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물줄기가 둘러싼 땅…돈 쓸 일이 없어요





[커버스토리] 옥천 대청댐 언저리 막지리·오대리























옥천 대청댐 언저리 막지리·오대리 충북 옥천군 오대리와 막지리. 금강 물줄기가 대청호에 물을 풀기 직전 산비탈에 두 마을이 차례로 얹혀 있다. 막지리가 오대리보다 하류에 있어 마을을 가로막은 강이 더 깊다. 겨울에 오대리 사람들은 꽝꽝 언 강을 걸어서 건너지만, 막지리에선 얼음을 깨며 배를 띄우는 이유다. 수심이 깊을수록 강이 더디 언다.



두 마을 모두 1980년 대청호가 건설되면서 형성됐다. 하여 오대리·막지리 사람들의 고향은 지금 마을과 바투 맞닿은 강 아래에 잠겨 있다. 두 마을 모두 산골짜기에 틀어박힌 두메산골의 행색이지만, 산보다는 강이 마을의 일상을 좌우해 강변마을이 더 어울린다.설 명절을 앞두고 두 마을의 겨울 이야기를 전한다.





막지리 이야기



막지리는 명절이 되면 마을이 비었다. 명절을 맞아 외지로 떠난 자식이 고향 집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고향에 남은 부모가 외지의 자식을 만나러 길을 나섰기 때문이다. 눈 내리고 얼음 어는 설에 특히 심했다. 막지리 15가구 중에서 명절을 집에서 쇠는 집은 두 집이 전부였다. 그 중 한 집이 장영자(72) 할머니네 집이다.



“마을로 넘어오는 고갯길에 눈이 쌓이면 도리가 없었어. 그 먼길을 돌아가든지, 언 강을 걸어서 건너든지. 명절이 돼도 자식들한테 오지 말라고 했어. 위험하니까. 그래도 꾸역꾸역 찾아오더라고.”



막지리 뒷산에 난 가파르고 위태로운 산길은 눈이 내리면 이내 폐쇄됐다. 군청에서 길을 터주기도 하고, 마을이 나서 눈을 치우기도 했지만 요령부득이었다. 남은 수단은 강을 건너는 것뿐이었다. 지금은 나룻배를 띄워 얼음을 깨고 길을 내지만, 이마저도 힘들 때는 강 양쪽에 줄을 걸었다. 주민들은 줄을 잡고 얼음 위를 살금살금 기다시피 하며 강을 건넜다.



막지리가 처음부터 오지는 아니었다. 1980년 대청댐이 생기면서 마을이 수몰됐다. 그 바람에 120여 가구 주민 700여 명도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처럼 민주사회가 아니었잖아. 사람이 살고 있는데도 굴삭기가 들어와서 막 때려 부쉈어. 다들 쫓겨나다시피 고향을 떠났지.”



막지리 마을회관에 걸린 수몰 전 막지리 모습. 100여 가구의 꽤 큰 마을임을 알 수 있다.
막지리에서 태어나 한번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는 최동근(82) 할아버지의 기억이다. 최씨 할아버지처럼 고향을 떠나지 못한 40가구 주민 100여 명이 마을 뒷산에 터를 잡았다. 지금의 막지리다. 이마저도 12가구 15명만 남았다. 예전에는 제법 큰 전답도 있었지만, 지금은 텃밭 수준이다. 소출이 작아 읍내에 내다 팔 것도 없다. 마을에서 심은 옥수수·고추·깨 대부분이 마을에서 소비된다. 마땅한 소일거리도 없다. 마을회관에 모여 TV를 보거나 화투짝 만지는 일이 고작이다.



옛 고향에는 그래도 흥이 있었다. 강을 따라 모래밭이 길게 펼쳐졌고, 모래밭 위로 긴 솔숲도 이어졌다. 막지리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이면 종종 강변에서 농악도 하고 씨름도 했던 옛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그 흥이 대단했었나 보다. 사물놀이 명인 김덕수(62)씨와 원로 씨름인 최창식(75)씨가 막지리 출신이다. 그러나 어르신들의 고향 무용담은 늘 울화통과 함께 끝을 맺는다.



“충청권 주민의 식수 공급을 위한다고 대청댐을 만들었잖아. 그런데 우리 마을은 여전히 계곡물을 받아서 먹어. 날이 가물면 그것도 없어.”



마을회관에서 만난 토박이 손용화(66)·강천호(68) 할아버지가 목청을 높였다. 열을 내는 두 할아버지 옆에서 손호연(66) 할아버지가 회관 벽에 걸린 액자를 가리켰다. 손씨 할아버지는 45년쯤 전 고등학교 졸업한 뒤 고향을 떠났다가 1년 전에 귀향했다.



“저 한자 뜻이 뭔지 아나? 난 저 글귀만 보면 자꾸 눈물이 나. 고향 잃고 오지 속에 갇힌 우리 심정이 딱 저래.”



액자에는 ‘환향회구(還鄕懷舊)’라 쓰여 있었다.‘고향에 돌아가서 옛날을 추억하고 싶다’는 뜻이다. 막지리에 남아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35년 전 잃어버린 고향을 아직도 그리워하고 있었다. 마을에 공기부양정이 들어오고서 처음 맞는 명절이 더 기다려지는 까닭이다.





오대리 이야기



week&은 오대리에 두 번 들어갔다. 지난달 중순에 처음 들어가 마을을 둘러봤고, 지난달 하순에 다시 들어가 막지리를 오가며 나흘을 머물렀다. 오대리를 취재하겠다고 작정한 계기가 있었다. 사전답사를 겸한 첫 취 재를 끝내고 나가려는데, 오대리 토박이 조제만(73) 할아버지가 한 말들이 플라스틱 술통을 던져주며 외쳤다.



