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매거진M] 이런 스파이영화는 처음이야!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새로운 스파이영화가 나타났다.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원제 Kingsman : The Secret Service, 2월 11일 개봉, 매튜 본 감독, 이하 ‘킹스맨’)다. 고전 스파이영화의 전통과 만화적 상상력, 영국 문화와 미국 문화, 귀족 정신과 계급 평등의 메시지를 한데 섞어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스타일의 오락영화를 탄생시켰다. 그 요소들끼리 충돌할 때마다 생기는 짜릿한 재미가 영화 전편에 흐른다. 이 놀라운 혼합물의 구성 성분을 낱낱이 해부해본다.
 


스파이영화의 멋에 만화적 상상력까지

‘킹스맨’은 런던의 뒷골목을 누비던 청년 에그시(태런 애거튼)가 킹스맨이란 비밀 정보 기구의 정예 요원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킹스맨의 최고 요원 해리(콜린 퍼스)가 그에게 킹스맨의 신입 요원 선발 시험을 치를 기회를 준다. 에그시가 까다로운 시험을 거치는 사이, 해리는 미국의 IT 기업가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의 음모를 파헤친다. 해리는 ‘007’ 시리즈(1962~)의 초창기 제임스 본드처럼 말쑥한 정장 차림을 하고 신사의 소지품처럼 꾸민 무기를 활용해 일당백으로 싸우는 스파이다. 고도의 훈련으로 단련된 스파이가 뛰어난 기지와 현란한 액션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유유히 헤쳐 나오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통쾌함. 해리의 활약을 통해 ‘킹스맨’은 스파이영화 특유의 통쾌함을 충실히 펼친다. 에그시 역시 결말에서 해리 못지않은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며 진짜 스파이로 거듭난다.

이 영화는 대표적인 스파이영화와 TV 시리즈의 주인공들을 언급하는 재치를 부리기까지 한다. 단짝처럼 지내는 강아지 이름을 왜 JB라고 지었냐는 질문에, 에그시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본’ 시리즈(2002~)의 제이슨 본(맷 데이먼)도 아닌, 미국 TV 드라마 ‘24’(2001~2010, FOX)의 잭 바우어(키퍼 서덜랜드)의 이름을 딴 것이라 답한다. 여기서 거론된 인물은 모두 각자의 시리즈에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이들의 이름을 유쾌하게 말하는 에그시는 새파랗게 젊은 새내기 스파이다. 그 발랄한 표정에서 스파이영화의 세대 교체에 대한 의지가 엿보인다. 이 영화의 내용 자체가 그렇다. 중년의 해리는 젊은 에그시에게 스파이로서 자신의 마음가짐과 능력을 전수한다. 그래서일까. 킹스맨 요원의 맞춤 양복을 처음으로 차려입은 에그시가 바텐더에게 제임스 본드처럼 자신만의 방식대로 마티니를 만들어 달라고 까다롭게 주문하는 장면은 귀엽기까지 하다. 새로운 세대의 제임스 본드의 등장을 알리는 것 같아서다.

그런가 하면 악당 발렌타인과 그의 부하 가젤(소피아 부텔라)은 스파이영화보다는 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인물 같다. 발렌타인은 자신의 재력과 기술을 총동원해,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인류를 없앨 계획을 세운다. 그 명분이 기가 막힌다. 인구수가 너무 늘어나는 바람에 손쓸 수 없이 망가진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다. 냉전 시대에 태동한 스파이영화가 주로 국제 정세의 긴장 관계를 이야기의 축으로 삼는 것과는 좀 다르다. ‘킹스맨’의 발렌타인은 국제 정세 따위는 관심 없다. 지구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억만장자가 세운 이 황당한 계획은 상상력 면에서 꽤 ‘만화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의 원작이 바로 만화다. 2012년 출간된 ‘킹스맨 : 시크릿 서비스’가 그것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원티드’ ‘킥 애스’ 등을 쓴 만화가 마크 밀러의 작품이다. 그의 만화 ‘킥 애스’를 바탕으로 별종 수퍼 히어로영화 ‘킥 애스 : 영웅의 탄생’(2010)을 연출한 이가 바로 매튜 본, ‘킹스맨’의 감독이다. 밀러와 본은 ‘킥 애스 : 영웅의 탄생’의 촬영장에서 ‘킹스맨’의 이야기를 함께 구상했다. 이야기의 배경이 런던이 돼야 한다고 고집한 것도 본 감독이다. 이후 밀러의 주도 아래 만화 ‘킹스맨 : 시크릿 서비스’가 먼저 나왔고, 본 감독은 이것을 영화로 만들었다.

