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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의 시대공감] 한국의 소프트파워 ‘정명훈’

한국의 좋은 이미지를 해외에 알리는 데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축구에 열광하는 유럽에서 차범근이나 박지성은 강한 한국의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이들의 성실함과 투지는 유럽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여전히 칭찬의 대상이다. 돈만 주면 광고할 수 있는 상품과 달리 개인의 노력과 업적은 깊은 여운의 감동을 준다.

영화감독도 문화대국 프랑스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세계에서 영화광이 많기로 유명한 프랑스 사람들은 어색한 발음이지만 김기덕·홍상수·박찬욱·이창동·봉준호 등의 이름을 술술 외어댄다. 인상적인 영화에 대한 개인적 분석도 대단하다. 대학에서 한국 영화에 대한 강의가 개설되면 학생들로 미어터진다.

하지만 예술의 수도 파리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한 사람을 꼽으라면 역시 정명훈이다. 서구 문명에서 클래식 음악은 최고급 예술 장르이기 때문이다. 1989년, 프랑스대혁명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바스티유 오페라의 시대를 연 것이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 정명훈이었다. 1669년 루이14세가 설립한 유구한 전통의 파리 오페라에 한국인 예술 감독이 취임한 것은 그 자체로 경악이었다. 그는 1994년까지 바스티유에서 베를리오즈의 ‘트로이인’과 같은 실험적 공연으로 관객의 폭발적 호응을 이끌었고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크게 높였다고 평가받는다.

르몽드는 2000년 이후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에서의 정명훈의 역할을 ‘근대의 스파르타쿠스’ ‘정신적 지도자’에 비유했다. 개인적 성향이 강한 프랑스 단원들을 이끄는 능력을 인정한 것이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지휘자와 마음이 맞지 않으면 콘서트를 사보타지 할 정도로 텃세가 심하기로 유명하다.

1990년대 세묜 비치코프는 파리 오케스트라에서 단원들이 노골적으로 콘서트를 망치는 비참한 경험을 했다. 정명훈의 리더십이 더욱 빛나는 이유다.

클래식 음악에서 지휘자는 축구의 감독이나 스타 선수의 역할을 능가하는 절대적 총괄자다. 심포니를 담은 음반에는 대개 지휘자의 사진이 실린다. 특히 요즘처럼 창작품보다는 정해진 레퍼토리에서 클래식을 연주하는 상황에서 지휘자는 더욱 중요한 예술가다. 같은 클래식 분야에서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김선욱, 성악가 조수미, 또는 재즈계의 나윤선 등이 솔로이스트로 유럽에 잘 알려졌지만 정명훈을 우선 꼽는 이유다.

2015년 1월에는 파리에 필하모니라는 최첨단 콘서트홀이 문을 열었다. 개관 기념으로 1·2월에 세계적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9개 공연을 계획했다. 베를린필의 래틀 경, 로열 콘세르트헤보의 얀손스,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의 바렌보임 등이 실린 명단에서 라디오프랑스의 정명훈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었다. 그의 이름은 1989년부터 25년 넘게 파리·베를린·빈 등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코리언 마에스트로의 대명사다.

클래식 애호가에게 쇼팽은 폴란드를 대표하고, 스메타나는 체코를 상징하며,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의 존재를 일깨운다. 클래식 공연계에서는 주빈 메타 덕분에 인도가 있고 구스타보 두다멜로 베네수엘라의 음악 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의 성공적 결과를 알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은 엘리트의 예술임에 틀림없지만 대중적 가시성이 무척 높은 분야다. 정명훈은 자신의 능력과 예술과 인간성으로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서 성공하였고 한국은 그 개인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얼마 전부터 서울시향에서 불거져 나오는 잡음이 씁쓸한 이유다. 잘못된 관행이나 행위는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그에게 계산서를 내밀 때는 정확할 필요가 있다. 미시적으로 서울시향과 개인 정명훈의 계약이라는 근시안에서 벗어나 민족의 명성과 이익이라는 차원에서 거시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현대·기아차가 FIFA(국제축구연맹)의 공식 파트너로 매년 지불하는 액수는 1000억 원이 넘는다. 2015년 대한민국의 문화예산은 4조8000억, 서울시의 문화예산은 5000억 원이 넘는다. 정명훈이 살아 숨쉬는 대한민국 소프트파워의 감동적 아이콘으로서 나라의 품격을 높이는 기여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또 국가 공동체의 입장이라면 “피곤하겠지만 서울에 뿌리를 두면서도 해외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해 달라, 그래서 한국인의 실력과 위상을 널리 알려 달라”고 그에게 부탁해야 한다는 말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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