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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천막당사 아이디어 … "국민과의 소통 가교 되겠다"

노태우 대통령 취임 초기인 1988년 어느 날. 전직 대통령(박정희)의 딸이 청와대에 들어섰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청와대를 떠난 지 8년여 만이었다. 87년 말 대선에서 당선된 노 대통령이 초청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달리 노 대통령은 야인으로 지내던 딸에게 손을 내밀었다. 청와대에 도착한 전직 대통령의 딸에게 양복 차림의 남자가 깍듯이 인사를 했다. 의전비서관인 그의 안내를 따라 노 대통령을 만났다. 이후로 명절 때면 그가 노 대통령 대신 인사를 전하곤 했다. 딸의 눈에 의전비서관은 반듯한 사람으로 각인됐다. 27년이 지난 2015년 2월 27일. 대통령이 된 딸은 자신을 안내했던 의전비서관을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집권 3년차 비서실장 이병기
1988년 박근혜·노태우 만날 때
의전비서관으로 안내한 인연
2년새 주일대사 등 요직 3번

 박근혜 대통령과 이병기 비서실장은 청와대에서의 첫 만남 이후 27년이란 세월을 건너뛰어 청와대라는 한 울타리에서 대통령과 비서실장의 관계로 함께 일하게 됐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74년 외무고시 8회에 합격한 이 실장의 외교관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81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정무2장관이던 시절 비서관으로 파견된 이후 계속 그를 보좌했다. 노 전 대통령이 체육부·내무부 장관에 이어 85년 민정당 총재가 되자 총재보좌역으로 정치권에 첫발을 들였다.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청와대 의전비서관-의전수석으로 일했다. 이 실장을 지금도 ‘노태우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건 그 때문이다.



 이후 김영삼(YS) 전 대통령 때 안기부 2차장을 지냈고 이회창 전 총재의 특보를 맡아 2002년 대선에선 책사 역할을 했다. 그러다 2005년 박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여의도연구소 고문을 맡아 ‘원조 친박’이 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부터 이 실장을 눈여겨본 박 대표, 당시 사무총장인 김무성(현 새누리당 대표), 대표비서실장인 유승민(현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의 추천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박 대통령은 이 실장이 87년 6·29 선언에 간여하고 이후 YS, 이회창 전 총재의 책사로 드러나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 점, 2004년 당시 한나라당이 차떼기 정당으로 여론의 비판을 살 때 ‘천막 당사’ 아이디어를 낸 것 등을 높이 샀다. 이 실장은 2007년과 2012년 대선 때도 박 대통령을 묵묵히 도왔다.



 이 실장을 아는 사람들은 “신중하고 합리적이면서도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여권에선 소통에 대한 기대가 높다. 다만 현직 국정원장이 임명 7개월 만에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간 데 대한 야당과 여당 일각의 거부감을 극복하는 게 과제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어려운 상황에서 실장직을 맡게 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2년간 자리를 세 번(주일대사, 국정원장, 비서실장) 옮기게 돼 한때 고사하기도 했지만 대통령을 잘 도와 성공하는 정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를 향한 ‘불통’ 논란을 의식한 듯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밝힌 소감에선 “대통령과 국민께서 지금 제게 기대하시는 주요 덕목이 소통이라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며 “더욱 낮은 자세로 대통령과 국민 간 소통의 가교가 되고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과 정부와도 더욱 활발하고 적극 소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어린 시절 이름이 혁주(革疇)였으나 돌림자를 쓰기 위해 대학에 입학하며 개명했다. 구자원 LIG그룹 회장의 조카인 구본욱 LIG손해보험 상무가 사위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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