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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살린 ‘손빨래 이불’

안동서 이불집을 하는 최순녀 씨는 바느질 한 땀에도 정성을 다한다. 그는 “기업가 정신은 손님이 원하는 진짜배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프리랜서 공정식]
“우리가 찾은 길은 다시, 기업가 정신입니다.”

 연초 삼성그룹의 특별 사내방송 4부작의 마지막 장면이다. 지난해는 삼성과 한국 경제에 시련의 해였다. 미국(애플)·중국(샤오미)에 낀 채 부대꼈다. 위기의 삼성이 25만여 직원 앞에서 내놓은 해법은 ‘다시, 기업가 정신’이었다. 기껏 기업가 정신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본지는 지난 6~7일 고등학생(17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자의 절반(49.2%)은 “기업가 정신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10대의 61.6%, 20대의 58.2%가 “기업가 정신이 뭐냐”고 되물었다. 말로는 강조했지만 알려 주지도, 북돋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제대로 기업가 정신을 배웠다는 응답자는 불과 4.6%였다. 응답자 스스로 진단한 기업가 정신 점수는 51.7점, 낙제였다. 중국이 끓어오르는 기업가 정신으로 벤처투자액(지난해 155억 달러)이 3년 새 두 배로 늘어난 것과 대비된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한국의 기업가 정신을 계량화해 보면 열망은 높아졌지만 실질적 능력은 여전히 낮다”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할 사회·경제적 역량이 낮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린 스타트업』의 저자인 에릭 리스는 삼성에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며 “기업 내부의 기업가 정신을 찾아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길은 있다. 본지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기업가 정신을 창업·경영자 등 소수의 일이 아니라 누구나 발휘할 수 있는 것(58.6%)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경북 안동에선 필부필부(匹夫匹婦)의 기업가 정신이 새바람을 일으켰다.

 씨는 대기업이 뿌렸다. SK행복나눔재단은 지난해 7월 고택 리조트 ‘구름에’를 열었다. 하룻밤에 35만원의 방 값에도 예약률이 70%가 넘는다. 내로라하는 리조트의 평균 예약률은 30% 수준이다. 고택의 희소성이 사람을 한 번은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오게 한 건 잠자리의 힘이 컸다. 아침마다 숙박객들은 “너무 잘 잤다. 이불을 살 수 없느냐”고 직원을 졸랐다. 결국 이불을 따로 팔기로 했다.

 화제의 이불은 안동 옥야동 시장에서 35년간 이불집 ‘행복수예’를 하는 최순녀(61·여)씨의 기업가 정신에서 나왔다. 최씨는 200채의 이불을 주문받고 손빨래부터 했다. 밤새 빨고 또 빨아 새 이불 천을 마치 헌 이불처럼 부들부들하게 만들었다.

윤기 나는 새 이불을 공급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계속 써 온 듯한 편안한 이불을 만든 것이다. 최씨는 “손님의 마음결을 읽으려 했다”고 말했다. 평범한 시장 상인은 거창한 ‘고객 중심 경영’을 이렇게 풀어내고 있었다. 최씨는 “진짜배기를 내놔야 손님이 돈을 써도 행복할 수 있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떡집을 하는 안정희(50)씨는 수없이 퇴짜를 맞은 끝에 구름에의 아침 별미로 유명해진 ‘구름떡’을 만들었다. 골동품점을 하는 임동걸씨는 고택 곳곳을 수리하며 전문 건축가가 놓친 2%를 채웠다.

 필부필부의 기업가 정신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가고 있다. 안동은 고령화로 활력이 줄고, 관광객도 정체했다. 그런데 구름에가 문을 연 뒤 최근 6개월간 관광객이 5000여 명 늘어났다. 상인들과 함께 작은 성공을 경험한 안동시는 구름에 옆 터를 개발하기로 했다. 100억원을 들여 건물을 만들 테니 구름에에서 운영해 달라는 부탁이다. 김선경 SK행복나눔재단 이사는 “안동 상인의 도전과 발상 전환이 만들어 낸 결과”라며 “우리도 이불과 떡이 리조트를 살릴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60대 이불집 주인, 50대 떡집 주인이 만들어가는 새 미래는 이제 시작이다.

특별취재팀 뉴욕·런던=이상렬·고정애 특파원, 김영훈·함종선·손해용·김현예·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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