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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실제적이게 보다 인위적으로

저자: 데이비드 실베스터 역자: 주은정 출판사: 디자인하우스 가격: 1만6000원
어두침침한 공간에 앉아있는 한 남자. 양 옆으로는 뼈가 훤히 드러난 고깃덩이가 걸려있다. 이미 충분히 그로테스크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다. 거꾸로 쳐박혀 흐물흐물 내려오는 살덩이가 있는가 하면 얼굴은 누군가한테 두들겨 맞아 반쯤 날아간 듯하다. 세계적인 현대 미술 작가로 꼽히는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의 작품 세계다.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무엇이 베이컨의 작품을 이토록 기괴하게 만들었을까. 그는 17살 때 자신에게도 죽음이 닥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길을 가다 본 개의 배설물을 통해 죽음이 거기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삶이라는 걸 알게 됐단다. 장 콕토의 ‘날마다 나는 거울 속에서 죽음이 작동하는 것을 본다’는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삶이 사람을 흥분시키는 것만큼 죽음도 삶의 일부임을 일찌감치 자각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육점은 그에게 최고의 장소였다. 그는 가축이 도축 되기 전에 찍힌 사진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곤 했다. 또 고기와 생선이 일렬로 누워있는 공간을 지날 때면 새로운 색감을 떠올렸다. 베이컨에게 사람이란 잠재적인 시체이자 또 하나의 고깃덩어리였기에 그들을 볼 때면 공감과 동정, 공포로 뒤섞인 영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X선 사진집을 손에서 놓지 않던 것 역시 같은 맥락이었으리라.

미술평론가 데이비드 실베스터는 오랜 친구의 속내를 내밀하게 파헤친다. 25년간 수십 차례에 걸쳐 이뤄진 인터뷰를 9편의 글로 엮어냈다. 초기 작품부터 곁에서 지켜봤던 저자는 때때로 화가 자신도 몰랐던 부분을 짚어낸다. 이를테면 숱하게 작업실을 옮기던 베이컨이 왜 좁고 불편한 공간에 정착하게 됐는지 같은 내용이다. 2013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최고가(1억 4240만달러)를 경신한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습작’ 역시 그가 간파한 특질이 발현된다.

베이컨은 결코 타인의 의견을 단번에 수용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저자의 질문에는 곧잘 동의를 표한다.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왜곡에 대해서도 그랬다. 실제적이면서도 인위적으로 보이는, 보다 인위적일수록 보다 유사해진다는 믿음을 순순히 인정한다. 그는 그림이 길을 잃고 헤맬 때면 기막힌 우연을 기대하며 물감을 던지기도 하고, 작업실 가득 쌓인 먼지를 겹겹이 쌓아올려 잿빛을 표현하기도 했다. 실베스터는 이를 ‘사실적(realistic)’인 모습을 그리기보다는 ‘실제적(real)’인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 분석했다.

저자의 지적대로 베이컨은 관객이 작품을 자유롭게 해석하길 바랐다. 누군가를 위해 그린 그림이 아닌 순전히 자신의 만족을 위한 작업이었기에 힌트를 주는 데도 인색했다. 가능한 특색 없는 제목을 붙였고, 늘 ‘이러저러한 것을 위한 습작’이라 불렀다. 제목이 이미지 안에서 거짓말을 하고 관객이 이를 토대로 풀어내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까칠하면서도 농밀한 대담을 좇다보면 난해해 보였던 그의 예술세계가 보다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는 스스로를 일컬어 재능이 있다기보다는 수용적인, 화가라기 보단 우연과 운의 매개자라 칭했다. 그저 보다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하고, 모든 감각의 밸브를 열어 에너지를 받아들이라는 충고를 따라보자. 어느새 나 역시 관람객이 아닌 예술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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