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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기억해, 우리가 그들에게 반한 시간 ③ 임주리 기자가 심쿵했던 순간

설에는 가까운 사람들과 덕담을 나누며 서로의 복을 기원합니다. magazine M은 이번 설을 맞으며 독자 여러분께 어떤 인사를 전할까 고민했습니다. magazine M 기자들에게 가장 큰 자산은 매주 인터뷰로 국내외 영화계 주역들을 만나는 경험, 그 자체입니다. 그들이 들려주는 진실한 말 한마디가 한 해, 아니 평생 마음에 담아둘 기억으로 남기도 합니다. 바쁜 하루하루에 지치다가도 그 소중한 기억이 일깨우는 메시지에 다시 힘을 얻고는 하죠. 독자 여러분께 그 귀한 기억을 나눠 드립니다. 을미년 한 해, 이 기억들이 때때로 여러분께 힘을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김상만 감독 2015년 1월│95호] “한계가 곧 그 사람의 개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한계가 있음에도, 하느냐 마느냐라고 생각한다.”

인터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낯선 사람에게서 내밀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일, 상대의 입술이 빚어내는 단어 하나하나에 귀를 세우고 그 의중을 파악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겉으로야 속 편한 사람처럼 웃고 있어도 마음속은 늘 전쟁.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순간은 꽤 있지만, 인터뷰이의 말에 가슴이 뒤흔들린 적은 많지 않다. 그 흔치 않은 사람 중 한 명이 김상만(45) 감독이다. 목소리를 잃은 천재 성악가 배재철(유지태)의 재기를 그린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2014)를 내놓은 그에게, 실화라는 부담에도 이 영화를 해야만 했던 이유를 물었다. 그는 “비록 최고의 기량을 회복할 순 없었지만, 한계를 개성으로 만들어낸 주인공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며 이 말을 덧붙였다. 그때, 과장을 보태 말하자면 나는 울 뻔했다.

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노력하는 이에게 한계란 없다’는 말을 듣고 산다. 최선을 다하지만 잘 되지 않을 때도 있는데, 아니 그럴 때가 훨씬 많은데 세상은 언제나 ‘한계에는 한계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나의 절망과 나의 부족함, 나의 한계가 개성이 될 수 있다니. 그에게서 받은 위로는 영화만큼이나 따뜻했다. 아쉽게도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팔 할은 이 말 때문이다.


[고아성 2014년 2월│52호] “늘 거짓말을 한다. 잘 있다고, 잘 지낸다고. ‘나 별일 없이 살고 있어’라는 장기하와 얼굴들 노래처럼 말이다.”
 
여배우는 까다로운 존재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중요한 사람. 여배우 입장에서는 사진 촬영부터 인터뷰까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게다. 기자도 충분히 알기에 더 배려하려 노력한다. 그걸 알아주면 고맙지만 몰라줘도 어쩔 수 없다. ‘우아한 거짓말’(2014, 이한 감독)로 만난 고아성(23)은 그런 기자를 오히려 배려해준, 참 매력적인 배우였다. 예쁜 척하지 않는데도 또래 배우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아우라가 있었다.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며 쌓아온 내공 덕분일까. 성숙하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덜 떨어졌으면 덜 떨어졌지 성숙하지 않다”며 웃었다. 내친 김에 ‘고아성의 가장 우아한 거짓말’은 무어냐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왠지 모르게 고마웠다. 누가 봐도 멋진 그녀가 그런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에, 우습게도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똑같은 거짓말을 날마다 하고 있어서일까. 나는 잘 있다고, 나는 정말 아무 일 없이 잘 지낸다고.


 

[송강호 2013년 12월│44호] “섹시하다는 말? 지금도 굉장히 많이 듣고 있다(웃음).”

솔직히 말해 송강호(48)가 섹시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길. 아마 없을 거다. 그래, 송강호는 ‘섹시’란 말에 어울리는 배우가 아니다. ‘소탈하다’ ‘인간적이다’는 수식이면 몰라도 말이다. 그래서 ‘변호인’(2013, 양우석 감독) 주연을 맡은 그를 처음 봤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그가 생각보다 훨씬 훤칠하고 멋있었던 것이다. 인터뷰 중에도 그는 기자의 말을 경청하고,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기를 잊지 않았다. 그런 자세는 더 섹시했다.

내가 ‘소탈하다는 말보다 섹시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느냐’고 농을 쳤을 때 그가 한 답변이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크게 웃었다. ‘변호인’은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가 됐다. 섹시한 송강호 덕분이다. 그런 생각을 혼자만 해본다.


임주리 기자, 사진=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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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