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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명작 속 사회학〈52〉『서유기』-1

[일러스트=홍주연]


새 학년 준비에 설레는 한편, 바뀐 환경에 적응할 걱정도 되는 3월이다. 나 같은 아줌마가 봄마다 걱정하는 것은 겨우내 찐 뱃살이다. 두꺼운 겉옷을 벗고 전신 거울을 보면 내가 아닌 저팔계가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저팔계(猪八戒)의 저는 ‘돼지 저(猪)’자다. 이름뿐만 아니라 돼지 얼굴도 하고 있다. 그런데 저팔계는 왜 사람처럼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일까?

저팔계는 왜 돼지 얼굴에 사람 몸일까



어릴 적 보았던 『서유기』는 돌에서 태어난 원숭이 손오공이 저팔계·사오정·용마와 함께 천축국에 가는 삼장법사를 도와 요괴들을 물리치고 불경을 구해오는 모험담이다. 보통 동화나 만화로 접하는 『서유기』는 중국 명나라 때인 1592년, 난징에 있던 서점 세덕당에서 간행한 『신각출상관판대자서유기』를 축약한 내용이다. 원래는 총 100회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대하소설로, 자신의 마음과 싸워 도를 구하는 구법 여행의 성격이 강했다. 오승은이 지었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사실상 어느 한 작가가 혼자 지어낸 소설이라고 하긴 어렵다. 7세기 중국 당나라의 현장 스님이 인도에 가서 불경을 가져온 사실을 기록한 『대당서역기』에 현장의 전기문 내용이 더해지고 불교 우화와 도교 전설, 민간에 전해지던 이야기들까지 합쳐져 큰 얼개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세상에 떠돌던 서유기 이야기는 11세기 송나라 때부터 정리되는데, 그 과정에서 중국의 도시와 서민문화 발달사를 볼 수 있다.



송나라 때는 상업이 발달했다. 물품을 사고 팔기 위해 도시에 돈과 사람이 모이자 그들의 다양한 욕구를 채워줄 오락 산업도 번창했다. 연극·만담·무용·곡예·인형극 등의 전문 공연장도 생겼고, 자연스레 공연 대본·희곡도 발달했다. 공연 레퍼토리들은 12~13세기 원나라 때 원곡(元曲)이라는 서민 문학의 한 형태로 자리잡는다. 원래 노래하고 낭송하기 좋은 운문 형태였지만 점차 산문 형태로 변해가다가 16세기 명나라 때에 이르러 소설로 정착한다. 기존의 희곡에다 떠도는 이야기를 엮어 장편 소설로 기록하게 된 것이다. 『서유기』도 마찬가지다.



저팔계 이야기로 돌아가자. 저팔계는 원래 천계의 신으로 천봉원수라 불렸지만 죄를 지어 속계로 떨어지는 벌을 받았다. 이때 그의 영혼이 돼지의 태에 들어가 돼지의 외모를 갖고 환생한다. 그러나 돼지인데도 쇠갈퀴를 들고 두 발로 걷는다. 저팔계뿐 아니라 『서유기』에 등장하는 온갖 요괴들은 다 얼굴은 동물인데 몸은 인간이다. 왜 그럴까?



답은 희곡에서 소설로 변하는 과정에 있다. 사람인 배우가 동물이나 요괴 역을 맡으면 그 모습을 가면으로 만들어 쓰고 서서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즉, 무대 위에서 요괴는 인간의 몸에 동물의 얼굴을 한 형태로 표현된 것이 소설에 그대로 기록됐기 때문에 저팔계나 요괴들은 인간처럼 두 발로 걸으며 무기를 앞 발에 들고 싸우게 된 것이다.



배경이 되는 송·원 시기 발달한 상업 도시와 서민 문화의 영향은 『서유기』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소설에서 삼장법사 일행은 많은 도시국가를 지나간다. 그 번성한 모습은 실제 도시를 반영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속담·유머 등을 구어체로 표현해 당시 서민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준다. 그러고 보니 추한 외모를 지적당한 팔계가 “굵은 버들로는 키를 엮고 가는 버들로는 말(斗)을 엮는다”고 속담을 사용해 당당하게 받아 치는 장면도 있다. 이 속담을 외워두고 뱃살은 좀 천천히 빼 볼까나.



『백마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저자, 역사에세이 작가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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