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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가격에 그림을 사는 방법

[헤렌] 그림 쇼핑은 더 이상 ‘비싼’ 습관이 아니다. 저렴한 에디션 작품부터 오리지널 작품들까지, 심리적 격차를 줄임으로써손쉽게 예술에 다가설 수 있도록 돕는 여러 곳의 갤러리들.

모두가 제프 쿤스나 데미안 허스트, 이우환의 작품으로 컬렉팅을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령 그만한 경제력이 있다 해도, 작품에 대한 사랑 없이 고가의 미술품을 사들이는 것만큼 허황돼 보이는 일도 없다. 자신만의 취향을 구축한 수많은 컬렉터들이 입을 모아 말하지 않던가. 미술관의 아트 숍에서 파는 옵셋 프린트 포스터, 벼룩시장에서 만난 작은 액자 하나, 선물 받은 그림이 자신을 컬렉터의 길로 이끌었다고. 요즘 아트 마켓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단어가 있으니 바로 ‘affordable(가격이 적당한)’이다.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도록 만들어낸 ‘에디션(Edition)’ 작품이나 의도적으로 가격을 낮춘 오리지널 작품을 다루는 시장을 지칭하는 말로, 올해 한국에 상륙하는 어포더블 아트 페어(Affordable Art Fair),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운영되는 온?오프라인 갤러리들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한국 역시 이런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다. 전 세계에 여러 개의 브랜치를 갖고 있는 체인 갤러리 루마스(Lumas), 까레다띠스(Carre d’artistes), 옐로우 코너(YellowKoner)를 비롯, 크고 작은 아트 숍들이 근 6개월 사이 서울에 속속 문을 열었으니, 내 집에 그림 한 점 걸고 싶은 욕망은 이제 더 이상 억누르거나 외면해야 할 감정이 아닌 것이다.

1 에디션 번호가 부여된 한정판 사진 작품을 선보이는 옐로우 코너의 내부 모습. 코엑스몰에 자리하고 있다.


2 삼청동에 위치한 까레다띠스의 전경. 전 세계 약 600여 작가의 원화를 세계 순회전 형식으로 선보이고 있다.


3 청담동에 있는 루마스 갤러리. 라이브러리, 거실 공간 등 실제 작품이 걸리는 공간을 구현한 듯한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Art Should be Seen(예술은 보여야 한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지난해 9월 청담동에 문을 연 루마스(www.lumas.com)는 어포더블 아트 갤러리의 대표주자. 10년 전 독일의 아트 컨설턴트 스테파니에 아리그(Stefanie Harig)와 마르크 울리히(Marc Ullrich)에 의해 시작돼 뉴욕, 암스테르담, 두바이, 런던 등에 이어 상륙한 아시아의 첫 갤러리이자 30번째 매장이다. 단숨에 공간을 환히 빛내줄 감각적인 사진 작품을 구입하고 싶다면, 이곳이 최적의 쇼핑 장소라 할 만하다. 루마스가 계약을 맺은 전 세계 약 150명의 사진작가 작품을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모든 갤러리에 ‘Trunk Archive’라는 패션사진가 연합 작가들의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으니.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쇼핑백에도 무리 없이 들어갈 크기로 잘 포장된 작은 ‘오픈 에디션’ 작품들. 가격은 15만원에서 300만원 선으로, 신혼부부들이나 기업체의 선물용으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에디션의 수가 한정된 ‘아트 에디션’, 그리고 세계적 아트 페어에 놓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유명 작가 작품인 ‘Master’s Edition’ 섹션으로 세분화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남은 작품에는 ‘Last Print’라는 파란 딱지를 붙여놓는다는 것도 이색적이다. 올해 초 코엑스몰에 문을 연 갤러리 옐로우 코너(www.yellowkorner.com) 역시 비슷한 콘셉트로 운영된다. 2006년 파리에서 두 청년이 의기투합해 시작했으며 해외 진출 4년 만에 전 세계에 80개의 갤러리를 운영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곳으로 에디션이 있는 사진 작품만을 판매한다. 오로지 사진만을 판매하기에 작품이 더 세분화되어 있으며, 사이즈에 따라 ‘아트샷’ ‘셀렉션’ ‘라지’ ‘자이언트’ ‘컬렉터’로 나뉜다. 가장 작은 사이즈의 작품은 약 16만원 선.

지난달 삼청동에 문을 연 까레다띠스(www.carredartistes.co.kr)는 2001년 엑상프로방스에서 시작돼, 아시아에선 최초로 서울에 상륙했다. 이곳의 창업 스토리는 좀 더 낭만적이다. 대중이 현대미술시장에서 소외되는 현상에 안타까움을 느끼던 창립자 파트리스 마르티노(Patrice Martineau)가 작은 카라반에 그림을 싣고 이곳저곳을 다니는 그림상을 보면서, 작은 그림들을 적당한 가격에 판매하는 갤러리를 구상해낸 것! 덕분에 까레다띠스의 분위기는 마치 작은 그림들을 이젤에 내놓고 파는 프랑스 시골 갤러리를 떠올리게 한다. 작품은 각 작가의 사진과 설명 아래 네 가지 사이즈로 놓여 있는데, 그림 한점 한점이 비닐로 포장되어 있어 마치 오래된 LP가게에서 LP를 뒤적이던 아날로그적인 손맛(!)을 느껴볼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작품들이 복수로 생산되는 ‘에디션’ 작품이 아니라 작가들이 직접 그린 오리지널 페인팅이라는 것. 가격은 작가를 불문하고 사이즈별로 동일한데 가장 작은 사이즈(13×13cm)의 작품이 10만원대, 가장 큰 크기의 작품(36×36cm, 약 9호)은 70만원대. “그림을 사는 부류에 끼고 싶지만 문턱이 높아서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계기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처음부터 몇 백만원짜리 그림을 사기보단 이런 공간에서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라고 말씀드리기도 해요. 물론 이곳에서 생애 처음 미술 작품을 구입한다며 너무 행복해하는 20대의 젊은 친구들도 봤고요. 긍정적인 것은 이렇게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함으로써 취향을 발견할 수 있고, 작가를 작게나마 후원하면서 이런 시장이 계속 유지된다는 사실이에요.” 화가이자 까레다띠스 코리아의 대표인 차소림 씨의 설명이다.


