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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 30대 엄마의 선택, 그 후 20년

워킹맘 vs 전업맘



엄마는 죄인입니다. 일터에 있는 ‘워킹맘’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데 대해 늘 미안합니다. 집에서 아이만 돌보는 ‘전업맘’ 역시 아이의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책할 때가 많습니다. 30대는 청춘의 열매를 맺을 시기입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 30대 엄마들은 워킹맘과 전업맘이란 선택지 앞에서 고민하다 시들어버리곤 합니다. 청춘리포트팀의 워킹맘 기자가 ‘선배’ 엄마들을 만났습니다. 각각 워킹맘과 전업맘으로 살면서 아이를 대학까지 보낸 엄마들입니다. 워킹맘 기자는 두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됐을까요. 30대 워킹맘 기자의 인생극장,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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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환경 잘 맞는 행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워킹맘 택한 53세 임주빈씨 (KBS 라디오 PD)




꼭 30년 동안 한 직장에 다녔다. 그동안 두 딸 모두 대학을 졸업했다. 일을 그만둘 고비는 여러 번 왔다. 아이들은 거듭 말했다. “엄마 회사 안 가면 안 돼?” “학교 다녀왔을 때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어.” “학생회장 출마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시간 없을 것 같아서 포기했어.” “배가 아픈데 또 혼자 병원에 가야겠지?” 그때마다 다독여 가며 이를 악물고 직장으로 나왔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도움을 돌아가며 받았다. 밤에 하는 방송을 끝내고 집에 가면 새벽 1시였다. 아이들은 집 근처의 시댁에서 자고 있었다. 아침에 얼굴을 잠깐 보고 나왔다. 아이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은 하루에 고작 1시간 남짓이었다.



 진짜 큰 고비는 가족의 도움을 받지 못할 때였다. 사정상 2년 동안 시댁과 멀리 떨어져 살았다. 내 출근 시간이 유치원 등원 시간보다 일렀다. 유치원 앞에 내려주고 출근하면 아이들은 유치원 선생님이 올 때까지 홀로 기다려야 했다. 출근 자체가 고통스러웠던 날들이었다. 나는 다시 시댁 옆으로 이사했다.



 몸 힘든 게 끝나면 마음이 힘든 시기가 왔다. 공부는 어떻게 시키고 학원은 어디가 좋은지 따져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어릴 때는 할머니·할아버지에게 맡겼지만 취학 후엔 엄마를 대신할 사람이 없었다. 처음엔 대책 없이 학교만 믿었다. 하지만 첫째 딸의 중학교 담임은 나와 이렇게 첫인사를 했다. “맞벌이 부부시죠? 맞벌이 아이들은 공부 잘 못해요.” 실제로 워킹맘인 내가 아이 교육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첫아이 대학 입시 때 인터넷으로 정보를 알아봐 준 정도였다.



 아이들 곁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컸던 지난 30년. 무슨 힘으로 버텨냈을까. 일단 주어진 일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경제적 이유도 있었다. 남편은 광고업계에 있었다. 불경기에 민감했다. 그때마다 내가 일하고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되새겼다. 무엇보다 주변의 기대가 심리적 지지대였다. 직장생활 10년쯤 후부터였을까. 주위 사람들은 내가 일하지 않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 시간에 ‘만약’을 붙여 본다. 만약 아이들이 어릴 때 시아버지가 퇴직하신 상황이 아니었다면? 아이들 중 한 명이라도 내가 일한다는 이유로 비뚤어졌다면? 이런 가정 중 하나라도 실제였다면 일을 그만뒀을 것이다. 그러니 행운이었다. 수많은 정교한 퍼즐 조각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워킹맘으로 30년을 버티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 교육 전문가 꿈꿨는데 과한 간섭이었을까



전업맘 택한 51세 강영선씨 (전업주부·전직 치과의사)




일을 그만둔 건 둘째를 위해서였다. 둘째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지기 위해서다.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 6년을 공부했다. 그리고 개업을 위해 1년 동안 선배 병원에서 일했다. 서울 쌍문동에 내 병원을 열고 5년을 운영했다. 공부한 기간만큼만 일하고 나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둘째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째 딸이 여섯 살이 됐을 때 나는 여러 번 유산했다. 일이 벅찼다. 병원에 환자가 끊이지 않아 점심을 수시로 거를 정도였다. 육체노동에 가까운 치과 치료도 버거웠다. 일을 그만두고 4년 후에 둘째 딸을 낳았다.



 사실은 아이들을 5년 정도만 키우고 다시 일하려 했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일단은 급한 불을 끄느라 바빴다. 공부하고 일만 했던 나에게 집안일은 어려웠다. 집안일은 퇴근도 없이 바쁘기만 했다.



 아이들을 따라 인간관계가 만들어졌다. 엄마들끼리 그림책 읽기 모임, 영어공부 클럽까지 만들게 됐다. ‘내가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인데’라든지 ‘지금 안 돌아가면 나는 불행하다’는 식의 불만이 들었다면 못 버텼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게 좋았다.



 아이들 교육? 일을 그만두면서는 교육 전문가를 꿈꿨다. 일을 그만둔 뒤 아이가 유치원에서 친구의 크레파스를 슬쩍 가지고 집에 온 적이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교사에게 상담했더니 “뭐 그만한 일로요”라는 대꾸가 돌아왔다. 일만 했던 나는 아이 교육의 실체를 몰랐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간 뒤엔 내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이 시기엔 많은 전업맘들이 아이에게 지나친 간섭을 한다. 내 결론은 아이들에게 신경을 조금 덜 쓰는 편이 낫다는 거다. 첫 아이는 지금 대학 졸업반인데, 다시 보니 운동과 노래에 소질이 많다. 내가 교육·입시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대학에서 우리 학과엔 여학생이 60여 명이었다. 총인원은 150명이라 약 40%였다. 대단한 여풍으로 관심을 모았던 학번이다. 그런데 지금 대략 잡아 보면 여자 동기 중 80% 정도가 일을 계속하고 있다. 졸업 30주년을 앞두고 만난 친구들은 서로 다른 처지를 부러워한다. 그래서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못 가본 길을 흠모하게 된다고. 무엇을 선택하든 당신의 가장 큰 에너지는 ‘후회하지 않는 것’에 쏟아야 한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김호정 기자



※위 기사는 두 ‘선배’ 엄마들의 실제 인터뷰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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