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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인권, 후세인의 이라크 수준만 돼도 진일보

지난해 2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북한의 참담한 인권 상황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은지 1년이 됐다. 당시 COI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하여금 김정은을 포함한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넘길 것을 권고했다. 그 후 많은 움직임들이 있었지만 일각에선 결국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것 아니냐는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한다.

COI 보고서가 국제사회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진 것은 그 동안 뉴스거리가 될 만한 일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느리고 신중한 유엔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기인한다. 유엔 규칙에 따르면 COI 보고서는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채택된 뒤 유엔 총회의 제3위원회와 본회의 의결을 거쳐 안보리에 도달하게 돼 있다. 이렇게 1년 넘게 지나 현재 안보리는 보고서 내용을 검토 중이다. 공식 기한은 없지만 안보리는 마루즈키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좌관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연례 보고서를 발표하는 3월 이전에 모종의 결론을 내리고 싶어할 것이다. 오는 9월 유엔총회가 다시 열리기 전까지 안보리가 아무 결정도 하지 않는다면 굉장히 어색한 상황이 될 것이다.

그럼 어떤 결정이 내려질까. 많은 사람들은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ICC 회부를 막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내가 보기엔, 유엔이 항상 그렇지만, 타협에 의한 모호한 결의가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 COI 보고서도 ICC 대신 유엔 내에 별도의 임시 법정 또는 조사위원회를 만드는 옵션을 열어놨다. 안보리가 이 옵션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의 COI 역할만으로도 많은 것을 성취했다고 생각한다. 첫째, COI는 북한의 인권유린 참상을 처음으로 공식 유엔 문건에 기록했다. 둘째, 북한이 보고서 채택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잠깐이나마 전향적인 조치들을 취하도록 이끌어 냈다. 예를 들어 북한은 놀랍게도 2003년 중단된 북한-유럽 인권 대화를 재개할 의사를 밝혔다. 북한이 그동안 완강히 거부해 왔던 다루스만 특별보좌관을 스스로 초청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셋째, COI의 활동은 북한으로 하여금 지난해 9월 자체 인권보고서를 출간하고 헌법 조항들을 분명히 하도록 유인해 냈다. 물론 북한의 인권보고서는 순전히 북한 당국 입장에서 기술된 것이다. 그래도 이 보고서는 향후 대화 과정에서 북한을 압박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예를 들어 보고서에는 ‘발언과 언론의 자유는 정보를 검색하고, 자유롭게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며, 다른 사람과 의견을 공유하는 것을 포함한다’ ‘북한 주민들은 완벽한 결사와 집회의 자유, 조직결성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다’ 등 놀라운 내용들이 들어 있다. 북한이 앞으로 국제사회와의 대화 과정에서 북한 스스로 작성한 이런 문구들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넷째, COI와 관련된 일련의 절차는 평소에 북한에 관심이 없던 나라들조차 북한 인권 상황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북한에 있어 인권 유린이란 이념적인 것이 아니다. 주민을 극단적인 공포로 몰아넣어 체제를 지키겠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방편이다. 따라서 북한이 COI 보고서의 권고를 다 받아들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체제 유지에 지장이 없으면서도 북한이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악명높은 정치범 수용소를 폐지해도 체제는 유지될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북한이 정치범 수용소의 잔혹한 방식을 버리고 피노체트의 칠레나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정도만 돼도 진일보한 것이다. COI 보고서의 문구를 빌자면 북한은 ‘현대 사회에서 비교 대상을 찾을 수 없는 잔혹한 국가’에서 그저 수많은 인권 유린국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내부에도 이같이 공포정치의 강도를 낮추는 데 동의할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인권 보호가 아니라 자기 방어를 위해서 말이다. 이들은 세계 모든 나라의 집합체인 유엔총회가 자기들의 ‘최고존엄’인 김정은에게 범죄 혐의를 묻는 보고서를 채택했다는 사실이 북한 정정의 불안을 야기할 것을 우려할 것이다. 유엔에서의 절차를 막지 못한 이상 북한은 이제 인권 상황을 어떻게든 개선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북한으로 쏠린 세계의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물론 북한이 인권 개선에 당장 나설 가능성은 희박할 수도 있다. 정치범 수용소에서 모진 고문을 당해 악에 받친 사람들을 풀어주면 그들이 폭동을 일으키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과거 소련과 중국의 수용소들이 악명높을 때도 사람들은 그런 공포정치가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역사를 돌아보면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존 에버라드 전 영국 외교관. 벨라루스ㆍ우루과이 대사 거쳐 2006~2008년 주북한 영국 대사 역임. 전 스탠퍼드대학 쇼렌스타인 아태연구센터 팬택 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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