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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좀 불쌍한 한국 경제'

[일러스트=김회룡]

김종수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 경제를 불쌍하다고 했다. 그제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 말이다. 국회에서 늑장 처리한 부동산 3법을 ‘퉁퉁 불어 터진 국수’에 빗대고 “그걸 먹고도 경제가 힘을 내 꿈틀꿈틀 움직이는 것을 보면, 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는 것이다. 경제회복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간절한 아쉬움과 함께 경제활성화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의지가 읽힌다. 그러면서 “올해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활성화”라며 “내수 중심의 경제활력 제고와 4대 개혁 과제들을 차질 없이 추진해 30년 성장의 도약 발판을 만들겠다”고 했다. 집권 3년 차를 맞아 경제활성화에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매진하겠다는 각오다.

 그런데 여기서 살짝 헷갈리는 대목이 있다. 바로 대통령이 거듭 힘주어 말하는 ‘경제활성화’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부동산 3법을 언급할 때는 경기회복을 뜻하는 것 같아 보이고, 30년 성장의 발판을 얘기할 때는 경제의 체질개선과 구조개혁을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아니면 경제 관련 사안을 다 뭉뚱그려 한국 경제가 잘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종합적으로 총칭하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정확한 뜻이 정의되지 않은 ‘경제활성화’란 말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등장하면서 새로운 혼선을 부른다는 점이다. 국정의 최우선 목표가 불분명하면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추진하는 정책의 효과도 불투명해진다. 한때는 정부 각 부처가 내놓는 온갖 정책에 ‘창조경제’가 접두사처럼 따라붙은 적이 있었다. 이제는 ‘경제활성화’가 그 자리를 차지할 공산이 커졌다. 대통령이 ‘경제활성화’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천명한 데다, 심지어 “어떤 일을 하더라도 경제활성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올 한 해 매진해야 한다”고까지 했기 때문이다.

 통상 정부에서 ‘경제활성화’라고 할 때는 ‘경기부양’을 에둘러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기부양이란 말에는 ‘억지로 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인위적인 조치를 동원한다’는 식의 부정적 뉘앙스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기부양’이란 용어 대신 다소 중립적으로 들리는 ‘경제활성화’란 점잖은 표현을 써 온 것이다. 사실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연초에 ‘경제활성화’를 전면에 들고 나왔을 때만 해도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한 부양책의 성격이 강했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에 출범한 최경환 경제팀은 아예 대놓고 경기회복을 위해 재정·통화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경제활성화’가 정부의 경제 관련 정책을 통칭하는 말로 슬그머니 바뀌기 시작했다. 올해 경제 운용 계획의 방점이 노동·금융·공공·교육 등 4대 부문의 개혁에 찍히면서부터다. 통상적인 용어 해석에 따르자면 이른바 4대 개혁 같은 구조개혁은 ‘경제활성화’에 포함되기 어려운 정책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경제활성화’에 어긋나는 측면도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경제활성화’가 단기적인 경기회복과 중장기적인 구조개혁을 다 합친 경제 정책의 만능 목표가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경제활성화에 매진하자고 하니 헷갈리는 것이다.

 요즘 최경환 부총리는 부쩍 4대 개혁만을 강조하고 다닌다. 경기회복에 대한 언급은 애써 피하면서 “4대 개혁 없이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며 “(정부는) 올해 여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한다. 최 부총리는 오히려 “국민들이 아직도 과거 고도성장기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다면 이제 그런 시기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면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리기보다 구조개혁을 통해 민간 부문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겠다고 한다. 사실상 (단기적인) 경기회복은 포기한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경제활성화’는 이제 본래 의미인 경기부양의 뜻은 완전히 탈색되고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구조개혁이란 뜻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똑같은 용어가 불과 1년 사이에 이렇게 다른 뜻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와 관련, “지난 2년이 골조를 세운 기간이라면 이제 그 위에 벽돌을 쌓고 건물을 올려야겠다”고 했다. 그러나 경제활성화는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공약도 아니었으며, 그나마 집권 첫해에는 ‘경제민주화’에 묻혀 거론되지도 않았다. 그동안 경제활성화의 골조를 제대로 세우지도 않았거니와 이마저 그 내용이 바뀌었는데 과연 어떤 건물을 올리겠다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솔직히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은 지난 2년간 우왕좌왕했었고,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도 못한 게 사실이다. 물론 세월호 참사와 세계 경제의 침체로 대내외 경제 여건이 어려워진 점이 경제 실적 부진에 큰 몫을 했다. 그렇다면 뜻마저 불분명해진 ‘경제활성화’를 만병통치인 것처럼 외칠 게 아니라, 그런 사정을 국민들에게 솔직히 토로한 후에 제대로 된 경제회생책을 강구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는가. 무엇을 어떻게 활성화하겠다는 것인지 헷갈리는 한국 경제가 좀 불쌍하다.

김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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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