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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병 앓아 본 의사'가 좋은 의사 … 환자 고통 공감해야

고대 의대 김효명 학장(왼쪽부터)과 김승범 학생, 김신곤 교수가 좋은 의사가 갖춰야 할 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서보형 객원기자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인종·국적·사회적 지위를 초월해 오직 환자에 대한 의무를 다하겠노라.”

고대 의대 스승·제자가 말하는 참교육



의사로 첫발을 내딛을 때 가슴에 새기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하지만 요즘 이런 사명감만으로는 의사생활이 힘들다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이 시대에 히포크라테스가 설 자리는 없는 걸까. 지난 3일 참의사 양성의 요람인 고려대 의과대학에 다녀왔다. 불신과 혼란의 시대일수록 의사의 본질을 지켜야 한다는 고대 의대 김효명 학장과 통일의학을 선도하는 김신곤 교수(내분비내과), 그리고 예비의사의 길이 녹록지 않다는 본과 2학년 김승범 학생을 만났다. 이들이 말하는 ‘21세기 히포크라테스’와 참된 의학교육의 모습은 무엇일까.



[토크1] 의사 불신 시대, 히포크라테스는 존재하는가



김효명 학장(이하 김효명)=의사가 존경받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나. 요즘 의사로서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존경받으려면 그만큼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사실상 어렵다.



김신곤 교수(이하 김신곤)=현재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은 정부·의사·환자 모두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환자는 ‘과잉 진료’ ‘3분 진료’라며 불만이 크고, 의사는 수가가 낮아 병원 경영이 어렵다. 정부의 지원이 없으니 의사는 점점 ‘자영업자화’되고 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병을 치료해야 할 의사가 오히려 ‘나라에 병이 돌았으면…’ 바라는 비극이 생길 수 있다.



김승범 학생(이하 김승범)=막연하게 ‘환자를 위하는 좋은 의사가 되겠다’며 의대를 지원했다. 막상 들어와 보니 학업량이 많고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다 보니 환자에 대한 사명감보다 당장 진급과 성적이 고민된다. 이러다 의사의 길을 선택했을 때 품은 생각이 변질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김신곤=『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이 있다. 죽음이 난무하는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끝까지 환자를 돌본 유대인 의사의 얘기다. 학생들에게 ‘우리의 외부 환경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그 당시 죽음의 수용소만 하겠는가’라고 묻는다. 어려울수록 유대인 의사처럼 의사의 본질인 사명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결국 국민의 가슴을 울리고,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를 쌓는 방법이다. 환자에게 믿을 만한 의사가 먼저 돼야 어려운 현실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토크2] ‘의술’ 또는 ‘인성’, 의학교육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김효명=이런 때일수록 ‘인성교육’이 중요하다. 물론 의술, 즉 의사로서의 실력은 밑바탕이 돼야 한다. 의술은 공부하면 되지만 인성은 다르다.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심성과 윤리의식, 리더십 등 다양한 소양이 필요하다. 고대 의대가 국내 유일의 의인문학교실을 개설한 이유다. ‘생각의 향기’라는 인문학 강좌를 통해 학생들은 소통을 배운다. 역사학자·목사·작가 등 의사가 아닌 타 분야 전문가의 강연을 들으며 다방면의 소양을 쌓을 수 있다.



김신곤=가끔 학생들에게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의사의 덕목인 ‘실력’과 ‘사명(희생)’ 중 단 하나만 고른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대다수는 ‘실력’을 택한다. 하지만 전 ‘사명’을 택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의대는 공부해서 남 주기 위해 오는 곳이다. 의사는 개인의 입신양명을 넘어 고통받는 환자, 사회를 치유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의대 교육과정에서 적절히 녹아내 학생을 올바르게 인도해야 한다.



김효명=올해 고대 의대에 개설되는 ‘좋은의사연구소’가 그러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의대생들에게 좋은 의사에 대한 동기의식을 부여하고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다.



김승범=인성교육 교과과정 중 하나인 2박3일 꽃동네 봉사활동도 도움이 된다. 의외로 이때 생전 처음 봉사활동을 접하는 친구도 많다. 중·고등학교 때 하는 봉사와는 확실히 다르다. 의료인의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기 때문이다. 환자의 감사 또는 불만의 말 한마디에 위안을 받거나 회의감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봉사동호회(카당)를 이끌며 2주마다 외국인 노동자 무료진료소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환자의 고통을 옆에서 직접 보면 느끼는 게 많다.



김효명=한창 혈기왕성할뿐더러 의대에 들어왔다고 기고만장하기 쉬울 때다. 이러한 때 아픈 사람을 직접 대하고 모셔보고 느껴보라는 의미에서 봉사활동을 필수 교과목에 넣었다. 환자의 아픔을 몸과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토크3] 특유의 ‘민족정신’, 민족과 세상을 구하라?



