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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박근혜 대통령 러시아에 가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
한국 정부가 조만간 내려야 할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일 행사에 참석할지의 여부일 것이다. 이 결정에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에 이에 반대 의사를 밝힌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 김정은의 참석 가능성이 알려지면서 남북 정상의 만남과 대화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국익과 원칙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고려해 볼 때 결론적으로 대통령은 러시아에 가야 한다. 이는 미국이 우리에게 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으로서 대화를 통해 우리의 입장을 납득시킬 수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로 향하는 이행의 도정에 있다. 그러나 푸틴은 크림반도를 합병,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정적을 탄압하는 등 문명사회와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무시하고 있다. 이러한 권위주의 정권은 자신의 호불호에 따라 다른 국가에 자의적인 영향을 행사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다른 나라에 공급되는 가스관을 잠그기도 하고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경제성장률이 올라가기도 한다. 유가 하락 때문에 전문가들은 2014년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을 최대 0%로 예상했지만 최근 발표된 러시아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경제는 0.6% 성장했다. 지난해 12월 운송장비 산업의 성장률이 40%로 발표되는 등의 기이한 현상 때문이다. 이 숫자 뒤에는 “우리는 서방의 경제제재에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국민 80% 이상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푸틴의 그림자가 비쳐진다.

 러시아 경제는 유가 하락과 서방의 제재 때문에 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그에 따라 국제적 영향력이 감소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 경제의 위기 대응력은 금융위기를 겪었던 1998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기 때문에 다시 디폴트를 경험할 가능성은 낮다. 러시아는 36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과 함께 1500억 달러에 달하는 국부펀드를 갖고 있다. 더욱이 루블화 절하를 막기 위해 국영 수출기업에 달러 매각을 ‘명령’할 수 있을 정도로 정부 대응력이 막강하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러시아에 가야 하는 이유는 북한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구상하는 대북정책의 핵심인 유라시아 철도, 두만강 개발 사업 등은 러시아의 참여 없이는 진행될 수 없다. 만약 대통령이 러시아에 가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일본에 이어 러시아와도 대화하지 않는 불통정부가 될지 모른다. 김정은의 참석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가지 않으면 북한은 우리 대북정책의 진정성을 더욱 의심할 것이고 이는 남은 임기 동안 남북 관계가 한 발짝도 진전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김정은이 러시아의 전승기념일에 참석한다면 경제 문제가 큰 이유일 것이다. 원유 도입을 중국에만 의존하는 위험을 줄이거나 러시아 파견 북한 근로자 쿼터를 확대하려는 것이 주요 목적이 될 수 있다. 현재 러시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중국의 두 배 이상으로 연해주에 파견된 북한 근로자는 중국에 있는 북한 근로자보다 몇 배를 더 벌 수 있기 때문에 이로부터 북한 정권에 전달되는 충성자금도 적지 않다.

 대통령이 러시아에 가서 행사의 참관자를 넘어서 더 중요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우리 정부는 고민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대통령은 분단의 비극을 치유하는 것이 얼마나 절박한지 보임으로써 국제사회의 여론이 통일을 지지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이 행사에 쏠린 세계 언론의 관심을 이용해 가장 평화가 필요하고 통일이 절실한 곳이 한반도임을 전 세계 시민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어찌 보면 이처럼 홍보 효과가 높은 이벤트를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박 대통령은 무엇보다 평화의 메신저가 돼야 한다. 피식민지 경험을 가진 국가이자 2차 대전 결과 분단된 국가의 정상이 던지는 평화의 메시지는 남다를 것이다. 러시아 국민에게도 대국의 꿈보다는 평화의 가치,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보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함을 역설해야 한다. 그리고 김정은의 눈을 바로 쳐다보면서 대립을 불식하고 평화의 장을 열자고 제안해야 한다. 이 평화의 가치에 대한 우리의 원칙을 설파하기 위해 러시아에 가는 것이라고 미국도 설득해야 한다. 또한 대통령 자신이 평화를 몸소 실천해야 이 정부의 핵심 사업인 비무장지대(DMZ) 평화공원도 추동력이 생길 수 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다시 총을 잡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총을 잡을 필요가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그래서 평화를 도모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기면 대통령은 어디라도 가야 한다. 통일마저도 평화 없이는 가치가 없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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