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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음식] 영화 '광해' 속 팥죽

江南通新이 ‘이야기가 있는 음식’을 연재합니다.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요리와 이 요리의 역사, 얽힌 이야기 등을 소개합니다. 첫 회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팥죽입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팥죽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상대를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이다. 큰 팥죽 사진은 천덕상 롯데호텔서울 무궁화 셰프가 영화 광해에 나온 팥죽(아래)을 재연한 것. 푹 삶은 팥을 고운 체에 받쳐 걸러내 식감이 부드럽다. 김경록 기자

다음 주면 3월입니다. 곧 따뜻한 봄바람이 불고 더운 여름이 오면 지금의 추위가 그리워지겠죠. 2월의 마지막 주인 이번 주엔 겨울의 시작인 동짓날 먹었던 팥죽 한 그릇 어떠세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속 하선이 팥죽을 통해 전하려던 따뜻하고 달콤한 마음이 느껴질 겁니다. 함께 먹는 사람과 정(情)도 소복하게 쌓이지 않을까요. 송정 기자


동짓날 역귀 쫓고, 복날 더위 물리치던 음식
붓기 빼는 사포닌 많아 순종 임금의 약으로
최근 팥빙수, 단팥빵 등 복고풍 메뉴 각광

#장면1. “이 팥죽 누가 만들었느냐. (중략) 허허 맛나구나. 어릴 적 먹던 그 맛이구나. 오늘은 이걸로 됐다. 수라를 내가거라.”

수라간 상궁들이 자신이 먹고 남긴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걸 알게 된 하선(이병헌)은 산해진미로 가득한 수라상에서 팥죽만 먹고 상을 물린다.

#장면2. ‘중전의 얼굴이 창백하오. 팥죽을 먹고 어서 힘을 내시오.’

반대 세력에게 오빠를 잃을 위기에 몰린 중전(한효주)을 위로하기 위해 하선은 기미나인 사월이(심은경) 편에 중전에게 팥죽을 보낸다. 식기 전에 먹는 것을 보고 그릇을 꼭 가져오라는 당부와 함께.

#장면3. “너의 불충이 무엇인지 말해보거라.(중략). 목숨을 걸고 임금을 지켜야 할 호위관이 지 마음대로 죽겠다고 칼을 물다니, 그것이야말로 대역죄가 아니고 무엇이냐. 내 목에 칼을 들이댄 것이 열 번이어도 상관없다. 허나 니 놈이 살아야 내가 사는 것, 니 목숨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것이냐. 팥죽 맛이 어떻더냐.”

“달고 맛났사옵니다.”

“그래. 살아있어야 팥죽도 맛난 거야. 이 칼은 날 위해서만 뽑는 것이다. 꼭 기억해두거라.”

하선의 정체를 의심한 도부장(김인권)이 하선의 목에 칼을 들이댄다. 중전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 하선은 자신의 정체를 의심한 도부장에게 팥죽을 보낸다. 불충을 저지른 자신을 탓하는 도부장을 하선은 따뜻한 말로 감싼다.

#장면4. “캬, 오늘따라 유난히 팥죽 맛이 다르구나. 내 이 맛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어찌 우느냐 사월아.”

“전하, 부디 강녕하시옵소서.”

독이 든 계피사탕을 팥죽에 넣으라는 기미상궁의 지시를 받은 사월이는 하선을 대신해 죽음을 선택한다.

영화 ‘광해’에서 기미나인 사월이가 하선 대신 죽기로 결심하고 팥죽을 먹는 장면.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는 천민 출신의 하선이 왕의 덕목을 갖추는 장면마다 등장하는 음식이 있다. 바로 팥죽이다. 암살의 위협을 우려해 수라상을 뒤엎던 진짜 광해군과 달리 하선(이병헌)에게 수라상의 산해진미는 다디달다. 그러나 수라간 나인들이 자신이 먹고 남긴 것으로 식사를 한다는 사실을 안 이후 수라상 위의 음식을 멀리하고 팥죽만 찾는다. 이뿐 아니다. 중전의 미소를 찾아주기 위해서, 왕을 의심한 자신을 자책하는 도부장을 위로하기 위해서, 왕은 팥죽을 보낸다. 영화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한 팥죽은 하선을 암살하는 대신 자신이 죽음을 택한 기미나인 사월이의 마음이다.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준 왕에 대한 마음이 담겨 있다. 영화에서 팥죽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왕과 사월이의 마음이었다.

