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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하늘을 두르는 옷, 땡땡이 무늬 원피스

전수경
화가
그림들이 드나든다. 본격적으로 전시의 계절이 왔다. 그만큼 그림들을 포장해 보내고 그것들을 받아 포장을 푸는 일이 늘어났다. 나는 이들을 싸고 푸는 감촉으로 봄을 맞는다. 에어 캡 완충필름의 알갱이들이 부딪는 소리와 그 표면의 오돌토돌한 돌기들의 패턴이 겨우내 묵은 나의 태만을 깨운다. 점점이 반복되는 돌기들의 일정한 나열을 헤집고 그것들을 몇 알 터뜨려본다.



 대학 4학년 어느 봄날 그러한 반복의 패턴을 입고 나는 데이트에 나갔다. 내가 입은 땡땡이 무늬 원피스는 민소매에 목과 등이 V자로 파였고 허리를 조이는 리본이 달렸다. 밝은 비둘기색 바탕에 희고 작은 점들이 촘촘한 원피스로 기억한다. 당시 노출에 대한 염려가 사회적 문제가 되었지만 나는 그에 저항하지도 의식하지도 않았다. 더욱이 그날 내가 입은 땡땡이 무늬는 도시를 배경으로 나를 돋보이게 했고 스스로 발랄해지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내 상대가 상기되어 기뻐하는 표정에서 나는 나의 성숙과 여성스러움을 확인했다.



 땡땡이 무늬 원피스의 형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보급된 핀업걸(pin-up girl)의 의상에서 고안되었고 그 무늬는 비키니 수영복에서 유래한다. 핀업걸의 의상이 노출과 착용의 경계를 아찔한 영역에까지 몰고 가 여성의 몸을 성적 징표가 되게 한 것이라면, 비키니는 땡땡이 무늬의 적용으로 그것을 착용한 몸을 별달라 보이게 한다. 그날 내가 입었던 땡땡이 무늬 원피스는 분명 여성성이 드러남과 동시에 통상적이지 않은 외관이었을 것이다. 나를 마주한 그 상대는 나를 통해 핀업걸과 비키니에서 비롯하는 여성성의 문화적 유전을 느꼈을 것이다.



 땡땡이의 패턴을 넘치는 샴페인 잔에서도 본다. 샴페인을 따를 때 잔의 바닥에서 방울방울 올라오는 기포가 1000만 개나 된다고 한다. 깨알 같은 샴페인 잔의 기포들은 반투명한 오렌지색 수면 위로 넘치는 거품으로 솟는다. 코끝에 터지는 샴페인의 물 알갱이들은 나의 일상을 잊게 하고 내가 새로운 장소에 온 것을 환기시킨다. 마치 새 애인을 맞이하는 느낌이다. 반복되는 땡땡이 무늬의 병치(倂置)는 일상에서 볼 수 없는 원근법이다. 그것은 비행기에서 아래로 펼쳐진 제주도의 오름들을 보는 것과 같고 잔디밭에 누워 떨어지는 낙엽들을 볼 때와 흡사하다. 익숙한 일상의 세계에 불쑥 나타나는 땡땡이 무늬는 시각적으로 생소하다. 무당벌레며 표범나비가 땡땡이 무늬 얼룩으로 천적의 시각을 교란시키는 것도 바로 이러한 비일상성(非日常性)을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고구려 무용총(5세기)의 벽화에 땡땡이 무늬 옷을 입은 무희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분명 핀업걸과 비키니와 같은 현대의 문화적 전통과 상관없다. 오히려 그 점무늬는 고구려 고분의 천장에 그려진 별자리 그림에서 비롯한다. 1만원권 지폐 뒷면에 인쇄된 조선 태조 4년(1395년)의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가 고구려의 비석에 새겨졌던 평양의 밤하늘을 모델로 했단다. 이미 고구려는 천문에 대한 해박한 정보를 확보했고 또한 하늘의 후손으로서 하늘의 뜻을 정확히 헤아리려 했던 게 분명하다. 고구려인들은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평면으로 시각화하기 위해 그 하늘의 정세를 땡땡이 무늬들의 패턴으로 옮겼다. 그 결과 무덤에 별자리를 남겼고 심지어 그 패턴을 옷의 무늬로 채택했다.



 우주를 일상에 끌어들여 가까이 두려 한 고구려인의 마음을 무용총의 무희들이 입은 땡땡이 무늬 옷에서 읽을 수 있다. 그 무희들은 하늘을 두른 채 춤을 추는 셈이다. 그날 데이트에 나갈 때 사회적 염려에 아랑곳 않고 내가 땡땡이 무늬 원피스에 당당했던 것은 아마 1500여 년 전 그 무늬를 통해 천신의 후손임을 확신했던 고구려인의 자부심이 내 핏속에 흘렀기 때문은 아닐까? 금년 봄에 데이트를 한다면 다시 땡땡이 무늬 원피스를 시도하고 싶다. 세월이 갔고 나도 달라졌다. 하지만 땡땡이 무늬 원피스의 별달라 보이게 하는 마력은 내게 여전하다. 나는 이번 외출에 오렌지색 우산을 들고 나갈 것이다. 그때 거리의 흙먼지에서 부딪는 빗방울들이 터지면서 뿜어 낼 샴페인 냄새를 맡고 싶다.



전수경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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