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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에 한국대사 없는 건 알렉산더 대왕 때문 ?

할슈타인 원칙(Hallstein Doctrine)은 1970년대까지 한국 외교를 지배했던 대원칙이다. ‘동독과 수교한 나라와는 외교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서독의 정책에서 따왔다. 그래서 북한과 수교한 국가와는 외교 관계를 맺지 않았다. 하지만 냉전 질서가 허물어지며 할슈타인 원칙도 옛말이 됐다. 이념·체제와 상관없이 전방위 외교를 추진하며 대부분의 나라와 수교를 했다.

 현재 한국의 수교국은 190개국. 유엔회원국 191개국 가운데 188개국과 수교했다. 유엔 비회원국인 교황청, 쿡제도와도 국교를 맺었다. 수교하지 않은 국가는 마케도니아, 시리아, 쿠바와 유엔 비회원국인 코소보 등 4개국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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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케도니아는 ‘국명(國名)’ 때문에 미수교국으로 남아 있다.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공화국(ROM·Republic of Macedonia)’이라는 국명 사용을 놓고 20년 넘게 다투고 있다. 그리스 측은 마케도니아에 국명을 ‘구 유고 마케도니아공화국(FYROM·for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우방인 그리스의 입장을 고려해 아직 마케도니아와 수교하지 않았다. 나라 이름을 둘러싼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의 분쟁은 1991년 마케도니아가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독립할 때 시작됐다. 마케도니아는 당시 독립과 함께 ‘마케도니아 공화국’을 국명으로 정했다. 유고 연방에 사용하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그러자 그리스는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북부 지역의 주(州) 이름이고 마케도니아 공화국 국민은 슬라브 계열이니 정통성이 없다”고 반발했다. 한국외대 세르비아어과 김철민 교수는 “양국의 국명 분쟁은 알렉산더 대왕이 만든 마케도니아의 정통성을 누가 계승할지의 문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명 분쟁 해결이 수교의 절대적인 전제 조건은 아니라는 설명도 있다. 미국은 그리스·마케도니아 두 나라와 모두 수교하고 있다. 일본도 FYROM이란 국명을 인정해 마케도니아와 국교를 맺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마케도니아와의 수교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국명 분쟁의 진행 상황을 봐서 수교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쿠바와 시리아는 양국이 북한과 맺고 있는 끈끈한 관계가 원인이 돼 한국의 미수교국으로 남아 있다. 양국 모두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점도 작용했다. 대북 관계, 한·미 동맹 등 외교·안보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걸린 상황에서 한국이 양국과 수교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쿠바는 한국전쟁 때 한국을 지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59년 쿠바 혁명 이후 관계가 끊겼다. 쿠바는 그 이듬해 북한과 수교를 했다. 한국이 쿠바에 수교를 타진한 건 96년 7월이다. 당시 미주국장이었던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이 한국 고위 인사로선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해 수교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쿠바가 부정적 반응을 보여 성사되지 않았다. 2008년까지 쿠바를 통치했던 피델 카스트로(89) 전 국가평의회의장이 김일성 전 북한 주석과 각별한 사이였다는 점이 컸다. 쿠바가 미국과 적대관계였다는 점도 작용했다. 대북 관계, 한·미 동맹 모두를 고려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선 쿠바와의 수교가 쉬운 과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과 쿠바의 교류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2005년 수도 아바나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무역관이 들어섰고, 연간 쿠바를 찾는 한국인도 5000명에 이른다. 지난해 12월 미국과 쿠바가 관계 정상화를 이루겠다고 선언하며 한국 정부도 쿠바와의 수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10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출석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 인사가 공식적으로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를 밝힌 첫 사례였다. 전북대 송기도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쿠바와의 수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한 건 북한보다 미국과의 관계 때문이었는데 이 문제가 해결됐다”며 “쿠바 쪽도 경제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많기 때문에 우리와의 수교를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리아는 북한의 ‘중동 혈맹’ 중 한 곳이다. 북한과 각종 무기 거래, 핵 커넥션 의혹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시리아와의 수교에 손 놓았던 건 아니다. 2005년 시리아에 수교를 제의했지만 시리아가 거절했다.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한 시리아의 결정이었다. 2006년에는 양국이 영사 관계를 맺는 데 긍정적이었으나 한국 정부의 내부 논의 과정에서 무산됐다고 한다. 수교를 할 경우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고려 때문이었다. 2008년에도 수교 논의가 있었다. 교류 급증이 배경이었다. 한국의 대시리아 수출액은 2006년 이후 매년 20%씩 늘어나 2008년 7억8712만 달러를 기록했다. 2009년 11월에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KOTRA 사무소가 개설됐다. 하지만 2011년 3월 아랍의 봄 이후 시리아가 내전에 휘말리며 수교 논의 자체가 어려워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시리아와 몇 차례 수교를 시도했지만 이뤄지지 못했다”며 “시리아국가평의회(SNC·시리아 야당세력이 주축이 된 반정부 연합)가 한국과의 수교를 원하고 있지만 IS 등 극단주의 세력이 발호하며 상황이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코소보와의 수교는 세르비아와 러시아의 관계를 고려해 진행하지 않고 있다. 코소보는 98년 세르비아로부터 분리·독립하는 과정에서 유혈 충돌이 발생했다. 지금도 세르비아는 코소보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세르비아와 동맹 관계인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는 2008년 8월 코소보를 국가로 승인했지만 이 같은 점을 고려해 수교하지는 않았다. 코소보 내에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의 갈등 요소가 상존하는 것도 수교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S BOX] 가장 최근 수교국은 인구 1만8500명 쿡아일랜드

한국이 가장 최근 수교한 국가는 모나코·남수단·쿡아일랜드다. 소국(小國)이거나 신생국들이다. 최대한 많은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으려는 중견국 한국의 외교 전략을 엿볼 수 있다. 모나코와는 2007년 3월 수교했다. 모나코는 세계에서 둘째로 작은 나라다. 모나코의 면적은 1.95㎢로 여의도(2.9㎢)보다 작다. 모나코는 2005년부터 외교 분야에서 독립적 권한을 인정받았다. 이전까지 모나코는 프랑스와 외교관계를 협의해야 했다.

 남수단과는 2011년 7월 수교했다. 남수단은 수단 내전으로 2005년 1월부터 자치정부로 존재하다 2011년 7월 독립선언을 하고 신생국이 됐다. 한국은 남수단이 독립한 직후 수교를 맺었다.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을 전수받기 원하는 남수단 측이 강력히 원해 성사됐다. 쿡아일랜드는 2013년 2월 22일 정식으로 수교 관계를 맺었다. 한국의 190번째 수교국이다. 쿡아일랜드는 18세기 말 섬을 발견한 영국인 제임스 쿡 선장의 이름을 땄다. 15개의 섬으로 이뤄졌다. 인구는 1만8500명에 불과하다.

 이처럼 작은 나라들과도 수교를 맺는 이유는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남태평양의 지리적 교두보인 데다 원양어업의 길목이란 점이 고려됐다. 수교했을 때 주변국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됐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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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