음식은 마음이고, 정성이고, 나눔이다. 하선에게 팥죽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팥죽은 아주 오랫동안 한국인과 함께했다. 왕실부터 서민까지 두루 먹던 모든 이의 음식이었다. 하물며 ‘호랑이’도 팥죽을 먹고 싶어했다.

“어흥! 너 잡아먹으러 왔다”는 호랑이를 할머니는 “호랑아, 내가 이 팥농사 지어 동짓날 팥죽 맛있게 끓여 놓거든 그걸 먹고 나서 날 잡아먹으렴”이라고 달랜다. 전래동화 ‘팥죽할멈과 호랑이’의 내용이다. 동지 팥죽을 먹으러 온 호랑이를 할머니는 친구인 달걀, 개똥, 멍석, 지게와 힘을 합쳐 물리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얘기다.

붉은색의 팥죽은 동짓날 역귀를 쫓는 음식으로 여겨졌다. 음기가 최고조에 이르는 동짓날, 팥죽은 음기로 손상된 기운을 회복시켜 준다고 알려져 있다. 팥죽은 여름 복날에 먹는 보양식이기도 했다. 고려 후기 『목은서생문집』에는 ‘여름철 구름과 찌는 햇볕이 불같이 성하여 땀방울이 줄줄 흐르고 두 눈이 깜깜하네. 적두(팥)를 푸른 사발에 벌꿀을 넣어 마시니 바로 서늘한 기운이 살 속에 스며드는 듯 했네’라는 기록이 있다. 신미경 국제한식조리학교 교수는 “19세기 중반까지 민간에서도 ‘복날에 팥죽을 먹으면 더위 먹는 병이 없다’는 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동의보감』은 팥죽을 약용죽으로 소개하고 있다.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은 세자 시절부터 비위가 약해 다리가 붓고 아픈 각기병을 자주 앓았다. 이에 내의원에서 체내의 붓기를 빼는데 도움을 주는 사포닌이 많이 들어있는 팥을 처방해 병을 다스렸다.

먹거리가 다양해지고 서양 음식들이 늘어나면서 한때 전통 음식 팥죽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약 3년 전부터 팥 요리는 다시 각광받는 현대인의 음식이 됐다. 천덕상 롯데호텔서울 무궁화 셰프는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사람이 늘고 디저트 문화가 확산되면서 인공적인 단맛보다 담백하고 건강한 단맛을 내는 팥으로 만든 죽이나 빵·떡·양갱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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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가장 인기를 끄는 팥 음식은 팥빙수다. 한때 과일빙수 등이 인기를 끌었지만 3년 전부터 팥과 연유만 얹어 먹는 복고풍의 팥빙수가 대세가 됐다. 이와 함께 팥죽, 팥 디저트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옥루몽’ ‘단팥소’ ‘소적두’ ‘단팥집’ 등 팥 전문 카페가 생겨났다. 팥빙수의 뒤를 이어 단팥빵도 인기를 끌었다. 2년여 전부터 지하철역에는 단팥빵 전문점 ‘서울연인’ ‘누이애’ ‘미인단팥빵’ 등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전북 전주에서 단팥빵으로 인기를 끈 ‘이성당’은 지난해 11월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분점을 냈다.

팥죽 잘하는 집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76년 문을 연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집’이나 98년 등장한 ‘천팥죽’ 등은 전통의 분위기와 맛을 간직한 오래된 맛집이다. 최근 문을 연 ‘담장옆에 국화꽃(2006년)’ ‘동빙고(2010년)’ 등은 요즘 사람들의 입맛을 고려한 맛을 선보였다.

