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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롯데 자이언츠 우승'으로 건배사 한 안철수

박재현
논설위원
이달 초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서병수 부산시장 주재로 ‘서울지역 출향인사 초청 신년 인사회’가 열렸다. 부산 출신인 정치인·공무원·법조인·기업가·언론인·문화계 인사 등의 신년 모임 성격이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해 500여 명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뤘다.



 행사장에서 눈에 띈 인사는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김 대표와 서 시장 등이 헤드테이블에 앉아 행사를 주도했다. 반면 안 의원은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의 양쪽 자리는 비어 있었다. 한때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그의 정치적 위상은 힘이 빠진 듯했다. 행사장 테이블을 오가며 서로 인사를 나누거나 명함을 교환하는 참석자들 사이에 끼어 있는 그의 모습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부산의 발전상을 알리는 스크린을 바라보며 표정관리를 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텔레토비 미소’라고 했다. (※안 의원을 담당했던 기자들이 이 같은 별칭을 붙였다는 것을 행사가 끝난 뒤 알았다.)



 -저기 안철수 (의원) 와 있네.



 -보좌관도 없고, 혼자네….



 -무슨 말을 할라카는고?



 참석자들의 수군거림이 나왔다. 향토색이 진하게 풍기는 출향인사 신년회에 처음으로 나온 안 의원의 생각과 말이 여전히 궁금한 듯했다. 그의 향후 행보가 정치권에 미칠 영향을 가늠해보려는 심산이었을까. 부산지역 언론은 ‘호남 사위’로 쓴맛을 본 그가 ‘부산 적자’를 통해 정치적 부활을 노린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김무성 대표가 건배사 스타트를 끊었다. “집권여당 대표로서 부산이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 건배!” “부산 파이팅!” 몇몇 참석자들의 덕담성 건배사가 이어지고, 와인잔과 물잔 등이 부딪치는 요식행위는 계속됐다.



 이윽고 안 의원의 건배사 순서가 돌아왔다. 예의 나지막하고 단정한 소년 같은 목소리였다.



 “저는 이 자리에서 롯데 자이언츠 우승을 기원하는 건배사를 하겠습니다.”



 약간의 웅성거림이 나왔다. “뭐라카노?” “뭐? 롯데가 우승하라고….”



 “롯데 자이언츠 우승을 위하여-.” 안 의원의 표정에서도 어색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안 의원 건너편 테이블에 있던 일부는 난감해했다. 행사장 참석자와 분위기를 고려할 때 생뚱맞게 다가오는 건배사였다. 나는 안 의원이 위트와 유머스러운 축사를 고심하다 ‘야구의 도시, 부산’에 걸맞게 이 같은 건배사를 선택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치인, 특히 안철수 같은 사람들이 엄숙하거나 고상한 단어를 사용할 경우 오히려 행사장 분위기를 가라앉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성격상 ‘부산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등의 발언은 ‘허위(虛僞)적 수사(修辭)’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 의원의 ‘롯데 자이언츠 우승’ 건배사는 “왜 그가 정치적 세(勢)를 만들지 못하는가”라는 궁금증을 풀어주는 단초를 제공했다. 그는 여전히 자기만의 생각 속에 살고 있으며, 상대방을 이해하거나 배려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준 것이다. 그와 함께했던 많은 사람이 떠나간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부산시민들은 롯데 자이언츠에 대해 실망감을 넘어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당시 행사를 전후해 일부 시민들은 롯데 자이언츠 구단을 시민구단으로 만들겠다며 공청회를 열었다. 30년 이상 지속된 롯데그룹의 인색한 야구단 운영방식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돈을 거둬 구단을 인수하겠다는 의도였다. 이 같은 움직임은 대부분의 언론에 보도됐다. 롯데 구단이 CCTV를 통해 선수들의 동태를 몰래 감시해 온 것에 대해 인권위원회가 조사 중인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부산시민들과 자주 만나겠다”며 이날 행사에 나온 안 의원의 짤막한 건배사는 부산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내용이었다.



 사람들의 생각과 영혼은 말을 통해 상대방에게 전파된다. 그리고 그 말이 힘을 갖기 위해선 청중들과 함께 호흡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안 의원이 그날 행사장에서 과연 참석자들과 교감하고 연대하려는 진정성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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