기가 나온 지 수십 년이지만 복지는 해가 갈수록 늘어 간다. 여전히 정치권은 복지를 더 늘리자며 재원 마련 공방에 여념이 없다. 몇 십 년 전 망해 없어진 그리스의 얘기는 잊은 지 오래다….”



 4주짜리 미래학 속성 과정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첫 강의 때 미래학의 태두로 불리는 짐 데이터 교수는 각자가 생각하는 ‘30년 후 세상’을 발표하도록 했다. 나를 포함해 8명의 한국 언론인이 예상한 ‘30년 후 세상’은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우리는 중국·온난화·저출산·고령화를 주로 얘기했고, 그 모든 것들이 극복 가능할 것으로 봤다. 지구가 사라지거나, 대한민국이 망하는 따위의 미래는 그리지 않았다. 경험칙에 비춰 봐도 그랬다. 인류는 탄생 이래 줄곧 성장 또 성장해 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데이터 교수가 보는 ‘30년 후 세상’은 좀 달랐던 것 같다.



 “한국 언론인들은 한국의 미래를 밝게 보고 있군요.” 그가 그때 툭 던지듯 이렇게 말했을 땐 몰랐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 그의 표정은 약간의 의외·부정 같은 걸 담고 있었던 듯하다. 데이터가 보는 30년 후의 세상, 특히 한국의 미래는 우리의 시선 저 너머에 있었다. 그는 고령화·저출산을 재앙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대신 ‘성장 없는 번영’을 얘기했다. 그가 더 집중한 것은 좀 더 크고 넓은 것이었다.



 데이터 교수는 저출산보다 인구 재앙을 더 걱정했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인구를 그는 10억~30억 명으로 봤다. 그런데 현재 인구는 70억 명, 해마다 8000만 명씩 늘고 있다. 해마다 4개의 베이징이 새로 생겨나는 꼴이다. 2100년이면 101억 명이 된다. 지구가 감당할 수 없는 숫자다. 물·공기·식량·에너지가 바닥난 세상, 성장의 성공 방정식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다. 데이터는 ‘성장 없는 번영’만이 인류의 생존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봤다.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그런 선택지를 더 빨리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나는 그때 반신반의했지만 그 후 고작 6개월 만에 데이터 교수의 선견(先見)에 감탄해야 했다. 그해 치러진 2012년 대선은 모든 것을 아주 빨리 바꿔 놓았다. 복지 논쟁은 과속·과잉으로 치달았다. 한국 사회 특유의 쏠림현상이 이번엔 ‘무상 시리즈’에 꽂혔다. 대한민국호가 온통 ‘무상’으로 기울면서 ‘어떻게’는 실종됐다. 표가 당장 급하니 골치 아픈 건 슬쩍 얼버무리고 넘어가자. 그런다고 나라가 당장 침몰이야 하겠나. 달콤함과 안일의 미봉책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탄생한 ‘증세 없는 복지’는 애초 시한폭탄이었던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2년 만에 증세·복지 논쟁이 다시 뜨겁다. 대선 때와 판박이다. 2년이란 시간, 우리는 도대체 뭘 했나.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빚은 늘고 경제는 쪼그라들고, 자신감마저 잃었다. 그러는 사이 증세와 복지는 어느새 진영 논리로 중무장까지 마쳤다. 진영으로 갈린 정쟁(政爭)이 계속되면 우리는 결국 아무것도 바꾸거나 합의하지 못할 것이다.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30년 후의 세상’을 그려보면 어떨까. 나는 3년 전의 희망과 낙관을 차마 말하지 못할 것이다.



 “노인 양극화는 도를 넘었다. 노인 빈곤율은 80%가 됐다. 30년 전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였지만 이젠 압도적 1위다. 1%의 노인만 부자다. 나랏빚이 국내총생산(GDP)의 네 배가 넘어선 게 5년 전이다. 한국의 신용은 OECD 최저로 떨어졌다. 수출도 내수도 멈췄다. 세대 갈등도 극심하다. 청년 한 명이 노인 열 명을 책임져야 한다. 싸구려 일자리는 남아돌지만 아무도 일하지 않는다. 30년 전 세상을 달궜던 복지·증세 논쟁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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