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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재계 뒤흔드는 깜짝 인사 - 혁신 앞에 서열은 중요하지 않다

[이코노미스트]상위 임원 32명 제치고 사장 자리에 ... 외식 업계선 또 한 명의 아르바이트 출신 사장 탄생





?올 6월에 취임할 후지쯔의 차기 사장인 다나카 타츠야가 1월 19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1월 20일 도쿄 오테마치의 미쓰이물산 본사에서는 지난해 새로 만든 로고를 배경으로 충격적인 사장 교체 관련 기자회견이 있었다. 임원 서열상 32명을 제친 초고속 승진이다. 대형 종합상사인 미쓰이물산에서 최연소 사장이 탄생한 것이다. 사내의 모든 이를 놀라게 한 인물은 기계·운송 시스템 본부장인 집행임원 야스나가 타츠오(54)다. 사장 하마평은커녕 이사 후보에도 거론된 적 없는 인물이 사장에 기용된 것이다. 야스나가 자신 조차도 깜짝 놀랄 일이었다. “청천벽력과 같았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운명으로 받아들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샐러리맨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쳐도 초고속으로 30명 이상의 임원들을 물리치고 야스나가가 기용된 이유는 무엇일까? 현 사장인 이지마 마사미는 그의 기용 이유에 대해 ‘54세라는 젊음이 승부수’라고 설명했다. 그는 “나도 58세에 취임했지만 6년이 지나니 체력·기력 면에서 힘들다”며 “6년 후에도 체력과 기력을 지금처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뽑고 싶었다”고 말했다. 회사 역사에 유례없는 대 발탁이다. 사내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단숨에 따돌려진 임원과 그들을 지지하는 직원들은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다. 경영을 위한 장애물이 만만치 않다.



야스나가는 다채로운 경력을 가진 사람이다. 32살 때 미쓰이물산 사원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은행에 파견 근무를 나갔다. 본인은 ‘외부에서 미쓰이물산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회상한다. 50세에 경영 핵심인 경영기획부장에 취임했으니 연령으로 봤을 때 특별히 빨리 리더 자리에 오른 것도 아니다. 그 후 기계·운송 시스템 본부장으로 브라질 화물·여객철도사업 투자 안건을 담당하는 등 실적을 쌓았다.



사실 야스나가는 냉철한 글로벌 영업맨이 아니다. 수건과 조선, 귤 재배로 알려진 아이치현의 따뜻한 고장에서 자란 그는 한 마디로 ‘온화한 사람’이다. 상의 하달을 실천하는 인물은 더욱 아니다. 부하에게 엄하게 명령하기보다 ‘듣는 역할’에 충실하다. 이는 거래처 고객에게도 마찬가지로 외부로부터 상당한 신뢰를 얻고 있다.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 인상적인 사람’이란 게 전 부하직원의 평가다.



유례없는 대발탁 인사 줄이어



‘조직의 미쓰비시’와 ‘사람의 미쓰이’. 같은 상사여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다. 미쓰비시상사는 미쓰비시라는 대형 그룹에 속해 있지만 미쓰이물산에는 그와 같은 울타리가 없다. 대신 다채로운 인재와 치밀한 해외 네트워크 구축으로 이를 보충해왔다. 바꿔 말하면 미쓰이물산은 ‘독특한 개성파집단’이다. ‘사내에는 다소 특이한 사람이 눈에 띈다. 이 때문에 인간 관계가 힘든 부분도 있다. 그러나 야스나가는 경영진에서 현장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인맥을 가지고 있어, 어떤 건의도 통하게 만든다’(전 부하직원). ‘상사인 임원에게 물어봐도 그라면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했다’는 이지마의 이야기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온화함’만으로 사장이 될 순 없다. 이면에는 야스나가의 ‘강렬한 리더십’이 있다. 야스나가의 주 무대는 공장 사업이었다. 미쓰이물산이 사운을 건 러시아 사할린의 LNG(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에 그는 휴스턴 지점에 주재하던 초기와 FID(최종투자결정) 시점 등 두 번에 걸쳐 관여했다. 러시아 국영석유회사와의 교섭은 외부와의 접촉이 단절된 상태로 밤새도록 이루어질 만큼 치열했다. 30대의 나이로 책임자로서 교섭에 나선 것이 바로 야스나가였다. 본인도 ‘지옥을 경험했다’고 회상한다. 결국 그는 사업을 따냈다.



지난해 말까지 미쓰이물산 사장 후보로 거론된 사람은 7명이었다. 그러나 이지마가 최종적으로 미쓰이물산의 역사에 남을 젊은 사장을 선택한 것은 시대의 흐름에 반영했을 때 당연한 선택이었다. 고난의 시기를 벗어난 종합상사는 2000년대 이후, 자원 개발에 참여하는 사업 투자 모델로 변하고 있다. 미쓰이물산 역시 자원사업에서 순이익의 약 80%를 벌어들인다. 하지만 원유 가격은 반년 사이 절반 수준까지 폭락했다. 이번 분기에만 석유가스 사업으로 480억엔(약 4400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최연소 사장의 어깨는 이 중압감을 버텨낼 수 있을까?