집에서 손수 팥 요리를 해먹는 주부도 늘고 있다. 팥죽을 만들 땐 팥을 씻어서 물에 충분히 잠길 정도로 끓이다가 물이 끓어오르면 바로 물을 따라 버리는 걸 빼놓으면 안 된다. 처음 팥을 삶은 물에는 쓴맛과 설사를 일으키는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새알심을 만들 때 찹쌀 가루에 멥쌀 가루를 40% 정도 섞으면 덜 늘어지고 붙지 않는다. 또한 어린 자녀가 있는 집이라면 팥죽을 만들 때 껍질을 제거해야 한다. 팥죽의 텁텁한 맛이 껍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배한철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총주방장은 “삶은 팥을 고운 채에 걸러 남은 껍질을 버린 후 조리하면 보다 맛있게 즐길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한 팥죽에 설탕 대신 소금을 뿌려 먹으면 단맛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 독자의 이야기
"나 팥죽 참 싫어했는데
유학 땐 엄마 손맛 공수"


전 어릴 적엔 팥죽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팥으로 만든 빙수나 아이스크림은 달고 맛있는데 팥죽은 특유의 쓴맛이 났거든요. 어른들이 팥죽을 먹을 때 전 달달한 호박죽이나 흰쌀죽만 먹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이상하게 날씨가 추워질 때면 엄마가 만들어준 팥죽이 생각나더라고요. 마치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팥죽을 원하는 것 같았어요.

 외국에서 유학할 땐 팥죽 먹고 싶은 마음에 동짓날 혼자 팥죽을 쒀 먹겠다는 결심까지 했어요. 그래서 엄마에게 팥을 보내달라고 하니 엄마는 “팥죽 쑤기 얼마나 힘들고 복잡한데, 네가 어떻게 하냐”며 말리셨죠. 그래도 딸의 부탁에 결국 팥과 자세히 적은 팥죽 레시피를 함께 보내주셨어요. 반나절 넘게 팥을 불려 죽을 쒔고 보기에 제법 그럴듯한 팥죽을 만들었습니다. 하얗고 동그란 새알심 대신 찹쌀가루를 숟가락은 푹푹 떠 넣긴 했지만요. 그런데 신기하게 찹쌀가루가 뭉치면서 농도가 알맞게 되더라고요. 맛이요? 태어나 먹어본 팥죽 중 가장 맛있었습니다. 엄마에게 맛보여 드릴 수 없던게 아쉬웠을 정도예요. 이후 한국에 돌아와 여러 번 팥죽을 먹어봤지만 그 맛이 나지 않네요. 그래도 전 그날 이후 팥죽을 무척이나 좋아하게 됐습니다.

 아, 그날의 팥죽이요? 앞서 말한대로 찹쌀가루를 반죽해 새알심으로 빚는 대신 숟가락으로 퍼 넣었고요. 설탕은 넣지 않았습니다. 그래야 더 깊은 맛이 나거든요. 소금은 찹쌀가루 냄새를 막기 위해 조금 넣었습니다. 또 전 팥을 갈거나 체에 거르지 않고 껍질째 끓였어요. 팥이 씹히는 거친 느낌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백수진(24·성남시 수내동)


궁금합니다

Q. 팥은 달아서 살찔 거 같아요.

A. 아닙니다. 팥은 비타민B1을 비롯해 칼슘·인·철분 등 영양소가 풍부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적은 양을 먹어도 포만감이 높다는 거죠. 그래서 최근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다이어트 음식으로 인기입니다. 또한 소화를 촉진시켜 주고 체내 불필요한 노폐물을 배출시켜 속이 더부룩하고 술을 자주 마시는 현대인에게 추천하는 식품입니다.