“또 오려면 이 통에 막걸리 가득 채워서 와. 빈손으로 오면 쫓아낼 테니까. 우린 신문에 나는 거 하나도 안 반가워.”



조씨 할아버지의 퉁명스러운 말투에서 오대리의 팍팍한 일상이 묻어났다. 오지리는 어르신이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싶어도 강을 건너야 하는 마을이었다.



week&이 오대리에 두 번째 들어간 날 마을회관에서 막걸리와 삼겹살 잔치가 벌어졌다.



“수몰 전에 면 체육대회를 하면 우리 마을이 곧잘 1등을 했어.”



“100가구 가까이 됐으니까. 댐이 들어서고 사람이 다 떠났어. 남은 사람은 하나 둘 땅에 묻혔고.”



“잔치를 하면 마을이 들썩거렸고, 초상이 나도 마을이 들썩거렸지.”



어르신들이 고향 기억을 떠올릴수록 분위기는 식어갔다. 막지리에서처럼 오대리에서도 고향 잃은 설움이 가득했다. 언론을 믿지 않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조씨 할아버지가 한숨을 내쉬더니 속내를 털어놨다.



“대청댐이 생기면 우리 마을도 발전하는 줄 알았어. 호반의 도시로 만들어 준다고 했는데 우리가 속은 거지. 선거 날이 되면 TV에서 ‘오지리 주민도 물을 건너와 투표권을 행사했습니다’라는 뉴스가 나왔고, 명절에는 ‘오지리에도 명절이 찾아왔습니다. 자식들이 부모를 만나러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라는 뉴스가 나왔어. 지금 보니까 정부고 신문이고 마을만 들쑤셔 놨더라고.”



오대리는 생기를 잃은 지 오래된 모습이었다. 마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언덕 위 무덤이었다. 마을 안에 들어와서도 사람이 사는 집보다 빈 집이 더 많았다. 오대리 8가구 중에서 윤정희(57) 이장네를 뺀 7가구가 명절을 쇠러 마을을 비운다.



“이 험한 데까지 어떻게 애들을 불러. 내가 나가야지.” 조씨 할아버지가 먼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대리는 막지리보다 열악하다. 아예 길이 없다. 오로지 강을 건너야 한다. 겨울이면 마을 어귀에 어른 머리 크기의 돌이 강가에 모인다. 읍내에 나갈 일이 있으면 그 돌을 던져 얼음의 두께를 살핀다. 건널 만하다 싶으면 강 양쪽에 연결한 밧줄을 잡고 위험천만한 도강을 결행한다. 35년째 이어진, 그러니까 지난달 12일 공기부양정이 들어오기 전까지 날마다 되풀이되던 오대리의 겨울 풍경이다.



오대리의 하루는 단순하다. 텃밭을 일구고, 뒷산에서 나무를 해온다. 장작을 패고 군불을 넣는다. 오대리에선 아직 보일러가 없는 집이 3곳이나 된다. 5년 전 외지에서 들어온 박재희(68)씨의 하루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선 나름 잘나가는 금융인이었어요. 평생 숫자와 돈에 매달려 살던 인생이 어느 날 갑자기 허무하더라고. 아내도 서울에 남겨두고 혼자 왔어요. 보일러도 없고 냉장고도 없지만 여기서 사는 게 나는 편해요. 여기에선 주머니의 돈이 곰팡이가 슬어도 몰라. 돈 쓸 일이 없거든.”





●여행정보=충북 옥천군 막지리와 오대리는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두 마을 모두 강 건너편에서 마을에 전화를 넣어 공기부양정을 불러야 한다. 겨울이 지나면 공기부양정 대신 배가 뜬다. 그러나 체험용으로 운용할 계획도 있어 마을마다 확인하는 게 좋다.



내비게이션에 막지리를 찍으면 강 건너편 소정리 선착장을 안내한다. 선착장에서 공기부양정을 탄다. 주민은 공짜이지만, 외지인은 요금을 내야 한다. 편도 3000원, 왕복 5000원.



자동차로 갈 수도 있다. 내비게이션에 정확히 ‘답양 막지길 404’를 쳐야 한다. 경부고속도로 옥천 IC를 나와 37번 국도를 타고 보은 방향으로 가다가 현리 삼거리(575번 지방도)~도울 삼거리(502번 지방도)~답양 막지길을 거치면 마을 뒷산과 이어진 임도가 나온다. 옥천 IC에서 마을까지 20㎞ 거리인데, 길이 험해 1시간쯤 걸린다. 마을 직전 1.6㎞ 길이의 임도는 폭이 좁고 경사가 급해 위험하다.



오대리는 막지리와 달리 마을까지 이어진 길이 없다. 강 건너 안터마을에 설치된 임시 선착장(옥천읍 석탄리)에서 공기부양정을 타야 한다. 왕복 5000원. 안터마을은 옥천 IC에서 5㎞ 거리밖에 안 된다. 그래도 자동차로 20분을 가야 한다. 겨울이면 오대리 앞으로는 빙어 낚시꾼이 많이 몰린다. 하지만 사고가 잦으니 얼음위에 오를 때는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막지리나 오대리 모두 민박집·음식점이 없다. 이장 허락을 받으면 마을회관에서 묵을 수 있다. 이때도 식사는 각자 해결해야 한다. 막지리 마을회관 043-733-1466, 오대리 윤정희 이장 010-3670-3498.



글=이석희·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