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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마흔 승짱, 할배라 불려도 행복해

앞만 보고 달려온 이승엽도 마흔 살에 이르자 옆과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는 부담스럽기만 했던 ‘국민타자’라는 별명이 이제는 영광스럽다고 했다. [오키나와=정시종 기자]
2002년 2월, 미국 애리조나의 프로야구 삼성 스프링캠프. 박흥식(53) 타격코치는 당시 새내기 왼손타자를 보며 말했다. “이 녀석, 승엽이 신인 때보다 낫네.”



오키나와에서 만난 이승엽
나이 들며 정교한 타격 노력
작년 스윙 줄여 32홈런 부활
"56개 쳤던 2003년보다 짜릿"
내년 시즌 지나면 은퇴 계획
"팬들이 준 사랑 돌려줘야죠"

삼성의 4번타자로 성장한 최형우(32)였다. 2015년 2월, 삼성의 일본 오키나와 캠프. 2002년 최형우가 ‘제2의 이승엽’이었다면 올해는 ‘제3의 이승엽’이 있다. 키(1m89㎝)가 큰 데도 배트를 부드럽게 돌리는 왼손타자를 보며 코치들은 입을 모았다.



 “저 친구, 승엽이 스무 살 때 같네.”



유망주 구자욱(22)을 보고 한 말이다. 우리 나이로 마흔 살이 된 이승엽은 이들과 함께 뛴다. 이승엽은 이제 최형우의 뒤를 받쳐야 하고, 구자욱과 지명타자 자리를 놓고 다퉈야 할 수도 있다. 1995년 입단 후 21번째 맞는 스프링캠프. 이승엽은 여유를 부릴 새도 없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뜨거운 햇볕 아래 얼굴이 새카맣게 탄 이승엽을 22일 오키나와 아카마 구장에서 만났다.



 “힘들다. 그런데 참 행복하다”고 그는 말했다. 이승엽은 “젊은 선수들이 뒤에서 나를 ‘할배’라 부를지도 모른다. 그래도 후배들과 함께 뛰는 게 좋다”며 웃었다. 한편으로는 구자욱 같은 선수가 부럽다고도 했다. 신나고 재밌는 야구 인생이 이제 막 시작되기에,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기회가 많이 남았기에 그렇다.



 - 젊을 때부터 야구를 잘했고, 부담스러울 만큼 인기도 많았는데 후배들이 부럽다고?



 “그럼. 야구가 얼마나 짜릿한데. 난 아직도 안타를 못 친 날에는 억울해서 잠을 못 자. 잘 때린 날은 흥분이 가시질 않지. 예전에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고, 팬들과 미디어의 관심이 집중돼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거 다 복에 겨운 얘기야. 참 감사한 날들이었어.”



 - 하긴 ‘제2의 이승엽’은 있어도 ‘제2의 국민타자’는 없지.



외다리 타법을 버리고 하체 움직임을 줄인 이승엽은 이제 더 이상 타격폼을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 [오키나와=정시종 기자]
 “예전엔 ‘국민타자’라는 별명이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몰라. 나보다 야구 잘하는 선배들이 많은데 ‘국민타자’라니. 나중에야 그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말인지 알았지. 그런데 ‘국민타자’라는 별명을 누가 만들었지? 그걸 잘 모르겠네. 누군지 알면 꼭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지난 15년 동안 이승엽과 수십 차례 인터뷰를 했다. 성취욕이 강한 그의 말 속에는 생존·상승·도전·고통이 늘 뒤섞여 있었다. 잘 드러내지 않았을 뿐 이승엽은 항상 긴장해 있었고, 예민했다. 앞만 보고 달려온 그가 마흔 살에 이르자 옆과 뒤도 돌아보기 시작했다.



 2008년 이승엽은 일본 요미우리에서 뛰다 부상과 부진으로 2군으로 떨어졌다. 지금은 열한 살이 된 장남 은혁이가 “아빠는 요미우리 선수인데 왜 TV에 안 나와?”라고 물었다. 야구가 안 되는 것보다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지 못한 게 더 마음 아팠다. 당시 그는 “난 스트레스 덩어리”라고 고백했다.



 - 그럼 스트레스 안 받는 방법은 야구 잘하는 것 뿐이네?



 “그래서 더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했지. 한국으로 돌아온 2012년에 잘했지. 이듬해엔 2013년엔 못했는데 정말 괴롭더라고. 아들에게 보여준 것도 없이 끝나나 했지. 그래서 폼을 바꾼 거야. 하체 움직임을 줄이고 배트를 눕혔어. 힘을 좀 빼고 일단 공을 정확히 맞히자는 거였지. 그게 성공해서 지난해 성적(홈런 32개, 타율 0.308)이 좋았잖아. 솔직히 (54홈런을 쳤던) 1999년이나 (아시아 최다인 56홈런을 기록했던) 2003년보다 2014년이 더 짜릿했어. 지금도 지난해를 생각하면서 혼자 웃는다니까. 흐흐.”



 - 이승엽처럼 폼이 많이 바뀐 타자가 없는 것 같은데.



 “투수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구종이 다양하니까. 골프처럼 일관된 스윙으로는 상하좌우로 파고드는 공을 칠 수 없어. 나이와 상황에 맞게, 시대 흐름에 따라 스윙이 달라져야지. (외다리 타법을 하지 않고 배트를 눕힌) 지금의 자세가 아마 내 마지막 타격폼이 될 거야. 훈련할 때도 절대 세게 치지 않아. 작은 스윙으로 정확하게 치려 노력하지.”



 이승엽을 보며 ‘착한 남자 콤플렉스’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다. 20대의 그는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 뛰었다. 30대엔 두 아들에게 멋진 아빠가 되고 싶어서 악착같이 달렸다. 가족의 자랑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한 의지와 노력이 그를 한국 최고의 홈런타자로, 요미우리 4번타자로, 서른아홉 살에 32홈런을 친 타자로 만들었다. 이승엽은 “그게 사는 재미고, 행복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올 시즌이 끝나면 이승엽은 자유계약선수(FA)가 된다. 그것과 상관없이 그는 내후년에 은퇴를 계획하고 있다. 야구 덕분에 듬직한 아들, 훌륭한 아빠가 됐으니 마지막에는 팬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돌려줄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국민타자’ 다운 은퇴 준비다.



글=김식 기자 

사진=정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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