온화한 성품, 글로벌 감각은 필수



미쓰이물산 사장 교체 기자회견 하루 전인 1월 19일에도 보통때와는 다른 굳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에 임한 인물이 있었다. 후지쯔의 차기 사장(6월 취임 예정)인 상무 다나카 타츠야(58)다. 그는 “성장전략을 더욱 강하게 추진해 갈 것”이라며 “그것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월 19일부로 부사장으로 승격했으나, 사실상 상위 임원 10명을 뛰어넘은 이례적인 인사다. 사내에서는 ‘온화하고 성실한 사람’ ‘허튼 부분이 없고, 올곧음 그 자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대외적인 인지도는 높지 않다. 10명이 넘는 상무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으며, 차기 사장 레이스에서 주류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다나카는 자신의 사장 취임 사실을 싱가포르 출장 중에 알았다고 한다. 본인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예상외의 인선’이라 받아들여지지만 현 사장인 야마모토 마사미는 일찍이 다나카의 자질을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행동력과 글로벌한 사고가 뛰어나다. 사장으로서의 담력도 있다’고 강하게 보증했다.



평범한 풍모와 행동이 사내 평가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는 영업의 달인이다. 법인영업 경험이 길고, 기자회견에서는 ‘자사 컴퓨터를 짊어지고 타사 제품과 맞바꿔왔다’는 무용담을 스스로 밝혔다. 국내 영업을 20여 년 가까이 경험한 후, 2003년부터 중국 시장에 뛰어들었다. 2014년 4월부터는 아시아 지역 책임을 담당해왔다. 다나카 자신도 ‘격동의 시대에 국제 비즈니스 일선에서 일해온 것은 큰 무기’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야마모토는 장래 후지쯔의 모습에 대해 어떤 그림을 그리려 다나카를 기용하기로 한 걸까? 야마모토의 사장 승격이 발표된 것은 5년 전인 2010년 1월이다. 리먼 쇼크로 인한 실적 악화의 생채기가 아직 치유되지 않은 시기였다. 2009년 9월 충격적인 사건이 회사를 덮쳤다. 당시 사장인 노조에 쿠니아키씨가 갑자기 사장직을 사임한 것이다. ‘병요양’이 이유였으나 후에 ‘사장 사임’을 둘러싸고 회사 측과 노조에와 소송까지 벌어졌다. 임시로 회장 겸 사장에 취임한 마즈카 미치요시의 뒤를 이은 것이 바로 야마모토였다. 야마모토 사장이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추진해온 것이 채산사업 정리다. 설비투자 부담이 크고, 업적변동이 심한 반도체사업이 대표적이다. 야마모토는 라이벌인 파나소닉과 시스템 LSI사업을 통합하는 등 과감한 사업개혁을 단행했다.



야마모토 사장은 ‘구조개혁은 아직 중반이지만, 기초작업은 끝났다’고 이야기한다. 후지쯔는 다시금 성장 노선을 정비해야 하는 시기를 맞았으며, 그것을 인솔하는데 적합한 인물이 다나카라는 것이다.



후지쯔의 성장 드라이버는 해외다. 해외 매출 비중은 2013년 약 38%로 일본 IT기업 중에서 이미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아직 해외 수익성이 낮다는 점이다. 라이벌 회사의 한 간부는 경계한다. ‘후지쯔의 재도약 시기가 왔다. 국제 경험이 풍부한 리더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분명하며, 해외에서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물론 다나카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 한때 맹렬한 성장세로 ‘마루노우치의 불야성’이라 불렸던 후지쯔. 다나카 시대에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을 수 있을까?



‘그냥 너답게 하면 된다, 넌 나와는 다르니까’





이자카야 프랜차이즈 기업 와타미 뒤에는 ‘블랙기업’이라는 말이 항상 뒤따랐다. 2008년 종업원의 과로 자살 소동을 계기로 2013년에 유족이 회사와 창업자인 와타나베 미키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 있었다. 이 일로 와타미와 ‘중노동’은 동의어로 취급됐다. 손님의 발길이 와타미에서 멀어진 원인이기도했다. 이미지 쇄신을 위해 조직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 현재로서는 그 스토리가 제법 잘 돌아가는 듯 보인다. 아르바이트생 출신 44세 사장 시미즈 쿠니아키를 발탁한 것이다.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에 아르바이트 출신이라고 하면 지난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요시노야의 아베 슈지가 떠오른다. 그는 42세에 사장에 올라 장기 집권하면서 위기의 회사를 되살린 바 있다. 과연 시미즈에게도 그런 힘이 있을까?



‘사장을 하지 않았다면 연회부장이 되었을 것’이라며 웃는 시미즈 사장은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주변 분위기를 북돋운다. 어딘가 시원시원한 명랑함. 그것이 필시 와타미를 변화시킬 무기라고 경영진은 판단했을 것이다. 와타미의 핵심사업은 이자카야지만 그 속사정은 말이 아니다. 지난해 4월에 고단가 상품을 투입하며 수익 구조 개선을 노렸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주요 고객인 20대 고객으로부터 ‘너무 비싸다’는 불만이 속출했고, 2014년 4~12월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7% 감소했다.



사장직을 맡아야 할지 고민 중이던 시미즈의 등을 떠민 것은 창업자인 와타나베의 말이었다고 한다. ‘그냥 너답게 하면 된다. 넌 나와는 다르니까’. 실제로 시미즈는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현장형 사장이다. 졸업 전 사회 공부나 할 겸 처음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이자카야 ‘쯔보하치’였다. 대학에 가서도 그는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는데 어느 날 와타나베와의 회식자리에서 ‘장래 무엇이 되고 싶으냐?’라는 질문에 ‘불량학교 선생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이 마음에 들어서였을까? 와타나베는 ‘함께 오랫동안 일하자’고 제안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바주카포를 쏘아 올린 듯한 대발탁 인사의 의도는 기존 사풍이나 조직을 대담하게 바꾸고자 하는 데에 있다. 결과는 두고 봐야겠지만 3사의 결단이 성공으로 이어지면 일본 재계에서 이러한 흐름은 더욱 힘을 더해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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