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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감정노동자 …‘세금 먹는 하마’로만 몰지 마세요

[일러스트 배민호 서경대 교수]


107만 명.

[사람 속으로] 2015 대한민국 공직자가 사는 법



 ‘대한민국 공무원’ 수다. 헌법 7조는 이렇게 적고 있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



 요즘 이들이 심상찮다. 세월호 참사 이후 부패하고 무능한 집단이라는 낙인에, 세종시 이전 등으로 피로가 누적된 데다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로 국민 시선이 따가워지면서 속이 끓는다는 이가 적잖다. 한국행정연구원 조사(2014년 10월 2020명 대상)에 따르면 ‘공무원 신분에 대한 만족도’가 2013년(2013명 조사)에 비해 15.8%포인트(57.1%→41.3%) 낮아졌다. ‘공직 장래성에 대한 만족도’는 20.4%포인트(39.0%→18.6%), ‘공직 안정성에 대한 만족도’는 21.1%포인트(60.8%→39.7%) 하락했다. 한 7급 공무원은 “폭발 직전”이라고 했다.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다양한 세대(20~50대), 직급(9급~고위 공무원단), 근무지(서울, 경기도, 세종)에 있는 이들 5명을 화자로 글을 구성했다. 기탄없는 속내를 듣기 위해 다수를 익명으로 처리했다.



 



 ◆김모(41·경기도·7급)씨, 이민을 알아보다=8년 전 60대 1의 경쟁을 뚫고 9급 공무원이 됐을 때 내 가슴은 뛰었다. 사기업에 다닐 때보다 연봉이 3분의 1이나 깎여도 좋았다. 돈보다 가족과의 시간이 중요했다. 아버지·아내에 이어 공무원 가족이 된 것도 뿌듯했다.



 하지만 난 얼마 전 캐나다 이민을 알아봤다. 공무원 일에 회의가 들던 차에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연금 개혁까지 나오니 결심을 굳혔다.



 왜 그러느냐고? 철밥통을 왜 걷어차려 하느냐고? 사람들은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공무원이 왜 살기 힘든지.



 박봉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급여를 받을 때마다 비참하긴 하다. 지난해 3890만원(세전)을 받았다. 평가에서 S를 받아 성과급 250만원이 포함된 게 이 정도다. 대기업에 다니는 대학 동창은 8000만원, 중소기업에 다니는 동창도 5000만원은 받는데 창피해서 말을 못한다.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힘들다. 우리도 감정노동자다. 단속업무 하면서 모욕당할 때가 많다. 협박도 받는다. 사람들은 백화점 아르바이트가 쌍욕 듣는 건 안타까워해도 공무원이 듣는 건 신경 안 쓴다.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다. 아내가 안산체육관에 내려갔는데 같이 간 공무원이 유족들에게 쌍욕을 들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한다. 공무원이 도매금으로 욕을 먹는데 헛웃음이 났다. 우리 같은 지방직은 퇴직하면 아파트 관리원을 한다. 무슨 산하기관의 ‘관피아’ 운운은 고위직들 얘기다. 지방직은 구제역이라도 터지면 매일 비상이고, 명절에는 특별교통대책 당직을 서야 한다. 아내까지 비상근무에 걸리면 새벽에 아이를 이웃 집에 밀어 넣고 간다.



 요새는 연금 개혁이 화제니 불만 있는 민원인들은 걸핏하면 “내가 낸 세금으로 연금 받으면서”라며 욕한다. 난 정년퇴직하면 140만원을 받게 된다. 이제 그것도 깎일 판이다. 공무원의 70%가 9급 출신인데 행정자치부 급여체계는 5급이 기준이다. 말이 안 된다. 우리는 퇴직금이 없는데 사람들이 국민연금과 단순 비교한다. 우리가 세금을 갉아먹는다는데, 그동안 국가가 경찰 순직 자녀 보상금 같은 데 공무원연금 빼다 쓴 거는 왜 이야기 안 하나. 국가가 공무원과 국민을 이간질시킨다.



 이 나라에선 별 희망이 안 보인다. 그래서였다. 이민을 알아본 건. 그런데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수중에 돈 1억원이 없어서다. 저축을 안 했느냐고? 공무원이 돼 보면 안다. 왜 돈을 모을 수 없는지. 빚내 아파트 사서 매달 150만원씩 갚고 아들딸 학원비·유치원비 쓰면 남는 게 없다.



 그래도 같이 근무하던 동료는 용케 올해 떠나겠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받은 유산이 있어 가능하단다. 그가 부럽다.



  ◆혼자 밥 하며 퇴직 이후 고민하는 경제부처 국장(세종시·고위 공무원단)=2013년 초 난 세종시로 홀로 이사했다. 딸이 대학생이라 아내는 서울에 있어야 했다.



 며칠간은 퇴근 후 주변 대학가에서 맥주를 마시며 솔로 생활을 즐겼다. 하지만 곧 싫증이 났다. 만날 사람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사람들과는 연락이 끊어졌다.



 50대의 나이에 처음으로 밥도 해 먹어야 하고 빨래·살림도 해야 했다. 업무에만 신경 쓰면 됐던 과거와는 차이가 컸다. 업무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난 요즘 서울에 가도 뜨내기다. 사무실이 없어서다. 행정자치부가 서울 청사 등에 스마트오피스를 마련했는데 고위 공무원단부터 7급까지 같이 쓰는 공간이라 자리가 없다. 커피숍에 가야 할 때도 많다. 국회 등에서 부르면 5분 면담을 위해 KTX로 왕복하는 데 5시간을 쓰는 것도 답답한 노릇이다.



