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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지을 뿐 대답하지 않는다’ JP 정치 결산하는 상징 어휘

청구동(신당동)은 김종필(JP)의 정치 공간이었다. 지금도 1층 거실은 그가 하루를 여는 곳이다. JP는 TV를 켠다. 그 위에 편액(사진·130X50㎝)이 걸려 있다. ‘笑而不答’(소이부답)-. JP는 그 글씨가 걸린 유래를 들려준다.



왜 소이부답(笑而不答)인가

 “1960년대 중반쯤인 6대 국회 시절 박현숙(朴賢淑·1896~1980년) 의원께서 내게 가져다 주셨어. 내가 어머니처럼 따랐는데 남편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분이야.” JP의 기억은 명료하다.



 “그분이 저 글씨를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 ‘내가 가보(家寶)처럼 갖고 있는 글씨인데 이제 여기에 가져다 걸어야 할 것 같아’라고 하셨어.” 그 무렵 JP는 권력 무상을 겪었다. 정치 풍파도 거칠었다.



 “미소만 지을 뿐 대답하지 않는다.”- 정치판은 혼탁하다. 정치는 살아 숨쉬는 생물이다. 그런 속에서 정치인의 지혜는 무엇인가. 직설보다 함축, 진격보다 우회, 단정보다 은유를 주문한 듯하다. 말의 운치는 깊다. 절제의 여운은 길다.



 하지만 소이부답은 거사(擧事)의 언어가 아니다. 5·16의 풍운과는 거리가 멀다. JP 측근들은 그 글씨를 추사(秋史)의 작품으로 믿고 있다. ‘笑而不答’ 왼편에 호와 낙관이 있다. ‘石邨樵老’(석촌초로·석촌에 사는 나무하는 노인)-. 최준호 옥과미술관장은 “낙관과 호로 미뤄 윤용구(尹用求)가 쓴 글씨로 추정된다”고 했다. 석촌 윤용구는 조선 말 문신이며 서화가다. 추사 전문가인 최 관장은 “추사 이래 추사의 서체에 영향을 받지 않은 문필가가 없다”고 했다.



 ‘소이부답’은 50년 가까이 JP와 마주하고 있다. 네 글자는 JP 정치를 결산하는 상징 어휘다. JP의 증언은 그 제목 밑에서 은근하면서 강렬하게 펼쳐진다. 정사(正史)가 있고 비록(秘錄)이 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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