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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본 노병 "희생한 보람 있었다" 눈시울 붉혀

[사진 중앙포토]
11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의 리걸 극장. 스크린 앞 단상에 오른 스티븐 옴스테드(85) 예비역 장군의 눈은 촉촉히 젖어 있었다. 한국전쟁 때 흥남 철수작전이 담긴 영화 ‘국제시장’의 상영이 끝난 직후였다. 그는 “흔히들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하지만 그게 아니라 ‘잊혀진 승리’”라며 “지금의 자랑스러운 한국은 당시 군인들의 희생과 한국 국민들의 노력을 통해 가능했고 그러기에 희생한 보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단상을 내려온 그는 “흥남 철수 장면에서 아이와 아버지가 헤어지는데 이게 어디 영화 속 주인공 가족 만의 얘기이겠는가. 그렇다. 나도 울었다”고 밝혔다. 한국전쟁 때 이병으로 참전해 장진호 전투를 치른 뒤 중장까지 승진했던 전직 해병대 장군은 “울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답을 피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참전 한·미 노병들은 이날 함께 울었다. 북한동포사랑 한인교회연대(KCNK), 북한인권단체인 북한자유(LiNK), 워싱턴 중앙일보가 공동 주최하고 민주평통 워싱턴협의회(회장 황원균)가 후원한 ‘국제시장’ 특별 상영회 자리였다. 이날 상영회에는 한·미 노병 50여 명과 한국 파견을 앞둔 미 국무부 등 직원 10여 명, 주미 대사관 무관부 직원, 현지 교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해 객석을 모두 채웠다.

영화 상영 내내 기자의 옆 자리에선 조용한 흐느낌이 들렸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진 뒤 고개를 돌려 보니 팔순의 할아버지였다. 참전용사 김윤태(84)씨는 “지금 말이 잘 안 나오네. 옛날 생각이 떠올라서……”라며 “내가 6·25때 참전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 만이 아니었다. 어두운 객석에선 흥남 철수 장면에서 훌쩍임이 시작됐다.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는 대목에선 객석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진 객석 곳곳에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한ㆍ미 관객들이 보였다. 참전용사인 나스 컬리버(85)는 몸이 불편한 듯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너무나 감동적이다. 미군 참전용사들 모두가 봐야 한다”며 “우리가 도왔던 한국이 아픔을 이기고 이렇게 발전하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 영화관을 힘들게 걸어나가던 노병 김윤한(87)씨는 “영화가 우리 얘기인데 울지 않을 수가 있겠나”라고 했다.

상영회장엔 흥남 철수를 지휘한 당시 10군단장이던 에드워드 아몬드 소장(1979년 작고)의 외손자 토머스 퍼거슨(72) 예비역 대령도 참석했다. 그는 부친이 2차대전 때인 1944년 전사하며 어머니와 함께 일본 도쿄에 있던 외할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퍼거슨 예비역 대령과 그의 새 아버지, 외할아버지 아몬드 장군은 모두 한국에서 복무한 인연이 있다. 퍼거슨 예비역 대령은 “외할아버지는 내게 ‘피란민들은 공산주의가 싫어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이다. 흥남 철수 작전을 계획할 시간도, 안전성을 검토할 시간도 없었다. 나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외할아버지가 흥남 철수에 대해 생전 어떻게 말했나.
“그때 많이 괴로웠다고 했다. 철수작전의 최우선 목표는 물자와 군인을 최대한 많이 태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피란민을 모른 척 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는 더글라스 맥아더 사령관의 승인도 받지 않고 즉석에서 배 안의 무기를 버리고 피란민을 태운다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나중엔 문책이 아니라 피란민 승선에 대해 칭찬을 들었다고 했다.”

-피란민들에 대해선 뭐라 말했나.
“그때 인력이 크게 부족했다고 한다. 그래서 피란민들의 도움을 얻자는 생각을 했고 피란민들이 2인 1조로 해서 50갤런(3.79L) 드럼통을 굴려 배에 실었다고 했다. 피란민들이 없었다면 이 물자들은 불에 태워야 했거나 적들에게 뺏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몬드 장군은 어떤 분이었나.
“1979년 외할아버지 장례식 때 내가 읽었던 조사(弔辭)처럼 ‘그는 애국자였고 군인이었고, 지도자이자 아버지, 그리고 나의 외할아버지였다’ 였다. 외할아버지는 셰익스피어의 ‘겁쟁이는 천 번을 죽지만, 사나이는 한 번만 죽는다’란 말을 가장 좋아했고 평생 그렇게 살았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워싱턴 지사=박성균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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