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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저격수에 열광하는 까닭은

미국에서 열풍이 불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바람이다. 입장 수입이 북미지역에서만 2억8000만 달러(약 3080억원)를 넘어섰다. 글로벌 차원에선 3억6000만 달러에 이른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북미지역 입장 수입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3억8000만달러)’와 ‘진주만(2억9000만달러)’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제작비는 많지 않았다. 배우 겸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으로 나서 5880만 달러를 들여 만들었다. 6배 이익을 남긴 셈이다.



미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실 저격수(스나이퍼)인 고(故) 크리스 카일(1974~2013년)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했다. 미군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저격수’로 꼽힌 인물이다. 그의 저격 기록은 확인된 것만 160킬(Kill)이다. 160명을 사살했다는 뜻이다. 비공인 기록은 255킬에 이른다.

영화의 시작은 최근 할리우드 전쟁영화 공식대로다. 일단의 미군이 이라크의 한 도시를 수색한다. 먼저 진입한 카일(브래들리 쿠퍼)과 동료가 건물 옥상에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의 임무는 본대를 위협하는 적을 미리 포착해 저격하는 일이다.



미군 주력전차인 M1 에이브럼스 탱크의 굉음이 울려 퍼지는 사이 카일의 저격용 소총 조준경에 이라크 모자(母子)의 모습이 들어온다. 어머니는 집을 나선 직후 품 속에서 수류탄을 꺼내 아들에게 건넨다. 아들은 미군을 향해 뛴다. 카일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다. 순간 장면은 과거로 이동한다. 1998년 케냐 미 대사관 폭탄테러가 발생하자 서른 나이의 카일은 네이비실에 자원한다. 2001년 9.11테러 직후엔 이라크에 파견된다.



다시 장면은 현대로 돌아온다. 카일의 저격용 총이 불을 품는다. 총알은 어린 아이 가슴을 관통한다. 어머니가 아들의 손에서 굴러 떨어진 수류탄을 들고 미군을 향해 뛰어나간다. 카일의 총이 다시 불을 품는다. 이번 총알도 어머니의 가슴을 꿰뚫는다. 수류탄이 터지지만 미군은 생명을 건진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영화 속 선과 악은 분명하다”며 “9ㆍ11테러 등의 맥락 속에서 카일의 모자 사살은 완벽하게 정당화돼 있다”고 평했다. 카일이 저격 대상을 향해 거친 욕설을 퍼붓는 것도 거슬리지 않는다. 미국 진보진영이 “있지도 않은 이라크의 대량 살상무기를 근거로 시작된 이라크 침공 작전을 미화하는 영화”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미국 대중은 열광했다. 영화 입장 수입 가운데 70% 이상이 북미지역에서 거둬들인 것이다. 무엇보다 영화는 미국인들의 통념을 거스르는 이야기로 성공을 거뒀다. 미국인들에게 ‘저격수’는 ‘겁쟁이’로 비친다. 비겁하게 등 뒤에서 총질하는 존재다. 그들은 1980년대 영웅인 람보처럼 적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캐릭터를 선호하다. 할리우드 전쟁 영화에서 저격수가 대부분 영화 속 양념에 지나지 않은 이유다. 영국 가디언지는 “예외적으로 2차대전 당시 소련 저격수의 이야기인 ‘에너미 앳 더 게이트(2001)’가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감독인 장 자크 아노가 프랑스 출신이었고, 흥행 성적도 그 해 50위 수준에 그쳤다”고 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왜 성공했을까. 작품성이 뛰어 나서 그럴 수 있다.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영화의 대중적 흥행은 시대 흐름과 맥을 같이할 때가 많다.



영국 대중지인 데일리메일은 최근 전문가의 말을 빌려 “아메리칸 스나이퍼 흥행 이면엔 미국인들이 느끼는 심리적 교착상태(Deadlock)가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2001년 이후 14년째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지만 테러는 근절되지 않았다. 한 술 더 떠 최악의 테러 조직인 이슬람국가(IS)가 등장했다. 미국인들은 9ㆍ11테러보다 더 처참할 수 있는 참수와 화형 장면을 인터넷을 통해 보게 됐다.



군사평론가인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은 “미국인들이 테러의 수렁에 빠져들면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방에 테러리스트를 없애는 저격수는 영웅으로 그려졌다. 저격수 신드롬이 퍼진 까닭이다.



비슷한 맥락은 역사 속에서도 발견된다. 옛 소련-핀란드의 겨울전쟁(1939년)과 옛 고련-독일의 스탈린그라드 전투(1942년 8월~43년 2월) 시기다. 영국 전쟁 역사가인 안토니 베버는 『스탈린그라드』란 책에서 “겨울전쟁 동안 저격수 시모 하이하가 영웅으로 떠올랐듯이 스탈린그라드에선 바실리 자이체프가 영웅으로 만들어졌다”며 “두 사람 모두 통상적인 전쟁 수단으로 어찌해볼 수 없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지칠 대로 지친 대중에게 희망을 주고 영웅이 됐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저격 기록은 미국 영웅 카일을 훨씬 능가한다. 하이하는 확인된 것만 소련군 542명을 사살했다. 자이체프는 독일군 225명을 죽음으로 인도했다.



하지만 스나이퍼가 전투의 결과를 좌우할 정도의 존재는 아니다. 김종대 편집장은 “군 편제나 작전 교리 등에 비춰 저격수는 전쟁이나 전투의 판세를 좌우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전쟁 역사가인 조프리 로버츠도 『스탈린의 장군: 게오르기 주코프』에서 “스탈린그라드 전투 등은 (저격 작전이 아니라) 치열한 전면전 끝에 끝났다”고 적었다. 실제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소련군이 수십만 병력과 막강한 화력을 투입한 뒤에야 종결됐다. 인류 역사상 최고 저격수가 활약한 겨울전쟁도 핀란드가 영토 10% 정도를 소련에 떼주고야 종결됐다.



어찌 됐든 미국인들이 스나이퍼에 열광하는 건 요즘 미국인들의 자신감이 80년대만 못하다는 방증이다. 80년대 영웅인 람보는 적진으로 뛰어 들어 인질이나 포로로 잡힌 미국인을 구해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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