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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률 165대 1 … 어렵네요 ‘야구고시’

서울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열린 강습회에 330여 명이 참가했다. 매년 수강 신청 마감이 빨라지는 가운데 여자 응시생이 100명이 넘을 만큼 ‘여풍(女風)’이 거셌다. [사진 KBO]


“지금부터 프로야구 한 경기를 기록지로 작성해 주세요. 교재는 전부 가방에 넣으시고요.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도 답은 못 찾습니다.”

학력·나이 제한없는 강습회
여중생·할아버지 등 열공
현재 공식기록원 15명 활동
성적 우수자 2명 추가 채용



 한국야구위원회(KBO) 기록위원이 시험 개시를 알렸다. 한숨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지만 이내 정적이 흘렀다. 시험지에는 1회 초부터 9회 말까지의 야구경기 상황이 글로 써 있었다. 한글로 빼곡히 채워진 7장의 시험지가 기호로 구성된 기록지 2장으로 바뀌기까지 세 시간이 걸렸다.



 지난 7일 서울 건국대 새천년관에 33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야구를 기호로 기록하는 사관(史官)을 꿈꾸며 열심히 펜을 움직였다.



 KBO는 1982년부터 매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기록강습회를 열고 있다. 프로야구 공식기록법의 이해와 보급을 통해 야구 저변을 넓히고자 시작한 사업이다. 생소한 야구 기호부터 자살·보살·병살 기록법, 안타 유무 판단, 자책점 계산, 실책 구분 등을 사흘 동안 배운다. 야구팬이 늘어나면서 매년 수강신청 마감이 빨라지고 있다. 올해는 공지 세 시간 만에 수강인원이 다 찼다.



 기록강습회는 사흘 동안 강좌를 진행한 뒤 마지막에 실기테스트를 한다. 이 시험은 ‘야구판 고시(高試)’다. 감독과 코치, 심판은 야구선수 출신이 하지만 기록원은 경기인이 아니어도 된다. 나이·성별·학력 제한이 없다. 열여섯 살 여중생부터 팔순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시험을 봤다.



 다른 고시처럼 야구고시도 여풍(女風)이 거세다. 김제원 KBO 기록위원장은 “여성 수강생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 올해 참석자는 100여 명에 이른다. 여성들이 수업시간에 질문을 더 많이 하고 시험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는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재 KBO에는 여자 기록원이 없다. 1996년 여대생을 채용한 적이 한 번 있었지만 빡빡한 일정과 잦은 지방출장 탓에 그만뒀다. 여대생 김민지(21)씨는 “학교 야구 동아리에서 매니저를 맡고 있다. 기록지 작성은 자신 있어서 응시했다”며 “그런데 막상 깊게 배워보니 어려운 부분이 많다. 지금은 공식 채용을 꿈도 꾸지 못한다. 계속 열심히 공부하면 언젠가 공식기록원도 될 수 있지 않을까”고 말했다.



 응시생 가운데 실기테스트 상위 30%에게만 수료증을 준다. 수료증을 받지 못해 다시 도전하는 사람이 꽤 많다. 5,6수(修)를 하는 이들도 있다. 올해 강습회에는 취업난 때문인지 20대가 유난히 많았다. 10년 전만 해도 취미로 기록을 배우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KBO는 성적 우수자 2명을 공식기록원으로 채용할 예정이다. 현재 KBO 공식기록원 15명 모두가 이 강습회 출신이다. 올해는 프로야구가 10구단 체제를 맞이하면서 매일 5경기가 열리기 때문에 기록원 충원이 필요해졌다.



 전문 기록원을 욕심내는 20대 젊은이들에겐 쉬는 시간도 없었다. 짬이 생기면 KBO 기록원들을 찾아가 질문했다. 독학을 하다 막힌 부분을 물어보느라 바빴다. “이럴 경우 보살 기록은 누구에게 주는 건가요?” “자책점 계산에서 상황이 애매할 때는 투수에게 유리하게 기록하는 건가요?” 등등. 박정민(22)씨는 “공식 기록원이 되지 않더라도 수료증은 꼭 따고 싶다. 나중에 취업할 때 색다른 스펙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중장년층에겐 이 시험이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기회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강습회에 온 전준식(51)씨는 “야구를 매일 보다가 기록에 도전하게 됐다. 전문적으로 배워서 은퇴 후 사회인야구 기록원으로 활동하는 게 목표”라며 “어제 밤새 공부했는데 시험이 어렵더라. 수료증을 못 받으면 내년에 다시 도전할 생각”이라고 했다.



 배우기 어렵고 경쟁률은 높아서 야구기록시험이 ‘야구고시’가 됐다. 그러나 기록을 할 때도 이론보다 열정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김제원 기록위원장은 “기록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야구기록에 관한 지식이 아니다. 그건 노력하면 된다. 무엇보다 야구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매일 기록지를 쓰다 보면 지칠 때가 있는데 그걸 이겨내야 한다. 야구를 사랑해야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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