만화에서는 영국 정부의 비밀 조직으로 그려졌던 킹스맨이 영화에서는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 기구로 나오는 등 세부적인 설정은 조금 바뀌었다. 그렇지만 만화 특유의 담대한 상상력을 영화에 그대로 끌어온 점이 더 돋보인다. 악당 발렌타인의 배짱 넘치는 야심은 물론이요, 그의 심복 가젤이 날카로운 금속 다리로 체조 선수처럼 쌩쌩 날아다니며 적의 사지를 동강내는 장면은 말 그대로 움직이는 만화를 보는 것 같다. 극 후반, 발렌타인이 개발한 칩을 목덜미에 심은 세계 고위층 인사들의 머리가 터지는 모습을 마치 색색의 폭죽이 잇따라 터지듯 경쾌하게 연출한 모습 역시 그렇다. 일촉즉발의 순간 튀어나오는 만화적인 상상력은 이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기폭제 구실을 한다.


영국 신사와 맥도날드 햄버거

에그시가 해리 같은 스파이가 되는 과정은 곧 신사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극 중 킹스맨의 본부는 런던에 자리한 양복점과 연결돼 있다. 양복점 이름 역시 킹스맨이다. 킹스맨 요원들은 이 양복점에서 최고급 양복을 맞춰 입고 다닌다. 말쑥한 양복에 머리를 말끔히 넘긴 채 뿔테 안경을 쓰고 긴 우산을 들고 다니는 해리는 전통적인 영국 신사의 차림이다. 패션만 그런 것이 아니다. 경찰서를 넘나들며 거칠게 살아온 에그시에게 해리는 신사의 수칙을 가르친다. 방에 들어올 때는 노크를 하고, 남의 집 의자에 앉을 때는 앉아도 되냐고 먼저 묻는 것이 예의다. 신사라면 마티니 정도는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이에 에그시가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1964, 조지 큐커 감독)에서처럼 말하는 법도 가르쳐 줄 거예요?”라고 묻자, 해리는 “대화할 때상대를 편하게 해주면 된다”고 답한다.

반대로 발렌타인은 모자와 티셔츠에 청바지까지 미국의 힙합 가수 같은 패션을 고수한다. 그는 해리의 말투가 “발음도 웃기고 알아듣기 힘들다”며 격식을 갖춘 영국식 영어를 비꼰다. 백미는 발렌타인이 해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미국식 만찬을 대접하는 장면. 발렌타인은 해리 앞에 맥도날드 햄버거를 내놓는다. 영국 신사 해리와 미국의 억만장자 발렌타인이 식탁에 마주앉아 햄버거를 먹는 모습에서, 두 사람이 서로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벌이는 신경전만큼이나 두 사람의 패션과 문화가 불꽃 튀게 충돌한다. 그 에너지가 영화를 매 순간 긴장으로 가득 채운다.

신분 뛰어넘는 스파이 멘토링

해리는 에그시에게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강조한다. 그는 귀족 집안 출신이지만, 매너는 출신 성분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중요시하는 건 노력이다. 극 중 해리는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을 빌려 “진정한 고결함이란 과거의 자신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킹스맨의 수장인 아서(마이클 케인)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해리가 못마땅하다. 전통적으로 귀족 집안의 자제에게만 허락됐던 킹스맨 입단 시험의 기회를 평민인 에그시에게 줬기 때문이다. 에그시와 함께 시험을 치르는 다른 지원자들은 모두 명문대를 나온 명문가의 자제들이다. 아서의 추천으로 시험을 치르는 된 찰리(에드워드 홀크로프트) 등 몇몇 남자 지원자들은 대학도 나오지 않은 해리를 대놓고 무시한다. 소수의 사람들만 남기고 다른 인류는 모조리 처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발렌타인의 생각도 일종의 특권 의식이나 다름없다. 그가 살리려 하는 사람들은 대개 왕족·정치인·연예인 등의 유명 인사, 혹은 자신의 계획에 거금을 투자한 부자들이다. 그들을 제외한 수많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죽는 것에 대해 발렌타인은 손톱만큼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축배를 든다.
 


해리가 에그시에게 킹스맨의 요원이 될 기회를 주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는 에그시에게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꽃피울 수 있게 도우려 한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날건달인 새아버지(제프 벨)에게 툭하면 맞고 자란 에그시. 그 역시 해리를 만나면서 자신의 처지에 대해 더 이상 환경 탓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에그시가 킹스맨 요원이 되는 건, 평범한 젊은이가 멋진 스파이로 짜릿하게 변신하는 것을 넘어, 밑바닥 인생이 피나는 노력을 통해 그럴 듯한 삶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귀족들만의 비밀 집단을 고집하던 킹스맨의 고리타분한 전통을 깨는 결과를 낳는다. 해리는, 평민 출신 지원자는 안 된다는 아서를 속물이라 부르며 “귀족들이 나약해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쓴소리를 뱉는다. 그리고 에그시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사가 되는 데 출신은 필요 없어. 배우면 되는 거지.” 배움과 노력 끝에 드디어 신사로 거듭난 에그시는 결말에서 아서에게 보기 좋게 한 방 먹이고, 발렌타인을 통쾌하게 무찌른다. 늘 주인공의 특별한 능력을 부각시키기 바빴던 스파이영화가 이런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니. 그것도 매 순간 감탄하고 환호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 말이다. 이 참신한 스파이영화의 출현이 더없이 반갑다.


장성란·김나현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