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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한국 생각한다면 해외원조에 더 힘써야 할 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블로그(blog.naver.com/ohsehoon4u)엔 페루·르완다의 경험담이 에세이 형식으로 140여 편 올라가 있다. 소박한 일상과 정치·행정·정 책·예술 등에 대한 탐구가 정성스럽게 담겨 있다.
“복지 얘기만 안 한다면, 얼마든지 인터뷰할게요.”
오세훈(54) 전 서울시장이 남아메리카 페루와 아프리카 르완다에 각각 6개월간 머물다 지난달 말 귀국했다. ‘무상급식’에 반대해 시장 직에서 물러난 지 어느새 3년 반, 다시 돌아온 한국은 때마침 증세와 복지 논쟁으로 뜨겁다. “거봐, 내 말 맞잖아. 무턱대고 복지 했다간 나라 곳간 거덜 난다고. 나의 선견지명을 이제 알겠지”라며 기세등등하게 인터뷰에 나설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복지 얘기 말고 1년간 외국 생활만을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유력 정치인이 정치 무대에서 물러난 뒤 잠시 해외에 나가는 건 다반사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그가 서방 선진국이 아니라 페루·르완다에 갔다는 게 새삼 눈에 들어왔다.

[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오세훈 전 서울시장

-근황은.
“1년간 못 뵌 분들 찾아 뵙고 있다. 다음 학기 강의도 준비 중이다. 서울 지역의 대학 두 군데에서 공공정책과 국가 비전이라는 테마로 강의할 예정이다.”
-왜 1년간 외국에 나갔나.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 중·장기 자문단 일원으로 페루 6개월, 르완다 6개월씩 있었다. 이른바 ‘지식공유사업(Knowledge Sharing Program·KSP)’, 즉 우리나라가 단기간 이룩한 경제발전 경험을 개발도상국에 전수하는 일이다. 나는 두 나라 수도에 머물며 지방자치 행정의 노하우를 전달했다. 고위 공직자 연수 프로그램, 대통령실과 총리실 등 주요 부서 직원들 역량 강화 프로그램 등에도 참여했다.”
-무엇을 체험했나.
“말이 개도국이지 우리나라가 아부해야 하는 나라들이다. 페루는 석유·천연가스·주석 등 자원 강국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6000달러 수준으로 나라 경제가 막 용틀임을 하고 있다. 르완다는 가난하다. 지하자원도 없고, 국토도 좁고, 교육수준도 낮다. 하지만 리더십이 뛰어나다. 수돗물이 끊기고, 전기가 안 통하는 데 전국에 광대역 통신망을 깔았다. 역발상이다. 이걸 토대로 외국 투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우리가 10년 뒤 먹거리·일거리를 위해선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해야 함을, 원조도 또 하나의 산업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르완다에서 그가 주말에 자원봉사를 하는 모습.