# 서울의 팥죽 맛집

서울에서 유명한 팥죽 맛집 4곳을 소개합니다. 레스토랑 가이드북 『다이어리알』 이윤화 대표,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배한철 총주방장, 더플라자 허성구 총주방장, 롯데호텔서울 무궁화 천덕상 셰프의 추천을 받아 중복되는 4곳을 추렸습니다.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
“오랜 세월 단팥죽을 비롯해 건강 메뉴를 팔아온 집으로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 특징: 1976년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삼청동을 지켜온 동네 터줏대감이다. 팥 앙금으로 죽을 쓰기 때문에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리듯 부드럽다. 여기에 큼지막한 찰떡이 씹는 재미를 더한다. 찰떡과 함께 삶은 밤·콩·은행을 고명으로 올린다.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예전 그대로의 인테리어가 어린 시절 향수를 자극해 팥죽과 잘 어울린다.
● 가격: 단팥죽 7000원
● 영업 시간: 정오~오후 9시(월요일 휴무)
● 전화번호: 02-734-5302
● 주소: 종로구 삼청동 28-21
● 주차: 불가

신당동 천팥죽
“엄마가 끓여주던 팥죽이 생각나는 전통 팥죽을 먹을 수 있다.”

● 특징: 17년 전 신당역 인근에 문을 연 팥죽 전문점. 메뉴도 팥죽과 팥칼국수 두 개뿐이다. 팥죽을 받아드는 순간 그릇 가득한 30여 개의 찹쌀 새알심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쫄깃한 새알심과 너무 달지 않는 팥죽이 맛의 조화를 이룬다. 팥을 압력솥에 넣고 끓인 후 여러 번 걸러 농도를 조절하고 간은 소금 간만 살짝 한다. 팥죽·팥칼국수와 함께 내오는 시원한 동치미와 김치도 인기다.
● 가격: 새알팥죽 8000원
● 영업 시간: 오전 10시30분~오후 9시(일요일·명절 휴무)
● 전화번호: 02-2237-6385
● 주소: 중구 신당5동 120-26
● 주차: 불가

동빙고
“푹 삶은 단팥이 듬뿍 들어가 있어 먹을 때 씹는 맛을 주고 현대인의 입맛에 맞춘 적당한 단맛의 단팥죽을 맛볼 수 있다.”

● 특징: 작은 테이블 8개가 전부인 작은 가게로 2010년 7월 팥전문점을 표방하며 문을 열었다. 일본 도쿄제과와 프랑스 르코르동블루 출신인 최윤희 대표가 직접 지방에서 사온 팥을 고르고 죽을 쑨다. 팥을 1차로 삶아 쓴 물을 빼고 다시 한 번 익혀낸다. 손님에게 내기 전 찰떡을 넣고 끓여 찰떡이 살짝 퍼져 나온다. 삶은밤·호두·잣을 고명으로 올리고 계피가루를 뿌려 낸다.
● 가격: 단팥죽 6500원
● 영업 시간: 오전 10시30분~오후 11시
● 전화번호: 02-794-7171
● 주소: 용산구 이촌동 301-162 현대상가 1층
● 주차: 상가 앞(무료)

담장옆에 국화꽃
“고구마단팥죽은 정성스럽게 끓여낸 팥죽과 함께 담아낸 고구마의 조화가 일품이다.”

● 특징: 단팥죽은 팥을 삶아 체에 두 번 내려 걸러내 껍질을 완전히 제거했기 때문에 식감이 부드럽고 맛이 텁텁하지 않다. 삶은 밤, 옹심이, 찐 강낭콩을 올리고 계피가루를 뿌려낸다. 팥을 통째로 넣고 토판염으로 간한 무당통팥죽은 단맛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인기다. 지난해 한남동과 반포 파미에스테이션에 지점을 냈다.
● 메뉴: 단팥죽·무당통팥죽 8000원씩, 고구마단팥죽·단호박단팥죽 9000원씩
● 영업 시간: 오전 9시~오후 11시(일·공휴일 은 오전 10시부터)
● 전화번호: 02-517-1157
● 주소: 서초구 반포동 92-3
● 주차: 발레파킹(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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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