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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소방관 방화복마저 엉터리인 나라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상언
사회부문 기자
“군인들이 자신의 소총과 방탄복의 성능을 못 믿으면 전장에서 몸을 사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소방관이 방화복을 못 믿으면 불 가까이로 접근하려 하겠습니까. 멀찍이서 물만 쏘면 그 피해는 국민이 보는 것 아닙니까.”

 10여 년 전 화재 현장에서 인연을 맺은 소방관 이모(47·소방경)씨가 16일 아침 격앙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성능 검사를 받지 않은 특수 방화복 5300여 벌이 전국 소방서에 보급됐고, 정부가 관련 업체에서 납품받은 1만9300여 벌을 전량 사용 중지시켰다는 기사를 보고 화가 잔뜩 난 상태였다. 그는 “방화복은 소방관의 생명만 지키는 게 아니라 결국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옷”이라고 거듭 말했다.

 방화복은 시·도 소방본부가 조달청을 통해 구입한다. 업체는 납품 전 일일이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최근 2년간 두 업체가 5300여 벌을 검사 없이 넘겼다. 인증을 받은 것처럼 합격 도장까지 찍었다. 이 같은 사실은 ‘조달청 계약 방화복 수량’과 ‘KFI 검사 통과 수량’의 대조로 밝혀졌다. 검사 통과 개수보다 납품 개수가 5300여 개 많았던 것이다. 인증 검사에는 개당 3만540원이 든다. 조달청은 업체들이 이 비용에 욕심을 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달청의 적발은 제보에서 비롯됐다. 경쟁 업체인지 내부 관계자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제보가 없었다면 ‘인증 위조’ 방화복은 계속 납품됐을지 모른다. 조달된 장비가 정품인지를 확인하는 시스템이 정부에 갖춰져 있지 않다는 얘기다.

 이 소방경에 따르면 최근 지급된 방화복을 입지 못하면 일부 소방관은 비번인 동료의 방화복을 입고 출동해야 한다. 그들은 옷을 빌려 입을 때마다 탐욕스러운 업자와 무능한 관리들을 욕할 것이다. 문제의 업체들은 “제품에는 하자가 없다. 납품 기일에 맞추려다 보니 검사를 건너뛰게 됐다”고 우기는 모양이다. 실제로 성능에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소방관들의 믿음에는 금이 갔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이 불 속으로 몸을 던지기 전에 입고 있는 방화복을 쳐다보며 멈칫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선 한 해 평균 7명의 소방관이 순직한다. 인구 대비 소방관 순직률이 일본의 2.6배다. 장비 부실도 여기에 한몫한다. 위험의 최일선에서 목숨 걸고 일하는 그들에게 방화복 하나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이 나라가 부끄럽다.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방화복 관련 업체뿐 아니라 KFI와 시·도 소방본부 장비 조달 관계자도 수사해 내부자 가담 여부까지 밝혀주기 바란다. 국민의 생명을 대가로 욕심을 채운 이들을 반드시 색출해내야 한다.

이상언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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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