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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의 시대공감] 마지막 날에 무엇을 하고 싶은가

죽음이란 놈은 갑자기 찾아온다. 병이 위중해도 웬만해선 죽음이 노크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늘 치료하면 나았고, 이번에도 그러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이별을 준비할 시간을 놓쳐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친의 운명이 그러했다. 지난해 2월 입원한 병원의 의사는 나아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더 이상 치료할 게 없다며 요양병원으로 옮기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자식들은 10월 돌아가실 때까지 상급병원을 전전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그나마 응급실에 실려가시기 전 4개월은 보름에 한 번꼴로 시골집을 찾으셨다. 선친의 유일한 희망사항이었다. 시골에 가면 잠시 기운을 내 집안 정리도 하시고, 텃밭도 손질하셨다. 그렇지만 나머지 4개월은 주삿바늘을 잔뜩 꽂은 채 병실 침대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마지막을 맞으셨다.

그런 시간을 보낸 뒤에 느끼는 것은 우리가 죽음에 대해 준비가 너무 안 돼 있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서는 공포를 느끼고 무조건 멀리 달아날 생각만 했다.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라는 사실, 그것을 어떻게 맞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선친은 생전 주말마다 고향집으로 가자고 하셨다. 그러나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시골로 내려가다 응급상황이 발생해 구급차에 실려가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고향집에 내려가셨을 때 그 편한 표정, 평온을 되찾으시는 환자의 마음을 생각하면 그 귀한 시간을 자식들이 빼앗은 게 아닌가 후회가 밀려온다.

선친은 종종 병원이 싫다며 고향집에서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자식들은 병세가 깊어 온전한 판단을 못하시는 탓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마무리된 뒤 생각해 보면 환자의 판단이 옳았던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환자를 위한 조치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대부분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일은 아닌가. 보호자가 귀찮아서, 살아남을 사람의 마음이 편하려고….

가장 큰 후회는 인공호흡기다. 자식들끼리 연명치료는 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인공호흡을 하지 않으면 바로 돌아가신다는 말에 약해졌다. 폐의 상태가 나빠 기포가 빠져나가고, 온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채 수십 개의 주사호스를 주렁주렁 달고 20여 일을 버텼다. 누군가 “입 모양이 ‘막설해라(하던 일을 그만두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더라”고 했지만 기도에 관을 꽂은 상태로는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이미 꽂아 놓은 관을 다시 뽑을 방법이 없었다.

이건 선친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 부딪칠 문제다. 병원을 드나들며 비슷한 고민을 수없이 봤다.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지 배운 일이 없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과정이다. 가능한 한 고통을 줄이며 죽음을 준비하고, 존엄하게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남겨질 사람들이 할 일이다. 두려운 것은 영원한 수면이 아니라 거기에 이르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품격을 잃고 고통에 신음하는 유약한 모습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환자실에서는 하루 두 번으로 면회가 제한된다. 인공호흡기를 단 뒤로는 의사 표현이 불가능하다. 하루 종일 수면상태다. 주사할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바늘을 찌르고 검사한다. 생명의 연장이 아니라 고문의 연장 같았다.

말기암 환자는 대개 임종을 맞이할 시간이 주어진다. 그럼에도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암환자 중 호스피스 이용자는 12.7%에 불과하다고 한다. 미국(65%)·싱가포르(70%)·대만(20%) 등에 비해 턱없이 낮은 비율이다. 호스피스 시설도 모자라고, 환자나 보호자의 인식도 부족한 탓이다.
초고령사회로 가면 연명치료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2011년 통계청 추계를 보면 노인 인구 비중은 전체 인구의 11%(2010년)에서 24.3%(2030년), 40.1%(2060년)로 늘어난다. 2020년에는 노인 의료비가 전체 건보 진료비의 45.6%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호스피스 시설은 부족하다. 대부분 종교단체들이 적자로 운영한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스스로 죽음을 맞는 자세다. 사회적으로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벗고 남은 시간 동안 생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환자 본인, 대부분은 가족이 결심해야 한다. 그런 결정을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 갈 때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jink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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