▶YellowKorner
부부 사진가 ‘Formento-Formento’의 작업으로 29×45 (아트샷), 60×90(라지), 100×150(자이언트), 120×180(컬렉터)cm 사이즈로 구입할 수 있다.

Smoking Nun Cinecitta Italy, Formento-Formento


▶Carre d’artistes
부드러운 선과 질감이 살아 있는 인체 드로잉을 주로 선보이는 프랑스 작가 코린 파니의 오리지널 드로잉. 가격은 71만1000원.

Couple 2, Corine Pagny, Ink on Paper, 36×36cm, 2014



일반적인 개념의 갤러리 역시 이런 흐름에서 멀리 비껴나 있진 않아 보인다. 카이스 갤러리에서 운영하는 아트 숍 ‘Joo Edition’이 바로 그런 곳. “갤러리는 워낙 고가의 작품들이 많고 접근하기 쉽지 않은 편인데, 이곳은 작가들의 소품이나 오브제 작품들을 주로 선보이고 있어요. 갤러리에 오시는 분들이 한번씩은 꼭 들렀다 가시죠.” 김선홍 매니저의 설명이다.

1 경리단길에 위치한 아트 포스터&퍼블리싱 스토어 CollagE의 전경. 그래픽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사진작가, 뮤지션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여 제작한 포스터와 매거진 등을 판매한다.


2 청담동 카이스 갤러리와 나란히 맞붙어 있는 Joo Edition. 작은 공간에 회화와 디자인 퍼니처, 캔들 및 액세서리 등 다양한 아트 상품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카이스 갤러리의 전속 작가인 최소영, 정두화, 이소영 작가의 소품을 비롯해 민병헌 작가의 초소형 프린트 작업, 이 밖에도 캔들, 세라믹, 가구 등 감각적이고 키치적이기까지 한 작가들의 디자인 소품을 선보이고 있으니, 감각적인 선물을 구입하고 싶을 때 들러볼 만하다. 그런가 하면,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아트 숍들 역시 독특한 콘셉트를 무기로 ‘예술의 대중화’를 선언하고 있다. 디자인 회사인 ‘엘리펀트 디자인’에 의해 경리단길에 문을 연 CollagE(www.thecollage.co.kr)는 포토그래퍼 목정욱, 그래픽디자이너 김원선, 일러스트레이터 나난 등 젊은 아티스트들의 리미티드 포스터나 아트 프린트, 일러스트 등 광범위한 예술 분야를 소개한다. 50cm 이상의 아트 프린트가 단돈 2만5000원이라니 그저 놀라울 따름.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이자 칼럼니스트인 김규항 씨가 선보이는 인터넷 기반의 아트 숍 Art for All 점방(www.jumbangart.com)은 박수를 치며 반길 만한 신선한 콘셉트를 지니고 있다. 강영민, 김용호, 노순택, 양아치, 백현진, 임옥상 등 작품성을 인정받는 국내 예술가들의 작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선보인다는 것이 이들의 모토. ‘평범한 시민들이 미술 작품을 구입하고 향유하는 풍경을 만들어낼 순 없을까’라는 이들의 물음과 ‘Art for All’이라는 가게의 이름에서는 그저 ‘아트 숍’이라 갈음할 수만은 없는 묵직한 고민마저 느껴진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에디션 작품이 탄생한 배경처럼, 이 ‘어포더블 아트’의 세계가 형성된 데는 아티스트들의 기꺼운 동의가 있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굳이 예술품을 구입한다는 자의식 없이 그저 이를 하나의 ‘장식품’이라 생각하고 구입한다 한들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일용품을 사듯, 그저 가까운 곳에 두고 싶은 예술품을 구입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의미의 ‘그림 쇼핑’일 테니까.


▶CollagE
아트 프린트, 사진, 그래픽 등을 두루 선보이는 CollagE가 선보이는 작품으로 각각 포토그래퍼 목정욱의 사진, 엘리펀트 아트 디렉터 김원선의 그래픽 시리즈 중 하나다. 가격은 모두 2만5000원(액자 제외).

untitled #2, 김원선, 72.8×51.5cm


▶Joo Edition
카이스 갤러리의 아트 숍인 Joo Edition에서 선보이는 작품들. 전속 작가인 최소영, 정두화, 노준의 작품. 정두화 작가의 작품은 고서의 단면을 잘라 콜라주 방식으로 작업한 것. 가격은 각각 500만원, 30만원, 25만원.

Nuri series, 노준, wood, 10×5×2.5cm


사유의 숲, 정두화, book on wood, 13×13cm 2014


집, 최소영, denim, 21.5× 21.5cm, 2010



글=박지혜 헤렌 기자, 사진=최창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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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