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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위대한 나라의 조건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배철현(종교학) 서울대 교수의 인문학 콘서트 강연이 세간의 화제인 모양이다. ‘위대함의 DNA, 묵상(默想)과 컴패션(compassion)’이란 제목으로 지난해 4월 모 그룹 임원들에게 한 강연이 꾸준히 입소문을 타면서 뒤늦게 언론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주말 조선일보 주말판은 1개 면 전부를 헐어 그의 강연을 요약, 소개했다.



 무엇이 위대한 국가와 위대한 기업을 만드는가. 이 화두로 배 교수는 강연을 시작한다. 그가 제시한 첫 번째 키워드는 ‘묵상’이다. 고독한 묵상을 습관화함으로써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리더가 위대한 기업을 만들고, 위대한 나라를 만든다는 것이다. 직접 전화해 물어봤더니 “대한민국이 또 한번 ‘점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리더십의 묵상”이라고 배 교수는 역설했다.



 1965년 작고한 미국의 종교철학자 파울 틸리히는 인간이 혼자 있는 상태를 두 가지로 구분했다. ‘외로움(loneliness)’과 ‘고독(solitude)’이다. 상대방의 부재(不在)를 절감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상태가 외로움이라면 고독은 상대방의 부재를 고통스러워하기보다 혼자만의 자유를 즐기는 상태다. 배 교수는 고독은 내적 탐구와 성장의 필수 조건이라고 말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일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고독하지 않은 사색은 없다. 깨달음은 고독한 사색에서 나온다.



 배 교수가 제시한 위대함의 두 번째 조건은 ‘컴패션’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고통(passion)’을 자신도 ‘함께(com)’ 느껴 그 고통을 덜어주려고 애쓰는 행동이 컴패션이다.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배려하는 마음과 행동도 컴패션이다. 컴패션은 동정(sympathy)이나 연민(pity)과 다르다.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적극적인 개념이다. 불교 식으로 말하면 자비(慈悲)를 베푸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이기적 본능과 이타적 본능이 공존하고 있다. 배 교수는 자기방어와 공격밖에 모르는 파충류 선조로부터 인간이 물려받은 ‘이기적 유전자’는 지위와 명예, 권력과 섹스를 탐하는 이기적 본능의 근원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인간을 포함한 온혈 포유류는 대뇌신피질이라는 제3의 뇌를 발전시켜 왔고, 그 때문에 원초적 격정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인간은 생각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뇌의 크기를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지만 출산 과정에서 산모를 보호하기 위해 태아의 머리가 너무 커지기 전에 출산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결과 인간은 생후 몇 년간 어미의 이타적 돌봄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유일한 포유류가 됐다는 것이다. 그 경험을 통해 아이는 이타적 노력과 헌신이 인간 생존의 기초라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배우게 된다. 요컨대 이기적 본능과 이타적 본능의 갈등을 조절하는 능력이 인간에게는 매우 중요한데, 묵상의 가치는 바로 여기서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묵상은 컴패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것이 배 교수의 주장이다. 묵상과 컴패션은 둘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란 얘기다.



 미국의 19세기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묵상을 하기 위해 매사추세츠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 동안 혼자 살았다. 고독 속에서 그가 남긴 묵상록이 『월든(Walden)』이다. 얽매임 없는 자유, 최소한으로 줄인 소박한 삶,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는 고독한 묵상의 결과였다. 배 교수는 “지금은 소로처럼 살 수도 없고,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된다”며 “묵상은 어디든 현재 있는 곳에서 자기를 제3의 눈으로 바라보는 혼자만의 시간을 5~10분 정도 갖는 습관”이라고 말한다. 묵상을 통해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와 객관적으로, 그리고 남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묵상이 자연스럽게 다양한 무늬의 컴패션으로 연결될 때 남에게 울림을 주는 진정한 리더십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미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가 바로 그런 케이스란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나라의 수준은 선출된 지도층의 수준에 달려 있다. 지도층의 수준을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고, 그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헌신적인 엘리트들이 나라의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다면 그 나라는 위대한 나라다. 지도층의 컴패션이 나라의 수준을 결정한다. 인정과 자비가 없는 리더십에서 위대한 나라는 나올 수 없다. 약자와 소수자를 대하는 리더십의 수준으로 본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위대한 나라인가.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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