 가장 힘 빠질 때는 인사 시기다. 현 정부에서 승진하는 사람은 주로 대구·경북(TK) 라인이다. 능력보다 어디서 태어났느냐가 먼저다. “누구누구는 어떤 배경으로 승진했다”는 말을 듣고만 있다.



 곧 퇴직인데 불안하다. 관피아 논란으로 산하기관에 가기 어려워졌다. 수명은 길어지는데 사실상 3년간 취업을 못하게 막아 버렸다. 공직에서 30년 근무하면 퇴직 후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는 메리트 때문에 힘든 일도 견뎠는데 이젠 없다. 공무원을 매도하지만 말고 전문성 있는 인적 자원으로 봐줄 순 없을까.



  ◆“기 좀 살려 줬으면”=다른 공무원들도 답답한 심경은 매한가지다.



 “남들은 외교관을 우아하게 보지만 실상은 고달프다. 상관이 수시로 ‘각종 상황에 따른 대처방안을 마련하라’고 해 밤을 새워 자료를 만들 때가 많다. 하지만 정작 그런 자료를 볼 수 있는 이는 몇 안 되니 사람들은 도대체 넌 무슨 일을 하느냐고 한다. 아내조차 ‘정말 그렇게 오랜 시간 일만 하는 게 맞느냐’며 믿지 못한다. 한 번은 한밤에 사무실 자리로 전화를 걸었더라. 내 목소리를 듣고 ‘어? 정말 자리에 있네?’라며 놀라는 눈치였다.”(외교부의 한 서기관)



 “나 같은 젊은 여직원은 더 일하기 힘들다. 민원인들이 만만하게 본다. 1년 반을 시험 공부에 투자해 2년 전 70대 1의 경쟁을 뚫고 공무원이 됐을 때 부모님은 정말 좋아하셨다. 주변에선 시집가기 좋겠다고들 했다. 하지만 막무가내 민원인들에게 시달릴 때면 정말 이 길이 좋은 건지 모르겠다. 올해 9급 시험 경쟁률도 높다고 들었는데(51.6대 1)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 환상을 버리라고. ‘공무원이 되기만 하면 편할 것’이란 환상은 들어와 보면 철저히 깨질 것이라고.”(서울의 구청에 근무하는 27세 9급 이모씨)



 이처럼 국민의 공무원에 대한 인식을 억울해하고 공무원의 삶을 제대로 알아주길 바라는 이가 다수였다. 어떤 이는 “이렇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불러온 원인도 인정했다. 익명을 요구한 고위 공무원은 연금 개혁에 대해 “세금 누수가 이어지는데 어떻게든 개혁이 필요한 건 사실”이라고 했다. 또 다른 7급 공무원은 “공무원 노조가 3월 총궐기대회, 5월 총파업을 이야기하지만 참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무엇보다 “공무원을 나쁜 집단으로 몰지만 말아 달라”고 입을 모았다. 24년차 공무원 홍승필(53·6급)씨는 “보수가 적어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다는 생각으로 일해 온 이도 많은데 공무원을 세금 먹는 하마로만 보지 말고 기 좀 살려 달라”고 호소했다.







[S BOX] 97년 외환위기 이후 ‘공무원 = 철밥통’ 인식 늘어나



공무원 앞에 ‘철밥통’이란 말이 붙기 시작한 건 1990년대다. 중국에서 평생직장을 일컫던 ‘톄판완(鐵飯碗)’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철로 만들어 깨지지 않는 밥통, 해고 위험이 작고 안정된 직업이란 뜻에 대기업 임직원, 은행원을 지칭할 때도 쓰였다.



 이 단어가 공무원과 동의어가 되다시피 한 건 97년 외환위기 후다. 한 24년차 공무원 의 회고. “그전엔 공무원이 인기 직업은 아니었다. 하도 다른 직업이 불안정하니 공무원이 진정한 철밥통이라는 사람이 늘었다.”



 공무원 시험에 매해 45만여 명이 뛰어들고 경쟁률이 높게는 수백 대 1에 이르게 된 배경이다.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공직자가 회사원보다 윤리의식이 강한지에 대해 공무원은 94.9%가 ‘그렇다’는데 국민은 45.2%가 ‘아니다’(‘그렇다’는 15.8%)고 한다(행정연구원 2014년 조사). 업무 공정성에 대해 공무원 93.5%가 긍정했지만 국민은 17.4%만 동의했다. 퇴직 공무원이 재직했던 기관에 청탁을 하는지에 대해 공무원 48.4%는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국민은 54.4%가 ‘한다’고 봤다.



 인사혁신처 조사(2014년)에서도 공직사회 혁신을 위해 먼저 할 일로 국민은 ‘청렴하고 존중받는 공직자상 확립’(33.6%)을, 공무원은 ‘공무원의 자긍심 고취 및 사기 앙양’(53.2%)을 들었다. 공무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국민은 ‘안정적이다’(29.6%)를, 공무원은 ‘국가를 위해 일한다’(27.2%)를 꼽았다. 공직사회 문제로 국민은 ‘뇌물, 인사 청탁 등 부정부패’(36.0%)를, 공무원은 ‘성과 평가의 어려움’(49.4%)을 지적했다.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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