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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부동 루블화 … 평화의 새벽은 아직 오지 않았다

민스크협정으로 휴전이 결정된 후 중무장한 우크라이나군이 탱크에 국기를 걸고 행진하고 있다. [AP=뉴시스]
우크라이나 사태가 1년을 맞았다. 친서방 측과 친러시아 측의 갈등이 심화하던 중 2014년 2월27일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러시아에 신변보호 요청을 하면서 양측의 충돌이 본격화했다. 러시아 전투기가 뜨고 크림반도에서는 친서방 정부군과 친러시아 반정부군 간의 대립이 첨예화했다. 서방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강화하기도 했다. 천신만고 끝에 지난달 15일 0시를 기해 ‘사격중지’ 명령과 함께 러시아, 독일, 프랑스 및 우크라이나 4개국이 승인한 ‘우크라이나 2차 휴전 협정(민스크 협정)’이 발효됐다. 하지만 아직 평화의 씨앗은 확실하게 뿌려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사태 1년] 외환시장은 알고 있다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는 징후는 외환시장에서 뚜렷하다. 폭락했던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민스크협정으로 안정을 찾아야 하지만 외환 시장에서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17시간 마라톤 협상과 각국 정상의 지친 표정이 미디어를 장식했건만, 보름이 지나도록 루블화는 미 달러화 대비 60~65루블의 박스권에 갇혀 있다. 이번 휴전 협정은 루블에 호재여야 한다. 그럼에도 외환시장은 금번 휴전 협정을 사실상 ‘무시’하다시피 하고 있다. 왜일까.

1938년 뮌헨 협정의 데자뷰
1938년 나치 독일은 오스트리아 복속에 이어 내친 김에 체코 내 350만 명에 달하던 게르만인 밀집거주지인 주데텐 지역(Sudetenland)에 대한 양허를 요구하였다. 당시 독일은 윌슨 미국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의 원칙을 기반으로 무장하였다.

윌슨은 1차 대전 이후 무너진 세계평화의 복원을 위해 14개 항목을 제안하였는데, 그 중 국경선은 제국 간의 정치적 이해가 아닌 해당 민족의 결정에 따라 조정되어야 한다는 민족자결의 원칙이 들어 있었다. 승전국이 창도한 이 논리를 독일은 주데텐 지역에 대한 집요한 할양 요구에 접목시켰고 영국·프랑스·이탈리아는 뮌헨 협정이라는 이름 하에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현 우크라이나 사태를 2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 정세와 대조하면 소름 돋는 유사점이 읽힌다. 러시아를 당시의 독일로, 복속된 크림반도를 오스트리아로, 현재 분쟁지역인 동부 우크라이나를 체코의 주데텐으로 대입하면 살이 떨릴 지경이다. ‘합법적 주민투표(찬성 95%)’를 통한 푸틴의 크림반도 무혈입성이 서방이 반발하기 어려운 21세기 판 민족자결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였다는 점 또한 기묘하다.

외환을 사려면 자국 화폐를 팔아야 한다는 상식이 중요하다. 그러한 지급능력은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는 가스프롬 같은 대기업체가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위기 시엔 국익에 반하는 ‘환투기 세력’의 70% 이상이 합법을 가장한 자국 기업이라는 증언을 되새겨봐야 한다. 선물환 시장에서는특히 그렇다. 꼬리로 몸통을 흔들어야 할 때 유용하다. 시장이 흔들릴 때, 안전자산으로의 탈출(Flight to safety)은 기업들이 앞장선다는 의미이다.

반면에 격변기에 목숨을 담보로 도박에 임하는 제3의 세력도 존재한다. 템플턴 펀드는 최근 미화 70억 달러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채권을 사재기하였다. 시가평가로 보면 절반(한화 3조 8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팔아야 살 수 있는 외환 그리고 도박사들
총으로 하는 전쟁보다 더 큰 성패가 금융전쟁에서 발생하곤 한다. 이번 우크라이나 휴전협정이 와해하면 루블은 재급락할 것이고 경제도 심대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모라토리엄 시나리오도 언제 문을 두드릴지 모른다. 동시에 템플턴 펀드에서는 누군가 피를 흘리며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대박 가능성 또한 상존한다. 이 같은 도박 패를 쥔 자들은 루블화 시장과 관련국 기업동향에 핏발 어린 눈으로 불침번을 선다. 멀리서 들리는 파열음이 총성인지, 평화를 알리는 불꽃놀이인지를 한시라도 빨리 감지하는 게 대박과 쪽박의 운명을 가르기 때문이다.

동토 우크라이나에 봄이 오는가. 예고편은 외환 시장에 있다. 최고급 정보의 집산지이기 때문이다. 휴전이라는 드라마틱한 반전이 평화의 진심을 담았다면 외환도 이에 맞춰 극적이게 움직일 것이다. 2008년 10월, 한-미 통화 스와프가 그랬다. 당시 금융공황의 공포에 떨던 외환시장은 통화 스와프라는 묘수에 환호하며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치를 무려 177원(12.4%)이나 급등시켰다. 국제 공조에 담긴 절박성과 진심을 시장이 읽은 것이었다.

지난해 12월 러시아 당국은 자국의 올리가르히(러시아 재벌)에 보유 달러를 매각하라고 강요하였다. “환전한 루블화로 뭘 하라고요?” 올리가르히의 볼멘소리에, “자사주를 사라”는 푸틴의 답변이 사실인 양 떠돌았다. 올리가르히는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미 달러화 대비 70선이 위협받던 루블이 한때 53까지 평가절상(21%)되며 푸틴이 원했던 연말 거시지표 마사지에 도움을 주었다. 칼의 힘이었다.

2014년 8월 이전 미화 5000억 달러를 쉽게 넘보던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말 전후 6개월 사이에 무려 1000억 달러 가량이 증발되었다. 이 기간 월 100억~350억 달러 규모의 금쪽같은 보유액이 시장개입과 루블화를 떠받치기 위해 소진되었음을 보여준다. 올리가르히가 이를 놓칠 리가 없다.

53선까지 절상됐던 루블은 빠른 속도로 60 고지로 환원되었다. 이렇듯 변동성이 컸던 루블화가 지금 거의 요지부동이다. 휴전했는데, 전선에서 각각 25km씩 비무장지대를 두기로 합의하였는데 외환은 격변의 기미가 없다. 준(準)전시체제에 수출입 물동량의 50%가 유가 급락으로 비틀거리는 국면에서 우크라이나 휴전협정은 최상급 변수다. 최고의 정보 자산이 동원되었을 것이다.

칼날 위를 걷는 환(換)테크에 사활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올리가르히는 움직이지 않았고, 외환시장은 요지부동이다. 그들의 손에 ‘조치 없음(no action)’이라는 정보보고가 송달되었음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거짓 새벽(false dawn)’이라는 붉은색 주석(footnote)과 함께.


김문수 액티스 캐피털 아시아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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