페루·르완다서 행정 경험 전수

-원조가 산업이다? 무슨 의미인가.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대한민국이 외국인들에게 어떤 이미지일까. KOTRA에서 17개 단어를 주고 연상되는 걸 조사했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1위는 고속 성장, 2위는 첨단 기술. 반면 12위는 디자인, 17위 꼴찌는 국제사회 기여였다. 단기간에 경제성장해 잘살긴 하지만 못사는 나라를 돕지 않고 자기만 안다는 뜻 아닌가. 전형적인 졸부 이미지다. 문제는 이런 국가 이미지가 국가 브랜드로 직결되면서 경제활동에도 밀접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가.
“똑같은 성능의 제품일 경우 어떤 국가의 제품을 소비하겠는가라는 설문에서도 결과는 1위가 국제사회 기여, 2위가 디자인이었다. 즉 돈 있는 소비자들은 국제사회에 이바지하면서 디자인을 세련되게 하는 나라의 상품에 기꺼이 더 많은 돈을 내겠다는 것이다. 국가 순위로는 1위 독일, 2위 미국이었다. 지금처럼 우리가 국제적 이슈에 무관심하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머물면 해외에 물건 갖다 팔면서 제값 받기 힘들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기도 어렵다는 얘기다.”
-그래서 해외 원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인가.
“원조를 하면 물론 좋다. 하지만 우리 처지에 빚 내면서까진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답은 사람이다. 인력을 해외에 내보내야 한다. 코이카의 중·장기 자문단 같은 인력을 1만 명까지 늘려야 한다. 이들이 중남미·아프리카에 진출해 댐 짓고, 발전소 건설하는 등의 우리 노하우를 전달하는 거다. 국가 이미지 개선의 선봉에 서면서 각 지역의 전문가로 뿌리내리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일석이조?
“자문단이 단지 원조의 첨병일 뿐만 아니라 우리 기업이 중남미·아프리카에 진출하는 데 교두보 역할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프리카라고 다 똑같지 않다. 어떤 나라는 공무원이 뒷돈을 밝히고, 딴 나라는 그랬다간 감방 가며, 어디는 뒷돈을 받고도 일이 진척되지 않는다. 그건 그 나라에 오래 거주하며 몸으로 체득해야 알 수 있는 거다. 휴대전화와 백색가전 이외 중남미와 아프리카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얼마나 되나. 우리가 손 놓고 있는 사이 중국이 이미 이 지역을 야금야금 챙겨가고 있다. 자문단엔 은퇴한 이들의 노련함과 젊은이의 열정 모두가 필요하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당연히 뒤따른다.”
그가 코이카로부터 받은 생활비는 매월 4000달러. 집 렌트비가 가장 많이 들었단다. 페루에서 혼자 지낼 때는 조금 모자랐고, 르완다에선 세 명이 같이 집을 써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그 돈을 모아 슬리퍼를 구입해 매달 한 번씩 오지를 찾아가 전달해주기도 했다. 손마디에 주부습진도 걸렸다. “고추·가지·호박·콩나물 다듬고, 김치찌개·미역국…. 당당한 오 주방장이었죠. 제가 다 먹여 살렸어요.” 지난해 말 아내와 딸이 르완다를 찾았고, “주방에 얼씬거리지 마”라며 맘껏 솜씨를 뽐냈다. 귀국 길에 아내에게 슬쩍 음식이 어땠느냐고 물었단다. “먹을 만하긴 한데 뭐랄까…. 그냥 대학교 때 엠티(MT) 음식 같아요.”
인터뷰는 해외 원조에서 다시 국내 정치 현안으로 넘어갔다.


증세보다 복지 체계 구축이 우선

-새삼 복지 논쟁이 뜨겁다.
“나에게 ‘복지 반대론자’라는 이미지를 덧씌우려곤 하는데 오해다. 서울시 예산에서 복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내가 임기 시작할 때는 15%였으나 5년 뒤 25%까지 끌어올렸다. 따지고 보면 원조랑 복지는 같은 원리다. 원조도 개도국 스스로 바라는 도움을 줘야 하고,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 가능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의존성만 키우고 자립성을 약화시키는 복지는 곤란하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과거 희망통장사업이었다. 극빈자가 저축하려는 의지를 생기게끔 해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도 벤치마킹했다. 그런 복지를 해야 한다. 정치 복지, 표 복지 했다간 누더기 복지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선 동의하나.
“난 기본적으로 증세 반대다. 지금 세금 올리자는 말을 쉽게 꺼내지만 정말 증세를 결정하는 순간 국면은 완전히 바뀐다. 어떻게 누구를 대상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엄청난 혼란과 반발이 뻔하다. 증세에 앞서 복지 체계를 제대로 잡는 게 우선이다. 중복이나 군더더기 요소를 없애고, 향후 10년간 어떤 식으로 복지를 늘려가겠다는 로드맵이 먼저 나와야 한다. 그 계획에 따라 증세를 논의하는 게 순서다.”
-박원순 시장의 시정을 평가한다면.
“노코멘트다.”
-말끔한 외모 탓인지 시중엔 “오세훈은 왕자병”이라는 소리가 적지 않다.
“조금 투박하게 생긴 분이 ‘디자인 서울’과 ‘한강 르네상스’를 펼쳤다면 이토록 공격을 받았을까 싶긴 하다. 나에 대한 오해가 많다. 일로 평가받고 싶다.”
-정치 재개는. 4·29 재·보선에 출마하나.
“재·보선엔 출마하지 않는다. 서울시장을 5년 정도 했다면 사회적 공공재 아닐까 싶다. 앞으로 공공재로서 정치·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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