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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 알리며 "30분 내 등록금 내세요" … 보이스피싱 오해도





[다큐리포트24] 성균관대 입학처 긴장의 하루
"불합격 땐 약 먹고 죽겠다" 으름장
종료 직전 난데없는 등록포기 전화
남은 예비합격자 찾아 전화 걸어
모든 통보 끝난 뒤 걸려온 한 통
예비 3번 엄마 "결국 안 된 거죠?"











따르르르릉-. 11일 오전 8시50분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입학처. 전화벨 소리가 순식간에 132㎡ 규모의 사무실을 뒤덮는다. 전화기 서른 대가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막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한영준 입학사정관이 전화기 쪽으로 뛰어간다.



 “네. 성균관대 입학처입니다.”



 수화기 너머 흘러나오는 남학생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 “저…. XX계열 예비 3번인데요…. 아직 안 빠졌나요? 추가합격자 발표를 몇 시부터 하나요.”



 전화를 끊은 한 사정관이 말한다.



 “며칠 전부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화를 걸어오는 친군데…. 마지막 날이라 얼마나 속이 타들어 갈까요. 추가합격자 발표 마지막 날은 말 그대로 ‘정글’이에요. 등록 포기자와 추가합격자가 서로 먹고 먹히는.”



 한 사정관의 말처럼 지난 4일부터 이곳 성균관대 입학처는 마치 정글 같은 모습이다. 등록 포기자와 추가합격자가 먹이사슬처럼 얽히고설켰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육군사관학교 등 일부 특수대학을 제외한 전국의 모든 4년제 대학이 같은 기간(4~11일)에 정시모집 추가합격자 발표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울대에서 추가합격자 발표를 하면 연·고대에서 등록을 포기하는 학생이 생긴다. 빠져나간 정원을 채우기 위해 연·고대가 추가합격자를 뽑으면 성균관대·서강대 등에서 등록 포기가 이어지는 식이다. 박종국 입학처 팀장이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말한다. “추가합격자 발표 기간이 되면 대학 간 서열이 극명하게 드러나요.”



 이날은 추가합격자를 발표하는 마지막 날이다. 이른 아침부터 ‘대학 합격’이라는 좁은 문을 향하는 학부모와 수험생의 간절함이 입학처를 두드린다. 박 팀장의 말이다.



 “며칠 전에는 자기 아이가 성균관대만 지원했다면서 합격이 안 되면 ‘약 먹고 죽겠다’는 어머니 전화가 오기도 했어요.”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20명의 입학사정관을 포함해 입학처 직원 27명과 조교 4명이 출근을 마쳤다. 마지막 날인 만큼 사무실 분위기는 긴장감으로 팽팽하다. 이날 전화로 추가 합격 사실을 통보받은 수험생은 20분 이내에 등록 의사를 밝혀야 한다. 어쩌면 인생을 좌지우지할지 모를 결정을 20분 만에 끝내야 한다는 얘기다. “한번 추가 합격 등록을 포기하면 마음이 바뀌어도 되돌릴 수 없어요. 방금 ‘추가 합격 등록 포기를 취소하고 싶다’는 전화가 왔는데 안타까워도 어떻게 저희가 할 도리가 없죠.”



 입학처 조교인 이형규씨가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씨 같은 조교가 입학처에는 모두 9명이 있다. 옆에 있던 조교 김건희씨가 말을 거든다.



 “추가합격자 발표기간에는 1인당 하루 평균 150통씩 전화를 받는 것 같아요. ‘언제 발표하느냐’ ‘예비합격이 몇 번까지 가능하냐’ 등 질문이 쏟아지죠. 하루 종일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예요.”



 오후 1시. 권제훈 사정관이 오전에 재무팀과 입학처에서 정리한 추가 합격 대상자의 이름·계열 등이 적힌 종이와 전화 통화 매뉴얼을 들고 회의실에 들어온다.



 “마지막 날이니까 학생 개인의 이름으로 된 가상 계좌가 아닌 학교 대표 계좌로 30분 안에 등록금을 입금하라고 해야 합니다. 매년 보이스피싱 오해도 사는데요. 입학처 홈페이지에 관련 내용이 있다고 설명하고 만약 전화를 끊으면 다음 학생에게 기회가 넘어간다는 점을 꼭 얘기해주세요. 등록을 고민하는 분들께는 20분을 드리세요.”



 “오후 8시50분에 취소 가능하냐고 묻는 학생에겐 뭐라고 하죠?”



 “가능하지만 차순위 학생을 생각해서 가급적 빨리 결정해 달라고 얘기하세요.”



 “명륜3가 파출소에 보이스피싱이 아니라고 미리 얘기해 놓을까요?” 누군가의 질문에 회의실에 모인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실제로 보이스피싱 오해는 매년 일어난다. 지난해엔 추가 합격 통보를 받은 학생이 보이스피싱으로 신고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날 오후에도 ‘보이스피싱이 아니냐’며 의심하는 학생의 확인 전화가 수차례 걸려왔다.



 “전화 시작하겠습니다!” 오후 1시30분. 권 팀장의 구호에 본격적인 추가합격자 발표가 시작된다. 순식간에 입학처는 텔레마케팅 회사처럼 변했다. 맹민호 팀장은 목이 타는 듯 아예 책상 한쪽에 1.5L 생수병을 놓고 전화를 돌린다. 추가 합격 대상자가 전화를 안 받으면 부모에게 전화를 걸거나 자택으로 건다.



 “박OO 학생이세요? 성균관대 입학처입니다. 가군 공학계열에 합격하셨습니다.”



 “네? 저…저…저 합격한 겁니까? 저 합격한 겁니까? 진짜요? 엄마! 나 합격했대!” 막차에 올라탄 학생들은 환호한다. 소리를 지르고 울음을 터뜨린다.



 입학처 직원들은 오후 내내 전화를 돌리느라 지쳐간다. 누군가 블라인드를 슬쩍 올려보더니 말한다. “벌써 해가 졌네요. ”



 주문한 도시락으로 저녁을 해결하면서도 전화는 계속된다. 오후 8시가 넘어가면서 입학처가 더욱 긴박하게 돌아간다. 마지막까지 등록 여부를 고민하다 등록 포기를 하겠다는 전화가 속속 걸려오기 때문이다. 각 학교 입학처 간 정보 공유도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오후 8시50분. 마감을 10분 남기고 한 학생이 등록 포기 전화를 걸어왔다. 정준구 사정관이 곧장 차순위 예비합격자에게 추가 합격을 통보한다.



 “이OO 학생이죠? 한 명이 등록을 포기해서 추가 합격하셨는데 등록하실 건가요?” 이 학생이 등록 의사를 밝히자 박종국 팀장이 서울의 한 사립대 입학처 팀장에게 전화를 건다.



 “원래 거기 등록했던 학생인데 우리가 빼 간다. 빨리 추가합격자 뽑아.”



 모든 통보가 마무리된 순간 오전에 전화를 걸었던 예비 3번 학생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아이 결국 안 됐죠? ”



 마감 후 정리를 마치자 오후 10시를 훌쩍 넘겼다. 직원들이 불을 끄고 사무실을 나선다. 텅 빈 사무실에서 전화벨이 울렸지만 누구도 되돌아가지 않았다.



채승기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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