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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이데올로기를 이기는 것은 돈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한 달 전에 서울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이색적인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주제는 ‘북한과 사업하기:기회와 도전’. 이색적인 이유는 도대체 누가, 어떻게 북한에서 사업을 하는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한국이 2010년 5·24 대북제재조치로 개성공단을 제외하고 북한과 사업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강한 궁금증이 많은 사람을 오게 한 것이다. 발표에 나선 외국 기업인들은 네덜란드·독일·미국·싱가포르 사람들이었다. 세계를 무대로 큰 사업을 하는 나라들의 기업답게 북한에 대한 자신감과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 기업인은 북한에 들어간 이유로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을 꼽았다. 세계인들이 북한 노동력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네덜란드 대북 투자 자문업체인 GPI 컨설턴시의 폴 치아 이사는 “중국에 생산기지를 둔 많은 국가가 중국 근로자 임금이 상승하면서 북한을 또 다른 아웃소싱 대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북한은 중국이 개혁·개방할 때 외국 기업의 투자 유치에 혈안이 됐고 중산층을 키우려고 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발표 현장을 지키던 정부 관계자 및 주한 외국인들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북한의 최근 변화를 간헐적으로 듣고 있었지만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열기가 무르익어 갈 즈음 궁금했던 발표가 나왔다. 북한이 2013년 3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결정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에 대한 평가였다. 싱가포르 조선교류사의 안드레이 아브라하미안 이사는 “북한이 핵과 경제를 병행하는 병진노선을 강조하는데, 핵보다는 경제 쪽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화교 리창장(李長江)은 “북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돈이 모든 가치의 기준으로 됐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5·24 대북제재조치 이후 외국인들의 눈에는 북한이 몰라보게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휴대전화가 240만 대(통일부 추정치) 정도 보급돼 북한에서 수요와 공급은, 계획경제가 아닌 시장이 해결해 주고 있다. 덩달아 돈이 돌고 신흥 부자(북한말로 돈주)도 생겼다. 이데올로기가 해결하지 못한 부분을 돈이 해결해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 3대 투자가 짐 로저스는 “한국이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에 너무 민감하게 대응하지 말고, 좀 더 여유 있는 자세로 경제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외국인의 눈에 보이는 것이 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을까?



 1968년 청와대 기습사건 4년 뒤인 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 83년 미얀마 아웅산 테러 2년 뒤 85년 최초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 68년과 83년은 한국의 국가원수가 테러의 대상이었다. 국민의 분노와 비탄은 하늘을 찔렀다. 북한에 보복 공습을 하자는 여론도 나왔다. 하지만 몇 년 뒤 우리는 더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정부가 자신감과 여유를 가지고 5년이 지난 5·24 대북제재조치의 해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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