김신곤=고대 의대는 타 의대와 달리 민족에 대한 사명이 강하다. 의대 전신이 1928년에 개소한 ‘조선여자의학강습소’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달고 ‘여성’ 의사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세워졌다. 시대적으로 여성이 양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맡길 수 없던 때다. 조선여자의학강습소는 여성의 건강권·인권·교육권에 있어 획기적인 첫걸음이었다. 이처럼 시대와 민족의 아픔을 함께 고민해 온 학교다. 고대생들이 유독 ‘민족 고대’를 외치는 이유다.



김효명=통일의학 전문가인 김 교수는 탈북자 무료 진료도 진행해 오고 있다.



김신곤=이 역시 민족의 아픔을 먼저 생각해 온 ‘민족 고대생’이었기에 고민하고 앞장설 수 있었던 부분이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 보건의료다. 동·서독도 통일 이전에 보건의료 협약이 먼저 만들어졌다. 통일과 의료는 가장 따뜻한 만남이다. 정치가 아닌 인도적 사안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탈북자의 건강을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남북한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 통일을 대비할 수 있는 방안이다. 통일 시 남북에 창궐할 수 있는 전염병·성인병을 미리 고민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김효명=고대 안산병원의 단원재난의학센터 역시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지기 위해 세워졌다. 국가 재난인 세월호 사태로 단원고 학생과 가족들, 그리고 국민이 큰 고통을 받았지만 이에 대응하는 관리시스템은 전무했다. 그래서 고대병원이 재난의학 분야를 활성화하기 위해 단원재난의학센터를 설립했다. 앞서 1971년 국내 최초의 법의학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89년 세계 최초로 유행성출혈열 예방백신을 개발한 것도 당시 시대적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토크4] 지금의 의대생이 한국 의료의 미래다



김승범=타학교 의대생들과 얘기해 보면 우리 학교가 시설적으로 월등한 부분이 많다. 학교에서 적극 지원해 주고 있다는 걸 느낀다.



김신곤=미래 의료에 희망은 현 의대생에게 달려 있다. 그래서 다른 학교가 눈앞의 이익을 위해 병원 건물부터 높일 때 우리는 의대 시설에 적극 투자했다. 아시아 최초로 가상해부대와 로봇시뮬레이터를 갖췄다. 학생들이 가상으로 인체를 해부하고 수술을 연습할 수 있다.



김효명=우수한 교육환경은 수련 과정까지 이어진다. 안암·구로·안산에 위치한 수련병원은 지역적 특성에 따라 병원문화와 특화 분야가 다르다. 학생들은 세 곳에 실습을 다니며 다양한 교수와 환자를 통해 풍부한 임상 경험을 익힐 수 있다. 한 의대에서 두 개 병원(안암·구로)이 연구중심 병원으로 선정된 것도 고대가 유일하다. 최고의 시설 인프라로 연구 역량을 극대화하고 믿고 맡길 수 있는 ‘명품 병원’을 추구한 결과가 아닐까.



김신곤=의대생의 교육·연구·실습에 대한 투자와 노력은 결국 ‘환자 중심’의 의사를 양성하기 위함이다. 좋은 의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친절한’ ‘실력 있는’ ‘돈을 밝히지 않는’ 등 여러 해석이 있지만 가장 와닿은 것은 ‘큰 병을 앓아 본 의사’라는 정의다. 환자의 아픔·고통을 내 것처럼 느끼고 공감하고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좋은 의사의 첫걸음이다. 이를 가르치는 것이 의대의 역할이다. 의대 교육이 굳건히 서야 환자도, 미래의 한국 의료도 행복할 것이다.



정리=오경아 기자 okafm@joongang.co.kr



◆단원재난의학센터=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고대 안산병원이 지난해 7월 설립한 국내 최초의 재난 대응 컨트롤 타워. 국내 미개척 분야인 재난의학의 활성화를 위해 설립됐다. 센터는 재난의학·재난연구·행정지원 분야로 구분되며, 대규모 재난상황 발생 시 통합적인 대응체계와 관리시스템을 구축한다.



◆통일의학=남북한 보건의료의 격차를 줄이고 통일 이후 한국 의료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의학 분야. 북한 이탈 주민의 건강관리를 비롯해 남북한 보건의료인의 교류 활성화, 의학용어·제도의 통합 등을 담당한다. 또 통일 시 남북한 각각에 급증할 수 있는 질병의 형태를 분석해 통일 전부터 체계적인 대응책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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