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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청와대는 충성심보다 능력이 문제"

이철호
논설실장
청와대 비서실장 인선 과정은 수수께끼와 미스터리로 뒤범벅돼 있다. 한국 언론에는 대형 참사이자 아수라장이었다. 현명관 내정 보도가 2~3시간 만에 이병기 확정으로 바뀌고, 한 석간신문은 1면 톱기사로 ‘현명관 내정’을 내보냈다가 곧바로 총기 난사 사고로 대체했다. 일부 인터넷 언론은 ‘현명관 내정 보도는 사실과 달라 바로잡는다’는 정정문을 실었다.



 그러나 비서실장 난산을 지켜보는 여권은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돌린다. 박근혜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이 조금씩 바뀌는 분위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에 취재한 친박 핵심 의원의 말이다. “벌써 40일 넘게 끌어 ‘불어터진 인사’가 됐다. 더 큰 걱정은 대통령이 자꾸 ‘역사성’을 따지는 것이다. 오랜 인연으로 눈빛만 봐도 교감할 수 있는 인물로 굳어지는 것 같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나마 대통령이 시간을 끌며 고민하는 것 자체가 긍정적 신호다.” 수첩에 기대는 ‘나 홀로 인사’에 변화가 생겼다는 의미다.



 지난달 26일 저녁 미묘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한·일 관계 포럼의 좌장인 현명관이 평소답지 않게 급한 전화를 받기 위해 자주 자리에서 벗어나는 광경이 목격된 것이다(그는 젊은 시절 일본 게이오대에서 석사과정을 밟았고, 일본어가 유창하다). 눈치 빠른 참석자들이 “비서실장 물망에 오르더니 낙점받은 게 아닌가”라고 짐작했을 정도다. 나중에 그는 “100% 통보받은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27일 점심 무렵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는 뿔이 나 있었다. “현명관이 유력하다는 소식에 오전 내내 당사에서 난리가 났다. 새누리당 수뇌부가 대통령을 제외한 청와대의 모든 채널을 통해 불만을 전달했다. 일부는 현씨의 개인적 흠결을 입에 올렸고, 일부는 ‘내년 총선을 어떻게 치르라는 말이냐’고까지 항의한 것으로 안다.” 꿈쩍도 않던 청와대는 발표 1시간 전에야 새누리당에 ‘비서실장 이병기, 국정원장 이병호’의 최종 인사안을 통보했다.



 박 대통령은 선거에는 동물적 감각이 있다. 2007년 이명박과 대선후보 경선을 빼면 수많은 큰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것도 불리한 여건에서 뒤집기였다. 작은 선거에도 집요하게 신경을 곤두세운다. 2006년 전당대회에는 빨간 옷을 입고 일반 청중석에 앉아 있다가 이재오의 정견 발표 도중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당원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이재오가 패하고 강재섭이 당대표가 됐다. 지난달 2일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 때도 국무회의를 연기하고 의원 겸직 국무위원들을 투표장에 내보냈다.



 박 대통령의 인사원칙도 마찬가지다. 윤창중·윤진숙 카드의 후폭풍에도 요지부동이었다. 비난이 쏟아진 부속실 3인방도 자리를 옮기는 선에서 지켜냈다. 새누리당조차 “웬만해선 막을 수 없다”며 “그나마 비서실장 인선에서 변화의 기미를 보인 게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당과 여론의 반발을 의식하는 반가운 징조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다시 리더십을 회복할지는 또 다른 문제다. 어제 중앙일보에 실린 김종필 증언록의 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박정희의 비극은 인사 실패에서 비롯된다. JP는 경호실장 차지철의 교만과 중정부장 김재규의 광기를 증언한다. 비서실장 김계원은 무기력했다. 18년 박정희 시대의 인물은 다양하다. 이들 3인은 지모와 지혜, 역량에서 가장 떨어졌다.” 어디 충성심이라면 차지철을 당할 자 있겠는가. 역사적으로 대통령 측근은 충성심보다 능력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사실 소통도 능력의 한 요소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11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상당한 경험을 축적했다. 눈높이와 입맛도 까다로워졌다. 지난해 말부터 청와대의 문건사태, 내부 폭로, 연말정산 파동 같은 잇따른 자살골로 박 대통령의 30% 콘크리트 지지층에도 균열이 생겼다. 이번에도 우리 사회는 이병기 체제가 역대 최고였던 김정렴 시대를 닮을지, 아니면 또 하나의 인사 실패로 기록될지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원래 짖지 않는 개와 소리 없는 냇물이 더 무서운 법이다. 민심의 사나움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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