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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개정 좌절 … 정치 인생서 가장 아쉽다

새정치민주연합 이부영 상임고문이 11일 국회에서 정계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14·15·16대 국회의원과 열린우리당 의장 등을 지낸 새정치민주연합 이부영(73) 전 의원이 11일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이 전 의원은 문재인 대표에게 탈당계를 제출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인 이부영이 그 멍에를 내려놓고 떠난다”며 “좀 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으면 했지만 능력과 식견이 모자라 여기서 그쳐야 하겠다”고 말했다. 지역위원장(서울 강동갑)직도 함께 반납한 그는 “향후엔 한일협정 재협상이나 일본 평화헌법 9조 노벨평화상 추천과 같은 동아시아 평화문제, 보다 넓은 의미의 남북문제 등 시민운동 쪽에서 힘을 보태며 살겠다”고 했다.

 정계은퇴를 하려는 이유에 대해선 “보수와 진보가 모두 참여하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데, ‘또 국회의원이 되려는 것이냐’,‘왜 당적을 보유하느냐’는 얘기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며 “차기 총선 불출마는 2012년 낙선 때 이미 결심했다. 노욕(老慾)이나 노추(老醜)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물러나는 게 행운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그는 1975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뒤 재야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91년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정치권에 입문, 92년 14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 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 합류를 거부, 민주당에 잔류했다. 97년 신한국당(새누리당의 전신)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출범한 한나라당에 합류했다. 2003년 김부겸 전 의원 등 4명과 한나라당을 탈당해 ‘독수리 5형제’로도 불렸으며, 이후 열린우리당 창당 때 합류해 당 의장까지 지냈다.

  이 전 의원은 24년간의 정치역정 중 가장 아쉬웠던 순간을 “2004년 열린우리당 의장 때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독소조항을 없애는 방향으로 국가보안법 개정에 합의했으나 ‘개정이 아니라 폐지해야 한다’는 당 내 반발로 좌절됐을 때”라고 했다. “6을 얻고 4를 내주는 게 정치인데, 결과적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는커녕 독소조항들은 그대로”라며 당시의 당내 강경파들을 비판했다. 또 “1994년 김일성 사망 뒤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북한에 조문할 의사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상이군인들이 지구당을 부수고 날 죽이겠다고 하더라”며 “정치인생 중 가장 처연한 기억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97년 왜 김대중이 아닌 이회창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김대중·김종필의 DJP연합보다 이회창·조순(민주당 총재) 조합이 더 깨끗해 보이더라”고 말했다. 2003년 한나라당 탈당에 대해선 “2000년 남북 6·15 공동선언에 찬성했더니 한나라당에서 ‘당을 떠나라’고 하더라. 그래서 ‘떠나주마’라고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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