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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행세 김현희 보자마자 던진 내 첫말 … “당신 북한 사람이지요?”

“당신 북한 사람이지요?”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에서 방콕을 향해 가던 대한항공기가 공중 폭발해 115명이 숨졌다. 당시 박수길(사진) 외무부 정무차관보는 위조여권 소지 혐의로 바레인에 억류된 김현희를 보자마자 북한 출신임을 직감하고 이렇게 질문했다. 일본인 행세를 하며 묵비권을 행사해 온 김현희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바레인은 북한과 가까운 시리아와 레바논의 압박 탓에 김현희 넘겨주기를 주저했다.

박 차관보는 카리파 바레인 외교장관을 만나 담판했다. “김현희를 바레인에 오래 두는 건 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다.” 이 한마디에 바레인이 손을 들었다. 12월 14일 박 차관보는 김현희를 넘겨받아 함께 비행기에 올랐고, 이튿날 서울에 도착했다. 제13대 대통령 선거 전날이었다.

남북 대결 외교와 동시 유엔 가입, 김만철 가족 탈북, 우루과이 라운드 등 1960~90년대 나라를 뒤흔든 외교 사건들의 중심에 섰던 박수길(82) 전 주유엔 대사가 회고록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대한민국 외교 이야기』에서 밝힌 대한항공기 폭발 사건 전말이다. 경력 36년의 외교전문가인 그가 전하는 비사들은 생생하고 흥미롭다.

87년 초 김만철 가족 탈북 사건과 관련해선 김씨가 원했던 ‘따뜻한 남쪽 나라’가 딱히 대한민국만을 지칭한 건 아니었다고 박 전 대사는 밝힌다. 하지만 휴전 이후 일가족 집단, 그것도 엘리트 의사 가족이 탈출한 건 처음인 점을 주목한 정부는 일본에 억류된 김씨 가족의 서울행을 추진했다. 북한의 반발을 의식한 일본은 김씨 가족을 대만으로 보냈다. “현지에서 김씨 가족을 인수하라”는 특명을 받은 그는 “과로로 입원한다”고 주변에 거짓말을 한 뒤 타이베이로 날아갔다. 박 전 대사는 김씨 일가 11명이 대만에 도착한 다음날 그들과 함께 대한항공 특별기에 올라 두 시간 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에는 중국이 보이지 않는 역할을 했다고 박 전 대사는 회고했다. 김일성이 동시 가입을 기피했지만 리펑(李鵬) 중국 부주석이 김일성을 만나 동시 가입을 에둘러 권유한 게 상황을 반전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엔 정부 당국자들의 적극적인 북방외교가 큰 힘이 됐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는 외교부에서 오랜 기간 함께 근무했고 각별한 사이다. 박 전 대사는 “대통령은 권력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반 총장은 그런 것과 거리가 멀고 정치와 외교를 준별하는 사람”이라며 “자신의 입으로 직접 내게 대통령직엔 전혀 관심 없다고 잘라 말한 적이 있다”고 책에서 밝혔다.

박 전 대사는 세 살 때 아버지가 30대 젊은 나이로 별세하면서 가난에 허덕였다. 하지만 어머니가 “끼니는 걸러도 학교는 가야 한다”며 아들을 대학까지 보냈다고 한다. 박 전 대사는 미군부대 하우스보이를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고려대를 졸업한 뒤 외무부 주사와 신문기자를 거쳐 61년 13회 외무고시에 수석 합격했다.


강찬호 논설위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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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