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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통금 시대에나 어울리는 간통죄를 …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언제던가, 가슴 뛰는 사랑을 했던 때가. 1974년, 하얀 목련이 교정에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날 그를 처음 만났다.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는 만나서 늦은 밤까지 데이트를 했다. 지금은 그와 결혼해 소 닭 보듯 살고 있지만 그때는 그의 어디가 그리 좋았던지. 기껏 데이트라고 해봐야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영화 보고 버스 타고 집에 데려다주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자정부터 새벽까지는 통행금지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우리 집은 신림동, 그의 집은 돈암동. 버스로 왕복 두 시간 거리인데 나를 집에 바래다주고 그가 돌아가다가 통행금지에 걸린 거다. 파출소에 잡혀갔다가 장발 단속 때문에 바리깡으로 머리까지 밀고 나왔다.



그땐 그랬다. 장발, 미니스커트, 야간통행 등등 금지가 많았다. 크리스마스이브와 섣달그믐날. 일 년에 딱 두 번 광란의 밤이 허락됐었던가. 통행금지. 불편은 했어도 없애긴 다들 불안해했었다. 얼마 후 통금은 없어졌지만 우려했던 대로 밤이 더 문란해지지도 않았고 호황을 누렸던 나이트클럽이 오히려 쇠퇴하기 시작했다. 구태여 꼭 그 밤에 모여 놀 필요가 없어진 게다.



 드디어 여러 차례 진통 끝에 62년 만에 간통죄가 폐지됐다. 폐지된 바로 그날, 피임기구 회사의 주가가 상한선을 쳤단다. 불륜은 등산 가서 많이들 하시는지 등산복과 하산 길에 마시는 막걸리도 덩달아 상한가란다. 완전 코미디다.



 글쎄다. 세상 그 어디에도 우리나라처럼 러브호텔이 많은 나라는 없고 룸살롱 이차 문화가 발달된 나라도 없는데. 손님이 기혼이라면 모조리 간통 현장 아닌가. 간통죄가 있었어도 할 사람들은 다 해왔는데 막상 폐지됐다고 간통이 더 늘어날까. 조만간 민사적 보완책이 마련될 것이고 간통도 더 이상 늘지 않을 거라 믿는다. 간통죄 남은 나라가 이제 이슬람국가를 빼고는 거의 없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사람만이 ‘성적 자기결정권’이 무시당한 채 진부한 그 법의 통제를 받았다는 사실도 참으로 웃기는 일이다.



 요즘은 보기 민망할 만큼 속옷이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든지, 가슴골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입든지 상관없이 입고 다닌다. 머리도 남자가 꽁지머리를 하건 파마를 하건(내 남편도 파마했다) 칠순 된 할머니가 보라색으로 염색을 하건 말리는 이도 없다. 새벽에 나가 족발을 뜯고 와도 통금이 없어 괜찮다. 미니스커트 길이를 자로 재고 남자가 머리 길렀다고 확 밀어버리고 통금도 있던, ‘그땐 그랬지’ 시절에나 간통죄가 어울렸던 게다.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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