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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한 당신, '담배 낙인'에 산재 안된다?

사진 = 중앙 포토




폐암에 걸린 근로자의 작업장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는데, 그는 흡연 경력이 있다. 이런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일까. 흡연 경력이 있는 근로자의 질병에 대해 사측과 근로자가 산업재해 인정 여부를 놓고 법정 다툼을 벌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제 2의 담배 소송’이다.



7년간 피혁가공업체에서 일해온 김영찬(당시 49세)씨는 지난 2009년 갑자기 가슴 부위에 답답함을 느끼고 병원을 찾았다. 결과는 폐암 1기. 김씨는 3년 만에 세상을 떠났고 유족은 산재 신청을 했다. 김씨가 독한 화햑약품을 다루며 정규근무 외에도 잔업·야간근로·휴일근로를 장시간 한 것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2월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를 인정했다. 작업장 조사 결과, 대표적인 폐암 유발 인자인 ‘6가크롬’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6가크롬은 고용노동부가 명시하고 있는 폐암의 산재 인정 유해물질 중 하나다. 검출량은 기준치보다 적었으나 공단은 환기를 잘 시키지 않는 작업장 환경 등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



그러자 회사는 공단을 대상으로 ‘승인된 산재를 취소하라’는 소송을 냈다. “6가크롬 검출량이 위험기준치의 1.8%로 미미하고, 사망한 김씨가 생전에 20여 년 흡연 경력이 있다”는 것이다. 산재가 취소될 경우 유족들은 지금까지 지급받은 유족급여 4000여만원을 반납해야 한다.



사망한 김씨의 동생 김호찬(52) 씨는 “형은 사망 13년 전 금연해 쭉 피지 않았다”며 흡연과 폐암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형은 한달에 130여만원을 받고 약품 냄새 나는 작업장에서 3~4시간 쪽잠 자며 야근을 했는데 그런 회사에서 산재 인정을 반대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공단과 회사의 소송은 9개월째 진행 중이다. 근로복지공단 법무 관계자는 “회사에서 근로자의 흡연 경력을 문제삼아 산재를 취소하라는 소송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했다.



산재 판정에서 근로자의 흡연이 쟁점이 된 것은 김씨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04년 흡연자인 소방관 김모(당시 46세) 씨가 폐암으로 사망한 뒤, 산재 여부를 놓고 3년간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김씨는 2003년 2월 대구지하철 화재 사건 당시 대구 서부소방서 구조대장이었고, 사건 현장에서 40명을 구조했다. 그는 그해 가을 폐암 판정을 받고 다음해 숨졌다. 유족은 공무원연금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행정소송을 냈다. 2심 재판부는 “구조활동 중 유독가스에 노출된 것이 흡연 못지 않게 폐암 발병과 관계 많았을 것”이라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지만 3심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고인의 20년 흡연 경력이 폐암에 더 직접적인 이유”라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고, 2007년 서울고법은 원고 패소 판정을 내렸다.



같은 회사에 다니다 같은 병에 걸려 같은 법원에 산재 관련 소송을 낸 두 직원이 다른 판정을 받은 사례도 있다. 차이는 담배였다. 현대자동차에서 각각 25년, 23년간 일해오다 뇌경색 진단을 받은 50대 근로자 김모씨와 강모씨가 그랬다. 1985년부터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근무한 강씨는 지난 2011년 쓰러져 뇌경색 판정을 받았다. 강씨는 “연속 92일 근무하는 등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신청을 했다. 1986년부터 2012년까지 현대차 생산직으로 근무한 김씨는 지난 2013년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김씨 역시 “주 60시간 이상의 장시간 근로 때문에 병이 생겼다”며 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공단은 두 번 모두 요양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유도 같았다. 강씨와 김씨 모두 고혈압·과체중·음주·당뇨 등 기존 생활습관과 병력이 문제가 됐다. 두 사람 모두 울산지법에 행정소송을 냈다. 여기까지는 똑같았다.



하지만 법원 판결은 달랐다. 2013년 울산지법은 강씨에 대해서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기존 질환이 자연적 속도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되었다’며 공단이 강씨의 요양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잘못되었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는 강씨가 사건 발병일 1년 전부터 금연을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러나 울산지법은 2014년 김씨에 대한 판결에서는 ‘원고는 하루 한 갑의 흡연이라는 명백한 위험인자에 해당하는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었다’며 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금연과 흡연이 두 사람의 차이였다.



한편 지난해에는 비흡연 근로자가 폐암에 걸리자 일터 내 간접흡연을 산업재해의 근거로 인정한 사례가 나왔다. 고깃집에서 35년간 숯불 관리 등을 해오다 폐암에 걸린 형모(55)씨에 대해 공단이 “환기되지 않는 좁은 실내에서 고기 굽는 연기와 손님의 담배 연기에 장기간 노출된 업무상 재해”라며 요양 급여를 지급했다.



산재보험 가입 확대는 대통령 공약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택배기사·보험설계사·레미콘기사·학습지 교사·골프장 캐디 등 특수고용 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을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현재 관련 법안이 국회 계류 중이다. 이런 가운데 흡연 여부가 산재 적용을 막는 것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민간보험도 흡연 하나로 보험 지급을 거부하지는 않는다”며 “흡연 경력을 들어 혜택을 박탈하는 것은 산재보험의 기능과 본질을 왜곡하는 가혹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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